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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림 Nov 06. 2024

흐르는 게 맞다

흙과 나무로 빚는 에세이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냥 하는 말인지, 정말로 중요해서 그런지 알지 못한 채 그저 공식처럼 아무런 현실 감각 없이 흘려듣는 말이 된 지 오래다. 느지막이 일어나 평소처럼 거울을 보면서 이를 닦고 머리를 빗었다. 화장실은 잠깐 머물다 가는 버스 정류장 같기에 후다닥 할 일을 마치고 나오기 바빴는데, 그 날따라 모르는 정류장에 무작정 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참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본다. 힘없이 이마 위로 내려앉은 머리카락, 그 아래 눈곱 낀 힘없는 눈과, 이제 막 재채기를 하여 얼이 빠진 코와 입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근래에 이렇게 오래 나를 본 일이 또 있었을까.


“누구세요?”


   보면 볼수록 낯선 누군가가 서 있는 것만 같다. 정말 나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지만,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첫인상 덕분인지 저 사람은 그저 나일 거라며 고개를 휘저었다.


“커피는 첫맛이죠!”


   누군가 스치듯 건넨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런 공감 없이 한쪽 귀로 흘려보냈다. 그 말을 다시 주워 담은 건 일주일이 지난 후, 두 시간쯤 운전하고 가야 하는 길에서였다. 운전석 오른쪽에 놓여 있던 커피를 담은 텀블러를 보면서 그 말이 생각났다. 진한 쓴맛에 상큼한 산미가 가미된 따뜻함이 혀와 목을 타고 내려간다. 맛있다. ‘이 맛에 운전을 하지.’ 하지만 두 모금, 세 모금을 마실수록 혀는 그 처음을 기억할 뿐 그 맛이 무엇인지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다. 마치 첫 기억이 재방송되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을 뿐, ‘아마 그 맛일 거야. 왜냐하면 같은 커피니까.’라는 말을 되뇌며 텀블러 한 통을 다 비웠다. ‘그러네. 커피도 첫맛이 중요하네.’




   도예공방에 새로 오신 분이 커피 드리퍼를 만들고 싶다고 하였다. 처음 배우는 분들은 보통 작은 찻잔을 만든다. 손으로 흙의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으로 흙을 조물조물 만지다 보면 밀가루보다는 약간 더 까칠하고 고운 모래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흙 반죽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처음부터 커피 드리퍼라니. 물통을 나르고 마대로 바닥 청소부터 시킬 기세였던 도자기 선생님은 의외의 대답을 하셨다.


“그거야 아주 간단하죠.”


   옆에서 물레를 돌리던 나는 갑자기 집중력이 흐려졌고 잘 올라오던 흙은 우그러졌다. 예전에 호기롭게 드리퍼를 만든다고 시도하다가 모양도 생각대로 안 되고, 찌그러지고 깨져서 포기했던 기억이 났다. ‘간단하다고? 그땐 저렇게 말씀 안 하셨는데, 너무 하시네.’ 선생님은 어리숙한 신입생에게 길을 안내하듯 그분 옆을 떠나지 않고 가르쳐주셨다. 그분이 만든다기보다는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다는 생각이 드니, 은근히 부러움에 욕심이 섞이면서 나도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났던 것이다.


   내 생애에 커피 드리퍼를 언제 처음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첫인상은 아마도 특이한 물건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커피를 좋아하게 된 이후에도 드리퍼는 드리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대신 내 마음을 먼저 사로잡은 건 소모품인 커피 필터였다. 모름지기 있다가도 없어진다면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일요일 아침, 몹시도 커피가 당겼던 그날, 원두를 갈고 물을 끓인 후에야 필터가 다 떨어졌다는 걸 알았다. 급한 마음에 주방 서랍 이곳저곳을 뒤적거리다 예쁘장하게 접혀 있는 면포가 눈에 띄었다. 나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고 그 영특함을 칭찬하며 드리퍼에 면포를 올렸다. 거친 종이보다 부드러운 면으로 커피가 내려올 테니 그 맛 또한 기가 막힐 거라며 한껏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렇게 내린 커피의 첫맛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야릇했다. 두 모금 이상 마실 수가 없었다. 급히 아내를 불러 물어보니 그 면포는 리코타치즈를 만들 때 썼던 거란다.


