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프레임이야!
'표창원의 사이다 인터뷰' - 라는 것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앵커의 질문을 그대로 받아서 역으로 돌려준다. 마치 유도나 씨름에서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기술을 본 것 같았다. (이런 거 보면 코에이의 게임 삼국지에 있는 '문관'의 설전이 생각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xhQGaozrkk
심리학 책인 줄 알았다. 아니면 뇌과학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치학 책이었다. 프레임에 관한 책이었다. 코끼리 얘기를 이곳저곳에서 하도 들었더니 이렇게 지레짐작하고 있게 되나 보다. 시작하기에 앞서 책의 추천사 중 한 줄을 옮겨본다.
-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정치인들의 말이 완전히 새롭게 들릴 것이다. / 티나 브라운
미국 사람이 쓴 미국 정치 상황에 맞는 책이지만 한국 상황에도 들어맞는 것이 참 많다. 10년 전에 나왔던 책을 세월을 반영하여 업데이트한 개정증보판이다. 일단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 유명한 코끼리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p 20. 제가 버클리 대학에서 '인지과학 개론'이라는 수업을 진행하며 프레임 연구를 강의할 때, 맨 처음 일은 학생들에게 한 가지 과제를 내주는 것입니다. 그 과제는 바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인데요, 말 그대로 무슨 일을 하든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이 과제에 성공한 학생을 단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단어들이 그렇듯 코끼리도 그와 상응하는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어떤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끼리는 몸집이 크고, 퍼덕이는 귀와 엄니와 긴 코를 가지고 있고, 밀림에 서식하고, 서커스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 다른 특징도 가지고 있지요. 이 단어는 그러한 프레임에 의거하여 정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합니다.
일찍이 리처드 닉슨은 그 진리를 뼈아픈 방식으로 깨달았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그가 한창 사임 압력을 받고 있던 당시의 일입니다. 이때 그는 TV에 나와 연설을 했는데 여기서 닉슨은 전 국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모두가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이 일화는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프레임 구성의 기본 원칙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상대편의 언어는 어떤 프레임을 끌고 오는데, 그것은 내가 원하는 프레임이 아닙니다.
정치란 고도의 언어 싸움이다. 정치인들의 멘트 하나하나는 바둑을 두듯이 다 노림수가 있다. 포석이 있다. 곧이곧대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기는 한데, 그것도 노림수가 없이 정말 그냥 막말하는 수준인 사람은 거의 없다. 바둑 두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프레임은 결국 언어 싸움이다.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리 속에 개념이 작동하는 회로를 만드는 것이 프레임을 다루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라 할 수 있다. 프레임에 없는 개념은 튕겨 버린다. 작동하지를 못한다. 자 여기서 질문. 타히티에는 왜 그렇게 자살률이 높은 걸까?
p 59. TV에 출연한 보수주의자가 '세금 구제' 같이 두 단어로 된 말을 한 마디 합니다. 그러면 진보주의자는 자기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 한 단락짜리 길이의 논설을 풉니다. 보수주의자는 세금을 내는 것이 고통이라는 이미 자리 잡은 프레임에 호소하는 데 '세금 구제'라는 짧은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상대편에게는 확립된 프레임이 없습니다. 물론 그래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기존의 프레임도 이미 자리 잡은 개념도 전혀 없기 때문에 품이 훨씬 많이 듭니다.
인지과학에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저인지'입니다. 이 용어는 필요한 생각의 부재, 즉 한두 단어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하고 고정된 프레임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저인지'라는 개념은 1950년대 타히티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사람은 인류학자이자 심리치료사였던 고 밥 레비였습니다. 그는 왜 타히티에는 그렇게 자살률이 높은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고, 타히티 사람들에게 '비통'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비통을 느끼고 경험했지만, 그 경험에는 이름도 개념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 경험을 정상적인 감정으로 여길 수 없었습니다. 비통을 치유하는 의식도, 비통을 위로하는 관습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절실히 필요한 개념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높은 자살률로 귀결된 것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인 보수주의자들을 욕하고 그들의 지지자를 욕한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지지할 수 있냐고. 어떻게 저렇게 멍청한 사람들을 지지하는 멍청한 선택을 하냐고.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은 멍청하지 않고, 똑똑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프레임을 다룰 줄 안다.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있고 사용하고 있다.
p 48.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냥 보수주의자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해버립니다.
