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나무로 빚는 에세이
쇠 파이프로 만든 바리케이드는 세련되지 않은 기술자가 대충 남아도는 자재를 성의 없이 용접한 듯하였다. 처음 만들었을 때는 무슨 칠이라도 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빛바랜 회색 바탕에 드문드문 녹이 슬어 마치 오래된 물건임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했다. 바리케이드가 먼저 눈에 띈 것은 아니었다. 늘 다니는 산책길이지만 활짝 핀 황금빛 마리골드꽃이 없었다면 그런 집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마치 ‘우리 집이 여기 있소’라고 광고라도 하듯, 집주인은 대문 옆에 마리골드를 심어 놓았다. 저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었으니 반가운 마음에 꽃을 보러 한걸음 달려갔던 것이다. 그런데 꽃 앞에,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바리케이드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엉뚱한 곳에 눈길이 갔다.
‘분명 저기에 뭐라 쓰여 있었을 텐데….’
바리케이드 상단 아래에 붙은 사각형 철판에는 아무런 글자가 쓰여 있지 않았다. ‘주차금지’라는 글자가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마리골드꽃을 가로막고 있으니 나는 그곳을 멤돌며 온갖 상상을 하고 있었다.
‘꽃을 꺾지 마시오.’
‘눈으로만 보시오.’
음…. 이런 문구는 재미도 없고 식상하다.
‘어디 가시나요? 꽃이 여기 있는데.’
‘마음에 드신다면 안으로….’
‘찬 바람이 불면 꽃차 한잔?’
이런 문구라면 정말 매혹적이다.
이 집 주인이 혹시 설치 미술을 하는 사람인가? 아무리 실험적인 미술이라도 물건을 아무렇게나 가져다 놓는다고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니, 작가라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정교하게 만든 주파수를 던지는 중일 것이다. 이렇게 온 우주로 퍼져가는 주파수를 누군가 우연히 잡았을 때 그는 감동과 상상이 혼합된 여운에 취하여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을 수밖에. 만일 그 작가가 이런 나의 모습을 숨어서 관찰하고 있었더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라면 그분이 떠나기 전에 달려 나와 반갑게 인사를 나눌 것만 같다.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서 뭘 하고 계시는가요? 저 빈 철판에 뭐라고 쓰여 있을지 상상하고 계셨나요? 그렇다면 정말 반가워요. 제 작품을 알아보시는 분을 드디어 만나다니요. 사실 저 꽃이 다 져버리도록 제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지,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유쾌한 상상을 하였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작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집 주인이 나타나서 남의 집 대문 앞에서 왜 서성거리냐며 소리 지르거나 신고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어, 나는 그저 재미있는 상상을 안고 다시 산책을 나섰다.
미술 작품이 나의 발걸음을 오랫동안 붙잡았던 적이 있다. 어느 도시든 첫발을 디디면 으레 찾아가는 곳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다.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그렇게 들린 곳이었다. 사실 이곳에 들어가자마자 거의 모든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은 고갱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화보집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이 작품이 그곳에 걸려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4미터에 육박하는 엄청난 그림의 크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압도적인 크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관람객에게 고갱과 보스턴 미술관을 각인시켜 주기에 충분했지만, 그 그림 속에 담긴 삶의 심오한 철학은 순위가 밀려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만 그럴까? 누군가 고갱의 그 그림이 어땠냐고 물으면 엄청 크다는 말을 가장 먼저 할 것 같다. 그러니 그때도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그 그림 앞을 도망치듯 떠나고 말았다.
정작 내 걸음을 붙잡았던 그림은 미술관의 한쪽 구석, 작은 방에 걸려 있었다. 물론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고갱의 대작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의 액자는 처음엔 너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그림 속의 붓질은 머릿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고흐와의 첫 만남을 끄집어냈다. 중학교 시절, 겨울 방학을 하루 앞둔 미술 시간에 너무나도 낭만적이었던 미술 선생님은 고흐의 화보집을 가지고 들어오셨다. 산만하기 그지없던 그 중학생들에게 선생님은 한 장 한 장 그림을 넘기며 작품 설명을 해 주셨다. 그 많은 작품 중에, 나는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계곡 양옆으로 울퉁불퉁하게 쌓인 바위 사이를 세찬 물줄기가 어지럽게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무엇이 바위이고 무엇이 물인지 알 수 없는 혼돈, 그것은 흡사 어지러운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닮았고, 그런 하늘을 매일 같이 쳐다보며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던 열다섯 살의 나였다.
