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흔드는 사람들 - 은진, 박정옥
상가들이 밀집된 곳까지 가려면 1킬로 정도 걸어야 했다. 내가 살던 작은 동네에는 구멍가게 두세 개와 식당 두어 개, 이발소와 자전거포가 다였다. 각종 장난감으로 유혹하던 문구점과 고소한 기름 냄새로 걸음을 멈추게 했던 통닭집은 1.5킬로 정도를 더 걸어가야 있었으니, 부모님에겐 다행이었다.
서점은 상가가 늘어선 대로변에 있었다. 아담했지만 가장 많은 책을 볼 수 있던 곳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그곳에 가서 참고서를 사주셨다. 당시에는 고를 수 있는 종류가 많지 않았다. 고작 두어 개 출판사가 독점하다시피 하던 때였다. 학년이 하나씩 올라가자, 문제집 종류도 늘었고,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은 무슨 책을 본다더라 하는 얘기가 돌았다. 한 살씩 먹을수록 서점에 머무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갔다.
동네에서 좀 산다는 친구 집에는 거실 양쪽이 온통 책이었다. 그것도 어른 책이 아니라 각종 그림책과 어린이용 전집, 백과사전들이었다. 친구들과 나는 하교를 하면 그 집에 가서 숙제를 했다. 백과사전을 뒤지고 이런저런 책에서 필요한 걸 베끼고 나면 다음 날 선생님은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까지 하라고 하셨다. 우쭐한 기분에 그 집을 구멍가게처럼 드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집 아줌마가 맛있는 간식을 매일 해주실 만도 했겠다 싶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과 그 친구들이 자기 집 거실에 모여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서 어느 부모가 흐뭇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학년이 되면서 우리들의 발걸음은 점점 서점 쪽으로 옮아갔다. 서점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세상에는 문제집 말고도 재미있는 책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는 한 사람도 이탈하지 않고 6학년을 마무리했다. 한 사람이 책 한 권씩 사서 돌려가며 읽었으니 한 권 값으로 3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때 읽었던 책에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과 『왕자와 거지』도 있었고,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도 있었다. 『데미안』은 6학년 아이에겐 어려운 책이었다. 그저 자랑하기엔 좋았다.
최근 은진 작가의 수필집 『감정 버튼』을 읽었다. 책의 마지막 꼭지에 어린 작가가 3천 원짜리 『오델로』를 손에 넣은 이야기가 나온다. 서점 주인은 책을 고르고 있는 아이에게 얼마를 들고 왔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손에 들고 있던 돈은 3천 원. 주인은 아이가 실망하지 않도록 비싼 책 대신 딱 3천 원짜리 책을 추천해 주었고 그게 바로 『오델로』였다고 한다. 그 시절엔 아이가 3천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았을 텐데, 그 돈을 들고 서점으로 향했을 마음을 상상해 보았다. 내 인생 첫 서점이 생각났다.
은진 작가는 브런치스토리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매주 어반스케치를 배우러 다닌다는 작가의 그림은 한눈에 나를 사로잡았다. 어둠에 잠긴 도시를 수성 연필로만 그려낸 그림은 요즘도 안개에 갇힌 퇴근길을 마주할 때마다 늘 떠오른다. 작가의 그림에서 회색 도시하면 생각나는 황량함 대신 차분함과 평온함을 느꼈다. 분명 그림에는 고층 빌딩이 줄지어 서 있는데, 내겐 수 없이 반복된 사계절의 감정을 품은 나무처럼 느껴졌다. 볼 수록 켜켜이 쌓인 그 감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감정 버튼』에는 다양한 나무가 등장한다. 놀리기 아까운 시골 땅에 심었다는 이팝나무부터, 농부였던 작가의 아버지와 가족들이 키웠던 과수원 복숭아나무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나무에는 시간이 담겨 있었다. 안타까운 시간, 사랑하는 시간, 애타는 시간, 힘들었던 시간, 후회의 시간, 안도의 시간, 행복한 시간. 감사의 시간…. 그렇지. 그 그림은 시간의 나무가 도시라는 옷을 입고 있었지.