그들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그들은 똑똑하기 때문에 이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는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두뇌집단이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지식인들을 지원하고, 많은 책을 쓰고, 자기들의 생각을 대중에게 전파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보수 세력은 하나로 뭉쳤고, 투자를 했다.
p 42. 베트남 전쟁 중에 그들은 미국의 대다수 똑똑한 젊은이들이 보수주의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보수주의자'는 더러운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1970년에 당시 미 상공회의소 회장이던 루이스 파월은 닉슨에 의해 대법원 판사로 임명되기 불과 두 달 전에 '파월 메모'라고 알려진 메모를 남겼습니다. 이 메모는 훗날 보수주의의 운명을 결정한 문서가 되었습니다. 그는 나라의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청년들이 반기업적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보수주의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썼습니다. 파월은 대학 안팎에 연구소를 세울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연구하고 책을 쓰고 이 젊은이들을 올바른 방식으로 사고하도록 가르치는 교수직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진보를 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큰 틀의 진보적 가치에서 같은 그룹이다. 진보와 보수를 도덕의 문제로 설명한다. (<진보: 자상한 부모> <보수: 엄격한 아버지>의 상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반목한다.
보수도 나뉘어 있었지만 뭉쳤다. 그리고 프레임을 장악하기 위한 투자와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그 결과가 보수의 프레임 안에서 놀아나는 진보다. 예를 들어서 이렇게.
p 120. 보수 세력은 정치가 도덕성의 문제임을 이해하고 도덕을 근거로 삼아 이 제도를 공격하기로 했다. 그들은 '자유'와 '생명'이라는 두 도덕적 영역을 택했다. '자유'와 관련하여 그들은 이 제도가 '정부의 보험산업 장악'이라 공격했고, '생명'에 관련해서는 이 제도에 '사망선고위원회'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몇 달에 걸쳐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이는 정부가 보험을 장악하자는 게 아닙니다." 하고 말할 때마다, 그는 정부의 장악이라는 어구를 사용함으로써 청중의 뇌 속에서 정부의 장악이라는 생각을 활성화하고 결국 보수 세력의 공격을 더 강화해주었다.
계속해서 프레임 안에서 놀아나는 것만 봐왔던 야권 지지자들이었기에 표창원의 영상이 사이다로 느껴졌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떻게 뭐?' 까지 다루는 책이다. 보수의 전략을 분석하고, 진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말한다. 개개인의 차원에서도, 장기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결국은 프레임 구축에 힘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민주당으로부터 어떤 쟁점에 대해 몇 주 안에 확산시킬 말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실소한 적이 있다고 한다. 프레임은 무슨 슬로건처럼 며칠 만에 뚝딱 만들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프레임은 슬로건이 아니다.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풍성하게 다루고 있다.
- 보수가 원하는 작은 정부란 무엇인가?
- 연금은 고용주가 제공하는 부가적 혜택인가?
- 미국인들은 왜 '오바마 케어'는 싫지만 '저렴한 건강보험법'은 좋다고 답했을까. (같은 법인데)
- 기업주가 '일자리를 창출한다' vs 노동자가 '이윤을 창출한다'
- 이슬람을 '박살'내는 것이 정말 문제 해결이 될까?
- '법정 변호사' (한국적 상황에선 국영 변호사 같은)를 '공공 보호 변호사'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마지막으로, 세금은 폭탄일까 / 투자일까? 아래 두 은유를 보고 전제가 세금에 대한 전제가 다른 두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이것이 프레임의 힘이다.
우리의 부모들은 세금을 통해 우리와 그분들의 미래에 투자했습니다. 그분들은 장거리 고속도로에, 인터넷에, 과학 연구 및 의료 시설에, 우리의 통신 체계에, 항공 체계에, 우주개발 계획에 자신들의 세금을 투자했습니다. 그분들은 미래에 투자했고, 우리는 그분들이 투자한 세금에서 나오는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분들의 현명한 투자 덕택에 고속도로, 학교와 대학, 인터넷, 항공 등의 자산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광고가 몇 년에 걸쳐 수없이 반복하여 게재되거나 방송된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세금은 미래를 위한 현명한 투자다.'라는 프레임이 확립될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른 은유를 들어봅시다.
세금은 우리가 미국에 속한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납부하는 회비다. 우리는 컨트리클럽이나 스포츠 센터에 등록하면 회비를 낸다. 수영장을 지은 것은 내가 아니지만, 내가 이것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구장을 지은 것도 내가 아니지만 누군가는 여기를 청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스쿼시장은 이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회비를 낸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들은 유지될 수가 없고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버뮤다로 이전하는 기업들처럼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도망가는 이들은 나라에 대한 회비를 내지 않는 것이다. 납세자는 곧 애국자다. 우리나라를 저버리고 회비를 내지 않는 것은 나라에 대한 배신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