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그냥 잠들고 싶다

by 미려

단 1초라도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법은

죽음을 생각하고 사는 것이란다.


죽음.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신앙이 있는 사람은 영생을 바라고,

어떤 이는 사후세계를 바라고,

또 다른 이는 윤회를 생각한다.


각자가 떠올리는 죽음은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죽음을 얼마나 자주 생각하며 살까.


나는 죽음을 생각하고 살지는 않았다.


지금보다 신앙의 깊이가 더 깊었던

대학입시 시절,

스트레스로 버거웠던 그때

어린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시험도 치르지 않아도 되는

하늘나라가 이 땅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건 죽음에 대한 사유라기 보다

현재를 피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간절한 시기였다.


지금은 나는

이따금 죽음을 생각한다.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죽음은

친할아버지의 죽음이다.


추운겨울,

깡촌 시골길.

몸이 좋지 않아

논두렁을 걸어가시던 할아버지 뒷모습.

그게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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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엔 병원이 아니라

할머니 댁에서 장사를 치뤘고.

아빠의 서글픈 곡소리.

아고아고..하는 곡소리는

어린 나에게 너무 슬펐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의 그 슬픔은

지금도 마음 한쪽에 남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죽음은

예전처럼 사무치지 않는다.


몇 해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토록 울고 불던 시간도

이제는 과거가 되었고,

요즘의 나는

할머니를 거의 떠올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작년에는

오래 모시던 목사님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신 뒤

두 달간 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셨다.


남겨진ㄱ 건

1억 원이 넘는 병원비와

남은 가족들의 몫이었다.


보험이 없었다면

그 죽음 이후의 삶은

죽음보다 더 가혹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남편의 죽음을 생각한다.

작년에 몸이 좋지않아

식겁한 경험이 있어서다.


어떤 죽음이 좋을까?


이기적이지만

한방에 깨끗하게

남은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는 죽음.


오랫동안 희노애락을 꿈꾸며 살면 베스트지만

그렇지 않다면

남은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을 죽음


나 역시 마찬가지다.


철학자들이

스스로의 죽음 선택하는 이유도

아마 찬란했던 자신을 기억하며

그 순간을

마지막 선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독하다.


죽음에도 독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잘 죽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마지막을 생각하고

오늘을 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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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그냥 자고 싶다.


죽음 앞에서

뭐가 그리 중요할까?


아닌가?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아마

아무 생각없이

잠을 청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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