성숙의 근원은 미운 너였다 21화

용서는 이해보다 늦게 온다

by 공인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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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이젠 그럴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해.”


어느 순간이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예상치 못한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내가 가장 많이 미워했고, 가장 많이 오해했고, 가장 많이 흔들렸던 그 사람의 이름.


나는 잠시 멈칫하고,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뭐…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


그 문장은 너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마치 내가 그를 진짜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마치 오래된 상처가 다 아물어버린 사람인 것처럼.


그런데 말을 하고 나서, 마음이 이상하게 뒤틀렸다.
입에서 나온 문장보다 내 마음이 훨씬 뒤에 남아 있다는 걸 알았다.
겉으론 담담한 사람처럼 말했지만,
속은 아직도 그때의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방금 말한 “그럴 수도 있었겠지.”
그 말은 그를 위한 말이 아니라, 그 말을 내뱉은 나 자신을 달래는 말이었다.


애써 어른처럼 말하고 싶었다.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내가 어느 정도 성장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지금의 나’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 같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솔직했다.
“아직… 억울해.”
“아직도 섭섭해.”
“아직 그때의 나는 구해지지 않았다.”


이해는 정말 빠르게 왔다.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당시의 그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대했는지—
이제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지나고 나니, 어느 부분은 오히려 안쓰러웠고 연민도 느껴졌다.


그런데도 마음은 따라오지 않았다.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자기 속도를 바꾸지 않았다.
이해한 만큼 금방 치유되기를 바라던 나는
감정의 느린 걸음 앞에서 실망했고,
그걸 또 쓸데없이 ‘미성숙’이라고 자책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마음이 느린 게 아니라,
내가 너무 빨리 앞질러 가버린 것이었다.


머리는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이해했어, 이제 됐어!”라고 외치는데,
감정은 한참 뒤에서
“나는 아직 거기까지 못 갔어…”라고 겨우 따라오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
그리고 인정한 순간,
용서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용서는 ‘해야지’ 해서 되는 감정이 아니다.
이해는 하루 만에도 가능하지만,
용서는 마음이 자기 속도대로 천천히 걸어서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도착하는 감정이다.


나는 그 느린 감정을 억지로 재촉하며
오히려 그 감정을 더 지치게 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입으로는 어른처럼 말했다.
“그럴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아주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의 내가 덜 아팠던 건 아니야.”


그 두 목소리가 충돌하는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용서가 늦게 오는 이유’를 배워가기 시작했다.



2절. “그를 이해하려 했던 밤들”


그를 이해하려고 했던 밤들이 있다.
아무도 없는 방,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 화면 속
그 사람의 예전 메시지를 다시 읽으며
억지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했던 시간들.


“그때는 바빴잖아.”
“그 사람도 힘들었을 거야.”
“모든 걸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겠지.”


나는 그를 두둔하는 문장을 스스로에게 계속 건넸다.
겉으로 보면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과정 같지만,
사실은 내 마음을 억누르는 과정이었다.


그를 이해해야만 내가 버티는 것이 쉬워질 것 같아서.
그의 사정에 맞춰 생각해야
내가 받은 상처가 덜 아픈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
이해라는 말로 덮어두면
내 감정이 덜 복잡해질 것 같아서.


그런데 모든 문장은 결국 여기로 돌아왔다.


“나는 왜 그 사람의 사정을 이렇게 열심히 이해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은 왜 나의 마음을 한 번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까.”


이 문장 하나가,
그 밤의 고요를 가장 크게 갈라놓았다.


사실 알고 있었다.
그가 힘들었다는 것,
그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
그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그저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문제는—
내 마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


머리는 그의 사정을 10초 만에 이해했는데,
마음은 그 사정을 받아들이려면
열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 불균형이 나를 괴롭게 했다.
머리는 그를 감싸주려 하고,
감정은 그를 밀어내려고 하고,
그 사이에서 나는 갈라진 채 서 있었다.


