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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려 Apr 29. 2024

부족한 날개로 날아오르는 시간들

"허빵이다."


그 한마디가 터져 나오는 순간, 힘겹게 쌓아온 내 시간들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꾸준히 오랫동안 해온다는 것,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근면성실함일까, 끈기일까, 아니면 단순한 습관에 불과했을까?

순간 많은 생각의 꼬리를 꼬리를 물어가는 마음. 

갑자기 너무나 부끄럽고 너무나 큰 자괴감에 빠져들어간다.



나는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잘 포기하지 않고 오래 붙잡고 가는 편이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닌 이 직장과 작은 책상 구석 자리는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익숙함과 편안함이 있는 공간이 되었다.

2017년, 나는 삼십대 후반에 접어들며 일상에 물음표를 달고 있었다. 결혼 후 10년 가까이 회사와 집을 오가는 반복된 생활 속에서 취미생활이라는 부분이 너무나 메마르고 갈증 나는 상황이었다. 줌바댄스를 배우고 싶었지만 아이를 봐주는 엄마의 도움 아래 새벽 시간을 활용해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것이 바로 수영이었다.

어릴 적부터 물가 근처에 가본 적도 없었고, 물을 무서워하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공포 그 자체였던 물이었다. 그런 곳에서 나는 인생 처음으로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유아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꼴도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레슬링 선수 같은 우스꽝스러운 자태로 시작된 나의 취미생활.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는 유아풀에서조차 겁에 질려 덜덜 떨었고, 킥판을 내려놓기가 두려워 가장 마지막까지 킥판을 내려놓지 못했던 나였다. 늘 벽을 잡고서야 겨우 버티며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초보적인 수준에서 시작한 나의 수영은 코로나 시기가 지나고서도 여전히 취미생활로 이어지고 있다.


운동 재능이 전혀 없는 내가 봐도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발전한 모습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 눈에는 아직도 어설프고,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서툴고 어리숙한 모습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부족하게라도 하는 게 더 나은 삶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재능과 능력의 부재로 인해 우아하거나 멋지게 보이진 못할지라도, 정신력 하나로 버텨내고 이겨내며 달려왔다. 남들보다 부족한 근력, 작은 체구와 힘없는 몸뚱아리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왔다.


타고난 운동 신경이나 탄탄한 체력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사실 나는 정말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이렇게 부족한 게 많으니 그것을 채워나가야만 했다. 오늘 아침 5km 달리기에서도 최고 심박수가 194를 찍었다. 누군가에겐 살랑살랑한 달릴길이겠지만 나에겐 여전히 힘겨운 일이었고,  "달리면서 이야기해봐" 라는 누군가의 말에도 숨이 가쁘기만 할 뿐이다.

  

취미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이 금전을 바라지 않고 기쁨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이라고 한다. 전문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여가 시간을 활용해 즐기기 위해 하는 정기적인 활동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정말로 기쁨을 위해서 이 운동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자문해보건대 어쩌면 순수하게 기쁨만을 위한 활동은 아닐지도 모른다. 부족함에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해낸 그 과정 자체가 이제는 나의 성취감이자 기쁨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우리는 흔히 '인내'라는 말을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꾹 참고 견디는 것을 인내라 말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인내란 결코 그런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능동적인 자세,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내의 모습이 아닐까. 내가 취미생활로 수영을 시작하고 꾸준히 이어온 것도 바로 이런 적극적인 인내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한계 안에 가만히 주저앉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 한계를 조금씩 벗어나보려 노력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핵심

그리고 나도 우아하고 예쁘고 멋있고 잘하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라는 것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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