나는 방안에 주저앉아 그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들어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기에 그곳은 오로지 나와 그림만 있는 비밀 공간인 듯했다. 고흐는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했던 사춘기 나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낡은 붓을 들고 내 마음을 그려 주었다. 한 획, 두 획, 두툼한 유화 물감은 캔버스 위를 지나갔고, 마음 위에 마음이 쌓이듯 칠한 곳을 다시 덧칠해 나갔다. 오후 내내 나는 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문을 닫기 전까지 고흐가 그림을 완성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관람을 곧 마감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다른 명작들을 거의 보지 못한 채 얼른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아쉬운 마음은 기념품점에서 달랬다. “나머지는 책으로 보지 뭐.” 화보집을 들고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그저 나는 고흐의 <협곡>(Ravine), 그 그림 하나만으로도 평생 행복할 것만 같았다.
그 이후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사로잡은 미술 작품은 없었다. 하지만 그림을 보는 나의 마음은 분명 바뀌어 있었다. 유명하다고 하니 한번 봐 보자는, 그래서 그걸 봤다고 자랑하고 싶은, 그런 마음은 확실히 없어졌다. 작품을 보는 나름의 재미도 찾았다. 기억을 부르는 그림, 내가 갈 수 없는 세계로 상상의 나래를 달아주는 작품이 좋았다. 얼마 전 서양화를 전공한 제자가 졸업 작품전을 한다고 연락이 왔을 때도 그랬다. 그 친구의 작품은 눈에 띄지 않는 한쪽 구석에 걸려 있었다. 한눈에 이해가 되었다. 다른 작품들이 온갖 화려한 옷을 입고 벽면을 채우고 있을 때. 그의 그림에는 하얀색 캔버스 위에 오로지 검은색 막대기 몇 개만 쓰러질 듯 말 듯 위로 뻗어 있었다. 제자는 집 뒷산에 올라갔다가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라고 했다.
“저게 그림이야?”
“저런 건 나도 그리겠다.”
구경 온 사람들은 작가가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속삭였다. 작가의 얼굴에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여유로운 웃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보스턴 미술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의 작품 앞에서 많은 시간 머물러 있었다. 제자의 그림이라 더 애착이 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그 앞에서 시간을 보낼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림 속에서 나무 하나하나를 만졌고, 두툼한 껍질 사이로 나오는 향기를 맡았다. 가지에서 뻗어 나온 새순과 그곳에서 터져 나오는 꽃과 열매의 아름다움을 상상했다. 심지어 나는 그 숲속에 집을 짓고 있었다. 목수가 된 내가 나무를 자르고, 이어 붙여 작은 오두막을 짓고 있는 상상을 하니 가만히 서 있어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고, 맛있는 음식 대접을 하고 싶었다. 옆에는 작은 텃밭을 만들고, 그곳에서 키운 각종 채소를 모아 근사한 만찬을 준비한다. 그렇게 친구들의 수다와 웃음소리는 졸업 작품의 빈 곳을 화려하게 채우고 있었다.
채워진 것보다는 비어있는 것,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이 좋다. 그들은 내 무의식을 자극하고 상상을 흔들어 깨운다. 저곳에 무엇이 있었을까. 그곳엔 뭐라 쓰여 있었을까. 그것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사람들은 각자의 상상대로 그곳을 채워 간다. 그 사람의 생각과 저 사람의 생각이 달라도, 당신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달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곳은 채워도 채워도 계속 채워지는 마법 같은 공간일 테니까.
오늘따라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 보고 싶어진다. 철없던 시절, 졸업하고 만남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지금쯤 멋있는 백발의 낭만주의자가 되어 있으실 것만 같다. 누군가는 산만하게 떠들고, 누군가는 잠을 자고 있던 중학교 교실 어느 구석엔가, 선생님이 보여주신 그림을 보며 평생토록 행복에 젖어 있는 학생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