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격 음담패설 - 여자는 허벅지

산뜻한 야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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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의 머리말에 있는 내용이다.


언젠가 아버지는 나에게 재능이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삶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게 시인의 재능이고 책임감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실연당한 이는 시집을 통해 위안을 받고, 낯선 땅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전에 그곳을 가본 사람들의 여행기에서 몰랐던 길을 찾아낸다. 우리는 이런 목소리를 듣고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이 책에 완벽하게 적용되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p 312. 옮긴이의 말


작가는 어느 대담에서 에세이에 대해 "작가의 문학도가 얼마나 깊고 얕은지 알 수 있는 장르"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런 그녀의 말대로 <여자는 허벅지> 또한 다나베 세이코가 그동안 일궈 낸 문학의 성과를 전방위적으로 드러내는 내공 있는 작품이다.

다나베 세이코는 1971년부터 1990년까지 20년에 걸쳐 주간지 <슈칸분슌>에 칼럼을 연재했다. 연재 기간만으로도 엄청난 이 칼럼은 연재 직후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만 15권에 이른다. 당시의 칼럼은 '가모카 시리즈'라고 불리며 특히 인기를 모았는데, 일본의 팬들과 작가들에게는 두고두고 읽힐 정도로 손꼽히는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는 "다나베 세이코 씨의 대단함을 가장 많이 느꼈던 작품이 바로 <슈칸분슌>에 연재한 에세이"라고 말하면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성에 대한 이야기가 묶여 있는 책이다. 성교육은 아니다. 음담패설이다. 음담패설인데 전혀 지저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 화자가 여성인 점, 그리고 작가로서의 필력이 너무 엄청나서 그런 것 같다. 전혀 어둡고 찝찝하지 않다. 전설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밝고 산뜻한 성 이야기가 여기 있다!




p 306. 해설- 사카이 준코


이십 대 때 엄마가 제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빠가 '준코는 다나베 세이코 씨 같은 작품을 쓰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단다."

음담패설을 그만두기는커녕 너무나 좋아하고, 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에세이만 쓰고 있던 저였습니다. 부모로서 '젊은 딸이 음담패설이라니. 다나베 세이코 씨처럼 지적이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인생의 깊이기 느껴지는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시는 건 당연하겠지요. 그 후 아버지의 바람도 지당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좋아하는 거라서 어쩔 수 없다"며 열심히 음담패설을 쓰며 지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다나베 세이코 씨도 음담패설을 쓰시잖아! 그것도 이렇게 적나라하게... 우리 아버지는 이걸 몰랐을까? '조몰락거리는 여자'를 아버지 무덤 앞에서 낭독해 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히죽히죽 웃으며 읽다가 깨달았습니다. 음담패설에 관한 소재만 다루고 있는데 전혀 천박하지 않다는 것을요. 마치 좋은 기름으로 바삭하게 튀겨 낸 튀김처럼 전혀 위가 거북하지 않았습니다.


... 저는 이 책을 다 읽고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맛있었다고 생각하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말하고 싶으셨던 건 '음담패설을 쓰지 말라'는 게 아니라 '어차피 쓸 거라면 다나베 세이코 씨처럼 감동적인 음담패설을 써라'가 아니었을까. 오, 아버지! 당신이 하고 싶었던 말씀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습니다. 바삭한 식감의 음담패설을 쓸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부디 저승에서 지켜봐 주세요. 저는 마음속으로 손을 모았습니다.


해설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겪은 남자들의 음담패설은 여자를 성적 대상화하고, 도구화한다. 여성의 인격은 없다. 많이 불편하다. 야한 얘기가 싫은 건 아닌데, 이런건 싫다. 얘기하는 사람은 즐겁지만 대상화되는 사람은 역겨울 수 있다. 위의 말대로 튀김으로 표현하면 끈덕끈덕 눅어진 기름에 절여져 있는 튀김이랄까. 그에 반해 이 책은 정말 '감동적이기'까지 한 음담패설이다. (ㅋㅋ) 그만큼 격도 높다. 격이 높다는 게 성을 고상하게 포장해서 말하고 뭐 미학적으로 어떻고 그런다는 게 아니다.


횟감으로 비유하면 조금 잘못 다루면 비릿 맛이 엄청 날 수 있는 글의 소재가 '성'인데, 그것을 엄청난 능력의 요리사가 요리하니 '와, 이게 이런 맛이 날 수 있는 거였어?' 하는 느낌인거다.






윤동주 시를 읽다가 '시는 글로 그림을 그리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소설도 그렇고 수필도 그렇다. 한 마디로 문학이란 그런 것이다. 글로, 단어로, 문장으로, 언어로 읽는 사람의 내면에 그림을 그려낸다. 작가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작가의 대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읽어 본 적은 없다. 다른 작품도 읽어본 적 없다. 이 책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런 작가라면 얼마든지 믿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주제에 대해 저자의 사고의 흐름이 이어지다가, 대부분 '가모카 아저씨'와의 술집에서의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런 식이다.


p 214. 형사에게 잡혔을 당시 그녀는 화려하게 꾸민, 서른 정도로 보이는 아가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문에 실렸던, 언뜻 보면 회사원 같기도 하고 아줌마 같기도 한 지명수배 사진과 달라도 너무 달라서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어떤 신문이든 그 점에 대해 보도할 때는 그 말투에 놀라움이 묻어나 있었다. 기사를 쓴 사람이 대부분 남자라서 그랬는지, 남자들의 놀림 섞인 말투가 지면에 그대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자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사십 대든 오십 대든 여자가 그러고 싶으면 서른 살 아가씨로 변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라는 사실을 우리 여자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중인격 따위가 아니다. 그저 남자가 여자를 너무 모르는 것이다.