이해하려는 노력은 때때로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그럴 수도 있었겠지.”
그 말을 반복할수록
오히려 나는 더 아팠다.


왜냐하면,
그 말속에 내 감정은 한 줄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를 이해하면 할수록
나는 내 상처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서 조용히 껴안아야 했다.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아는 순간,
나는 내 감정이 터져 나올 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를 탓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납득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마음.


그 밤의 나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은 나를 버티게 하려는 의미 없는 반복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처음 알았다.


이해는 마음을 위로하는 게 아니라,
상처를 잠시 덮어두는 얇은 천 같은 것이라는 걸.


천이 얇으면
밤이 깊어질수록 감정의 바람이 더 차갑게 스며들었다.


그날의 나처럼.



3절. “머리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반항하고 있었다”


많은 밤을 이해하려 애쓴 끝에,
나는 마침내 한 가지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이미 그를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를 용서한 적은 없었다.


머리는 이미 오래전에 결론을 내렸다.
그때 그는 힘들었고,
그때 나는 여렸고,
세계는 늘 서로의 속도를 맞춰주지 못한다는 것.
그의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가 나를 상처 주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것도 안다.


머리는 모든 걸 ‘이해’하고 있었다.
논리도 맞고, 상황도 맞고, 설명도 충분하다.


그런데 마음은…
그 모든 설명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감정은 내가 이해해 놓은 논리를 보며
조용히 이러고 있었다.


“그래서 뭐?
그렇다고 내가 덜 아팠던 건 아니잖아.”


나는 그 반항적인 감정을
오랫동안 억누르려고만 했다.
이해했으니 이젠 용서해야 한다는 식으로
마음을 재촉하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용서는
이성의 명령을 따르는 감정이 아니었다.


머리는 이해가 빠르다.
상황을 파악하고, 이유를 찾고,
‘그럴 수도 있었겠지’라는 결론에 재빨리 도달한다.


그러나 마음은
머리의 속도를 따라가는 데에
늘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속도가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은 아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머리가 이해를 향해 직선으로 달릴 때
마음은 우회하고, 멈추고, 돌아가며
내 안의 상처를 천천히 만져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필사적으로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고,
말하는 자신을 보며 “그래, 이게 성장이지”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용서는 결심이 아니라 감정이다.
감정은 결심보다 훨씬 더 느린 언어로 말한다.


나는 그때까지도
마음이 왜 따라오지 않는지 다그쳤다.


“이해했잖아.
그럴 수 있었다며.
그 사람도 힘들었다며.
왜 아직도 미워하니? 왜 아직도 서운하니?”


그 질문들은
상처 난 내 감정을 위로하는 대신,
더 깊은 구멍 속으로 밀어 넣는 말이었다.


마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는데도: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는 나도 알아.
근데… 그때의 나는 누가 알아줘?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가?”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그를 이해하려 했지만,
그때의 ‘나’를 이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머리가 이해하는 순간,
마음은 오히려 더 크게 울고 있었다.


이해는 외부를 향한 것이고,
용서는 내면을 향한 것이다.


그래서 이해는 빠르지만
용서는 느리다.
머리는 이유를 찾고,
마음은 상처를 치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 채
억지로 용서의 시계를 앞당기려 하면
마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버린다.


나는 그때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


“나는 그를 이해했지만,
내 마음은 아직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 깊은 고백을 인정한 순간,
비로소 나는 용서의 문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4절. “어느 날, 그 사람을 떠올렸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조용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 한쪽이 저릿하게 타올랐다.
작은 멍처럼 오래 남은 감정이었고,
건드릴 때마다 금방 물결이 번져가는 그런 종류의 상처였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
지하철 손잡이에 손을 걸고 멀뚱히 서 있다가
아무 뜻 없이 그 사람의 이름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그 순간—
가슴이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파도가 잦아든 바다처럼,
바람 한 점 없는 새벽처럼,
세상이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나는 당황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늘 감정이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미움, 분노, 아쉬움, 후회…
단 한 번도 감정이 없는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감정이 따라오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기록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 사람의 모습은 떠오르는데
그 모습에 연결된 감정의 끈이
어느 순간 조용히 끊어진 듯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은 손을 슬며시 내려다보았다.
내 손이 내 감정보다 먼저 어른거리고 있었다.
“내가… 괜찮아진 건가?”


