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나무로 빚는 에세이
남향으로 창이 나 있는 교무실에 앉아 있으면 햇살이 따사롭게 창을 넘어 들어온다. 유난히 나른한 오후가 있다. 떨어진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걸 창 너머로 바라보다가 눈이 부셨는지, 졸음에 겨웠는지 눈을 감았다.
똑똑. 얼마 동안 눈을 붙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노크 소리와 함께 살며시 문이 열렸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몽롱함 속에서 고개를 돌렸다. 단발에 동그란 얼굴의 학생이 조심스레 들어왔다. 문이 닫히자, 발뒤꿈치를 들고 두리번거린다.
“누구 찾니?”
“…….”
다섯 명의 선생님이 업무를 하는 공간에는 그날따라 나 이외엔 아무도 없었다. 내 물음에도 학생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선을 피했다. 사람을 찾는다기보다 사람을 피하고 싶어 하는 눈빛이다. 잘못 들어왔으면 제 발로 나갈 것이고, 필요한 게 있으면 물어보겠지. 나도 그 눈을 피했다.
“혹시, 상담하면 확인증이라는 걸 주시나요?”
이윽고 학생은 문 앞에서 우물쭈물 물었다. 입안에서 맴도는 소리를 나는 듣기 평가하듯 겨우 알아들었다. 쉬는 시간에 선생님과 상담하느라 수업에 늦으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상담 확인증이라는 걸 써준다.
“제가 확인증이 필요한데요.”
“누구랑 상담했는데?”
“…….”
묵묵부답이다. 담임 선생님이 누구인지 물어봤다. 그 선생님은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출장을 갔고, 하루 임시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수업 중이었다. 나는 그 반 수업을 일주일에 고작 한번 들어간다. 학생 얼굴이 익숙지 않았다. 누구랑 상담했는지 재차 물었더니, 금세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급기야 울먹이기까지 한다. 확인증이란 게 꼭 필요한 거냐,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냐 등등, 엉뚱한 질문이 이어졌다. 대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말하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문밖으로 나갈 분위기였기에 나는 들을 준비가 됐다는 무언의 표시를 계속 전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죠? 사실 제가 수업에 10분 정도 늦게 들어갔거든요. 선생님이 화를 내면서 왜 늦었냐고 소리치시길래 얼떨결에 상담했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당장 확인증을 가지고 오라고….”
10여 년 전 그날도 모든 선생님이 퇴근한 조용한 교무실에 눈물 가득한 얼굴로 들어온 친구가 있었다. 다짜고짜 내 옆에 앉더니 솔직하게 말해도 되냐며 말문을 열었다. 수업 시간에 본 쪽지 시험 얘기를 꺼냈다.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지난 수업 내용을 복습하는 간단한 평가였다. 그 시험에서 옆 친구 시험지를 그대로 베껴 썼다는, 그래서 며칠 동안 죄책감에 시달려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그는 짧은 얘기를 30분 동안 돌리고 돌리며 얘기했다. 입을 조그맣게 벌리고 우물거렸기에 그때도 나는 말을 해독하느라 진땀을 뺐다. 응. 그래. 그렇구나. 담담한 척, 알아듣는 척하고는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을 맞추며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혼내야 할지, 위로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우는 사람 앞에서 괜찮다는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없는 이 오묘한 상황에서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저, 0점 처리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면 마음이 편할 거 같아?”
“네.”
나는 서랍에서 학생의 시험지를 꺼내어 기존 점수를 지우고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 그는 연거푸 허리를 숙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미동이 없는 문을 계속 쳐다보았다. 이걸 감동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 한쪽이 따뜻해진 건 분명했다. 이후로 내 수업에서는 외워서 푸는 쪽지 시험을 없애고 오픈북 테스트를 도입했다.
거짓말을 했다며 고개 숙인 학생 앞에서 나는 다시 혼내야 할지 위로해야 할지, 아니면 어떻게 돌려보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침묵이 어색했다.
다음 쉬는 시간이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선배 선생님이다. 다짜고짜 거두절미, 내가 학생과 어떤 얘기를 했는지 궁금해했다. 학생 앞에서는 대쪽 같은 선생님이지만 선한 성품의 선배이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충분히 이해했다고 웃는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아는 것도 중요하고, 마음을 보듬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미 알고 있기에, 나는 마음을 품어주기로 하였다. 수업 선생님께 짧은 쪽지를 써서 학생 편에 보냈고, 전화를 기다렸다. 가르치고 기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진심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구겨져 단단히 뭉쳐진 마음을 펼쳐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