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겨울. 차가워진 바람이 콧끝을 시리게 한다. 아침 새벽, 주섬주섬 옷을 걸쳐 입고 나선 수영장 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신은 하얀 크록스 위, 알록달록한 지비츠들도 이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는 것만 같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해 여름이 지나가고, 짧은 가을이 스치듯 사라지고 나니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몸은 아직 적응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상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마구 요동치기도 하지만 결국 시간은 지나간다. 나는 어김없이 새벽 수영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폐 깊숙이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 때마다, 나는 그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며 그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수영장으로 가는 길, 도로위의 불빛들이 새벽의 차가운 공기와 어우러져 묘한 고요함을 자아낸다. 그렇게 몇 번을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걷다 보면, 문득 삶의 속도를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 읽은 '트렌드 코리아 2025'라는 책에서 기후감수성이란 단어가 나왔다.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적응해야 하는 우리들의 삶.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처럼 새롭고 밝은 호기심이 많지는 않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형태의 궁금증이 나를 자극한다.
예전의 나는 트렌드에 민감했던 사람이었다. 최신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었고, 전현무의 '트민남'처럼 '트렌드 민감 여자', '트민녀'로서 누구보다 빠르게 세상을 느끼고 적응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트렌드의 파도를 쫓지 않게 되었다. 흘러가는 유행보다 내 안에 존재하는 더 깊고 진실한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나다움'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며, 외부의 변화에 휘둘리기보다 내 본질에 충실하고 싶다.
겨울이 되면서 세상의 속도도 느려진 것 같다. 나 또한 그 속도에 맞춰 내 걸음을 천천히 한다. 변화를 쫓던 나 자신에서 조금씩 벗어나, 이제는 나의 본질을 찾고 그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되었다. 급하게 살아가지 않더라도, 빠르지 않더라도 괜찮다. 나는 내 속도로 살아가면 된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내 안에 남아 있는 따뜻함을 끄집어내어 나 자신을 감싸고, 매일 아침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추운 계절 속에서 나만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내 안의 온기를 믿는다. 그 온기로 나를 지키고, 또 주변을 따뜻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그저 변화를 쫓는 민감함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고 내 온도를 지켜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기후감수성의 진정한 의미 아닐까. 변화에 반응하되, 본질을 잃지 않는 것.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며, 내 안의 따뜻함을 유지하는 것.
어느새 겨울이 찾아왔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나는 내 안의 따뜻함을 꺼내어 스스로를 감싼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나 역시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변화들을 맞이하겠지만, 그 모든 것들 속에서도 나는 나답게 살아갈 것이다. 오늘도 나는 세상의 변화와 나만의 속도를 맞추어 가며, 나다움을 지켜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 발견이 주는 작은 기쁨들을 곱씹는다. 갑작스러운 계절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늘도 나의 걸음을 이어간다.
겨울이 차가운 만큼 내 안의 온기는 더욱 따뜻하다. 이 계절을 통해 나는 더 단단해지고, 내 삶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다독이며, 내 속도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