그 질문이 떠오른 동시에,
작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해방이라기보다,
천천히 녹아내린 무언가를 조용히 바라보는 느낌.


그날 처음 알았다.


용서는 마음속에서 ‘결심’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어느 날 ‘조용히 도착’해 있는 상태라는 것을.


용서를 하려고 노력할 때는
마음이 더 무거웠다.
미워하지 말아야지,
이해했으니까 이제 놓아야지—
이런 생각은 언제나 마음을 더 옥죄었다.


그런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이름에도
가슴이 출렁이지 않았다.


그건 결심이 만든 평온이 아니라,
시간이 데리고 온 평온이었다.


용서는 의지가 아니라,
마음의 자연스러운 회복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한 행동이 괜찮아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때의 내가 덜 아팠다는 뜻도 아니었다.


다만—
그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과거의 내가 손을 내밀며 울던 장면이
더 이상 재생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내 안에서 감정의 주인이
그 사람이 아니라, 나로 옮겨온 순간.


이해는 어느 날 머릿속에서 만들어지지만,
용서는 어느 날 마음속에서 ‘도착해 있다.’


나는 그 조용한 순간을 보며 알았다.


마음은 자연의 속도로 치유된다는 걸.
그리고 자연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느리지만
언젠가는 정확하게 제자리에 도착한다는 걸.



5절. “이제 내 마음이 널 놓아줄 준비가 된 것 같다”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늘 어떤 ‘행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워하지 않으려는 노력,
이해하려는 의지,
상대를 받아들이는 결단 같은 것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는… 미움이라는 개념이 없지 않은가.”


태양은 그저 빛을 비춘다.
그 빛을 받아 꽃이 피기도 하고,
그 빛 때문에 잎이 타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태양은 그 둘을 선택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누구를 미워하지도, 누구를 편애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비도, 바람도, 계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축복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시련이 되지만
자연은 감정을 개입하지 않는다.


자연에는 용서가 없다.
용서해야 할 대상도, 미워해야 할 대상도 없다.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날 뿐이다.


그런데 오직 인간만이
상대를 미워하고, 환경을 원망하며
일어난 일을 감정으로 엉켜버린다.


나 또한 그랬다.
그 사람이 떠난 것도,
그 사람이 나에게 준 말들도,
그날의 상처도—


모두 “일어난 일”이었을 뿐인데
나는 그 모든 것에 감정을 달고,
미움과 억울함을 붙이고,
그것을 오래 끌어안고 살았다.


그 감정이 나를 지키는 줄 알았다.
그 감정 덕분에 내 상처가 의미 있다고 느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였다.


미움과 원망이 나를 지킨 게 아니라,
그 감정들이 나를 자연의 흐름에서 가장 멀리 데려가고 있었다.


삶은 본래 흐르는 것인데
나는 몇 년 동안,
하나의 감정에 발목이 묶여
한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사람을 떠올렸을 때 가슴이 조용했던 이유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 조용함은
‘용서했다’는 선언이 아니라,
자연의 속도로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온 결과였다.


용서는 결심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처럼,
아무 의도도 없이,
그저 흘러가며 도착하는 감정이었다.


그를 이해한 건 머리였고,
그를 놓아주는 건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오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이해했고,
아주 나중에야 용서할 수 있었다.
이제 내 마음이… 널 놓아줄 준비가 된 것 같다.”


그 말은 그 사람을 위한 말이 아니었다.
그건 내 안의 오래된 감정을 향한 말이었다.


미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억지로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그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을 것.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면
마음은 결국,
자연이 데려다주는 자리로
자연스레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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