작가의 글을 읽으면 나무가 다양한 옷을 입는다. 「유턴해도 괜찮아」가 기억난다. 후배와 동기들이 관리자로 속속 승진하자, 작가도 대열에 들어서기 위해 시골 학교로 근무지를 옮긴다. 그리고 매일 아침 시골 출근길에서 마주치는 길고 긴 차량 행렬에 자신의 삶을 대입한다. 작가는 때때로 곡예 운전을 하는 사람들과 앞지르기 위해 역주행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작가도 그들처럼 한 번쯤 앞지르기를 시도했다가 이내 유턴을 하고 만다. 나는 그 유턴을 나무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으로 해석했다. 불편한 정장과 딱딱한 구두를 신고 화사한 조명을 걸친 나무 말고, 편한 옷을 입은 나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무의 모습을 보았다. 30년의 교직 생활을 뒤로 하고 작가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나는 수필에서 삶을 배운다. 숨이 턱까지 차는 급박한 상황을 수필은 더 길고 더 깊게 숨 쉬라고 하고, 더 멀리 더 느리게 보라고 말을 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쳐 혼자 있고 싶을 때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도 학교 앞 서점보다 그 서점을 다녔다. 수필집 한 권을 끼고 돌아와 방안에서, 기차에서, 카페에서 함께했다. 나는 읽고 있지만 내 얘기를 들어주는 책, 그것이 수필이었다.
올해 내 얘기를 들어주었던 수필집이라면 박정옥 작가의 『가죽벨트가 있던 이발소』를 빼놓을 수 없다. 처음 읽은 박정옥 작가의 글은 북한산 둘레길을 산책하다가 어느 파란 지붕 집 담벼락 줄에 걸린 빨래집게에서 시작되었다. 그 글을 읽을 때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와 있었다. 대기실에 사람들이 많았다. 기다리고, 검사하고, 진료하고, 치료까지 4시간이 훌쩍 흘렀다. 지루하다면 지루할 수 있는 그 시간을 나는 작가의 수필로 채웠다. 빨래집게에 매달린 양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로 옮아갔다. 어린 내가 살던 그 옛집이 생각났다. 우리 집에도 마당 한가운데 빨랫줄이 지나갔다. 두 개의 장대가 마당 가운데에서 줄을 받치고, 물기 덜 빠진 스웨터와 바지, 셔츠, 양말을 무겁게 지탱하고 있었다. 한여름 어머니는 소낙비에 마당으로 뛰쳐나가셨고, 겨울엔 꾸덕꾸덕 얼어버린 양말을 아랫목에서 녹이셨다. 구멍 난 양말을 기우던 작가의 어머니는 이제 아흔의 나이에 치매와 함께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친정을 찾은 작가에게 새 양말을 찾아 건네는 어머니. 난 그 장면에서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대기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환자분이 괜찮냐고 말을 건넸다.
박정옥 작가의 수필을 읽다 보면 나의 옛집,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당신들의 고단했던 삶, 숨기고 싶던 우리집 가난과 누르고 눌러야 했던 울음이 한 장 한 장 겹치며 흘러간다. 그리고 책은 괜찮다, 괜찮다, 위로의 말을 해준다. 작가의 글은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두꺼운 대지를 받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삶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짓궂은 장난부터 시작하여 화분에 핀 조그만 제비꽃, 강변을 가로지르는 참게, 손주와 함께 기르는 토마토를 관통하고, 지나온 그리움을 바람에 놓아주는 넉넉함으로 이어진다.
올해, 『감정 버튼』과『가죽벨트가 있던 이발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는 옛집의 녹슨 대문이 생각났다. 대문이랄 것도 없었던 그 집으로 처음 이사를 하고, 아버지는 먼저 대문다운 대문을 세우셨다. 기울어져 가는 대문 기둥에 강관을 박고, 페인트를 칠하고, 우편함을 만드셨다. 수십 년간 나는 그 집 대문을 열고 닫았다. 울고, 웃고, 두렵고, 벅차오를 때도 그 문을 드나들었다. 두툼했던 초록색 페인트가 세월만큼 나이 들고 녹슬어갔어도, 내 기억으로 가는 첫 대문은 여전히 변함없이 거기 있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방황할 때면 그곳 대문을 열고 내 얘기를 들어달라 청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