   그 비릿하고 고약한 커피 맛에 그대로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다음 날 당장 면포를 사 왔다. 여러 겹으로 두툼하게 접고, 촘촘하게 바느질도 하여 면 필터를 만들었다. 면 필터는 일회용이 아니니, 돌려가며 쓰려고 세 개 정도 만들었던 것 같다. 공장에서 나온 깔끔함은 없었지만, 마치 초등학교 시절 계란프라이를 처음 만들어 먹었을 때의 자부심 비슷한 게 느껴졌다. 커피 물이 들어 진한 갈색으로 변한 면포도 뭔가 감성적이지 않냐며 아내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면 필터까지 만들어 커피를 내려 마셨음에도, 정작 필터를 받치는 드리퍼는 늘 당연한 것이었고, 당연함의 다른 이름은 무관심이었다. 도자기 선생님이 “그거야 아주 간단하죠.”라고 말씀하신 날이 되어서야 나는 집에 와서 드리퍼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 내 얼굴을 구석구석 살폈던 것처럼, 한참 동안 드리퍼를 이리저리 돌리고 뒤집어 가며 보고 또 보고, 만지고 또 만졌다.


“너는 뭐니?”


   보면 볼수록 낯설고 희한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저 커피 내리는 도구일 뿐이라고 되뇌려는 순간, 그랬다간 도저히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함을 느꼈다. 드리퍼 안쪽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커피가 내려가는 구멍으로 하얀 불빛이 들어온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기억의 익숙함이 올라왔다.


   식물 가꾸기를 취미로 즐기셨던 아버지는 따뜻한 봄이 되면 화분 갈이를 하셨다. 어린 꼬마의 취미라면 아버지의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흙이 비워진 화분 속을 처음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안에 큼지막한 구멍이 있었던 것. 심지어 아버지는 새로운 흙을 담기 전에 돌로 그 구멍을 메우고 계셨다. ‘구멍은 왜 뚫어 놓고, 그걸 또 막는 이유는 뭘까.’ 세상에서 가장 희한한 그릇! 어린 시절 화분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그랬다.


   드리퍼를 손에 들고 한참 보고 있자니 화분을 똑 닮아 있었다. 화분도, 드리퍼도 담는 게 아닌 흐르도록 하는 게 목적인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오래전, 화분 갈이를 잘못하여 취업 기념으로 산 내 최초의 반려 식물을 떠나보냈을 때도, 그 시절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마셔보자고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며 좋은 드리퍼를 찾아 헤맬 때도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릇이란 무언가를 담는 물건이라는 내 생각은 언제부터 생겨났던 것일까. 그 고정관념으로 지금껏 모든 그릇과 도자기를 바라보았으니 나는 얼마나 세상을 어리석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 첫인상에 대한 막연한 신뢰는 이렇게 깨져버리고 말았다.


   사실, 흐르는 게 맞다. 물은 화분을 타고 내려와 메마른 뿌리를 적시고 다시 땅으로 흐르고, 물은 드리퍼에 잠시 머물러 커피 향을 머금고는 아래로 흐르고, 또 물은 컵에 잠시 담겼다가 마른 목을 타고 우리 몸으로 흘러간다. 머무르는 시간이 다를 뿐, 담는 그릇도 다시 흐르게 한다. 영원히 담긴다면 썩을 뿐, 세상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이 있기나 할까. 그러니 첫인상도 흐르고, 첫맛도 흐르고, 나도 흐른다.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도 흐르는 게 맞다. 다만 드리퍼에서 커피가 내려오듯 가볍게 흘러가고 싶다.




커피 드리퍼를 만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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