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는 아이에서, 제데로 먹는 어른으로의 발걸음
나는 어릴 때부터 뭐든 잘 먹는 아이였다.
"영아, 일어나라~!" 엄마의 한마디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엄마도 내가 잘 먹는 걸 알았기에, 도시락 반찬으로 커다란 무 한 덩이를 툭 넣어준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깍두기처럼 잘라 넣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아이 셋을 키우며 바빴던 엄마는 그런 사소한 디테일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주는 대로 먹었고, 반찬 투정 없이 자랐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뭐 먹고 싶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고, 먹어야 하면 그냥 먹는다.
소울푸드, 나에게도 있을까?
사람들은 우울할 때 매운 음식이 당긴다고 하고,
어떤 이는 몸이 아프면 특정 집의 음식을 찾으며,
또 어떤 이는 슬플 때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떠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음식이 없다.
굳이 하나 찾으라면, 커피 한 잔 정도.
재즈 음악이 흐르고, 커피 향이 가득한 공간.
어쩌면 그곳이 나에게 음식 같은 위로를 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요리에 관심이 없었고, 귀찮다는 이유로 대충 먹으며 살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검색창에 레시피를 검색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이상 수치들.
간수치는 정상을 벗어나고, 위는 좋지 않고, 백혈구 수치도 정상 범위를 넘나든다.
음식으로 위로받기보다는,
건강한 음식을 통해 건강한 내가 되기 위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좋은 재료로, 좋은 음식을 먹으며 몸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요리에 관심이 없던 내가 조리도구를 사고, 레시피를 찾아보고, 직접 요리를 시작했다.
평소 자주 먹던 두부와 양배추도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 보니,
이제는 요리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마치 마술처럼 느껴진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쁘다는 핑계로 시켜 먹던 배달 음식을 줄여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 토요일 늦은 아침.
늦잠 자는 아들을 위해 오랜만에 김밥을 싸 본다.
엄마가 싸주던 김밥과, 내가 싸는 김밥.
현미밥 위에 햄, 맛살, 오뎅, 계란, 단무지, 그리고 옛날 소시지까지.
하지만 아직 요리가 서툰 나는 김밥 말다가 터지고,
재료들은 김밥 속 구석구석 숨어버린다.
내가 먹을 김밥은 좀 더 건강한 버전.
렌틸콩과 병아리콩이 들어간 현미잡곡밥, 씻은 김치,
그리고 얼마 전 레시피를 보고 만든 양배추 당근 라페를 넣어 말아 본다.
김 위에 올려진 거무스름한 밥,
야채가 가득한 김밥.
모양은 볼품없지만, 한입 베어 물면 내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느낌이 든다.
나는 엄마에게서 '소울푸드'를 물려받지 못했지만,
지금 내 작은 발걸음이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소울푸드가 될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정성껏 싼 김밥 한 줄.
아들이 먹고 건강해지길 바라는 이 마음이,
그에게 전해졌기를 바라본다.
그게 내 욕심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