사십 대 여자 동창회를 가 보면 잘 알 수 있다. 엄마와 딸이 나와 있나 싶을 정도로 나이 차이가 많아 보이는 친구가 있다. 혹은 선생님이 오신 줄 알고 당황하게 만드는 할머니 같은 친구도 섞여 있다. 하지만 모두 동갑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다. 환경과 운명, 옷 입는 취향, 마음가짐에 따라 그렇게나 달라지는 것이다.


오쿠무라 쇼코 씨의 경우는 다른 사람의 눈을 속여야 한다는 필사적인 목적이 있었기에 오히려 의식적으로 더 그렇게 했겠지만, 이 점은 여자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고 남자들을 헉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고도 통쾌했다.


이것 또한 마흔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능력이다. 아직 젊었을 때의 앳되고 예쁜 모습이 남아 있는 데다가 꾀를 부리기 시작하면 젊은이들은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 그런 여자가 비장의 무기를 다해 싸우면 세상 물정 모르는 남자 따위야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말씀. 알겠나, 이 융통성 없는 남자들아.


"역시 여자한테는 자유자재로 변하는 능력이 있다니까. 그렇지?"

여자들이 끄덕이자 가모카 아저씨는 주뼛거리며 말했다.


"남자한테도 자유자재로 변하는 곳이 있는데..."

"아주 내쫓아 버릴 거예요!"

내 혼날 줄 알았다.


이것은 시리즈를 끌어나가는 일종의 장치이자 연출인데, '일드'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읽고 있노라면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진다. 너무 매끈한 솜씨여서 의식하지 못할 정도다.






저자에 대해서 궁금해봐서 검색했더니 완전 할머니다. 무려 28년생... 12년 지나면 100세 되신다. 아직 살아계시는 것 같은데 나이가 나이다 보니 2000년 이후로 새로 발표한 작품은 없다고 한다. 50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진짜 후덜덜... 내공이 이해가 간다)



p 106. 초경


이렇게 요즘은 57년생, 59년생 아이들까지도 마치 몇십 년 동안 물장사해 온 여사장들처럼 익숙해 보인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그날 전후가 되면 훌쩍훌쩍 꺼이꺼이 울기도 많이 울었고, 세상이 허무한 것 같아 우울해지기도 했으며, 이 세상 근심과 괴로움을 혼자 다 떠안은 표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두려운 기색도 없고, 그날인데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예사로 뛰어다니며, 생리대도 아까워하지 않고 펑펑 쓴다. 명주천을 빨아 말려 가며 사용했던 우리 세대와는 무척이나 다른 것 같다. 단 한 가지 같은 것은 "아빠한테 말하면 나 화낼 거야!"라는 대사와 엄마가 아빠한테 그날 바로 말해 버린다는 부부의 그런 망측함 정도다.



57년생, 59년생을 '아이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에게는 어머니 뻘인데...








읽으면서 약간 '응? 페미니즘 운동하는 여성분들이 본다거나 하면 좀 불편해하겠는데...?'라는 지점이 가끔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굉장한 것이, 이 시리즈의 연재가 70~90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28년생이니까 작가의 나이 40대~60대에 걸쳐서 쓴 이야기다. 그때 '여성'이 이런 글을 주간지에 연재했다. 는 건 시대 보정하고 보면 엄청 앞서 나간 것 아닐까. 그래도 세대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읽는 이들이 이 지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되어시일까. 옮긴이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주었다.


p 316. 만약 이 에세이를 읽으며 이따금 남자와 여자에 대한 편견을 보았다면, 다나베 세이코가 전쟁과 고도성장 사회 = 남성 중심 사회를 겪은 일본의 여성 작가라는 점을 감안해 주었으면 좋겠다. 남학생에 비해 열등하고 불순한 존재라 여기며 자란 여학생 다나베 세이코가 이 정도의 '분별력'을 획득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여자'라는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다나베 세이코라는 작가의 '정체'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시대 빼고, 작가의 현재 나이 빼고, 연재 당시의 나이로만 생각해서 읽으면, 중년의 여자 작가가 들려주는 성 이야기가 된다. 어린 연배한테는 '이리 와, 여자를 알려줄게' 하는 느낌이다. 동년배의 중년 남성들에게는 아내 또래의 여자들이 생각하는 성에 관한 이야기 (여자의 은밀한 욕망 - 이랄까)를 엿듯는 느낌이다. 중년 남성이 중년 여성의 그런 대화에 참여하게 되기는 쉽지 않으니.



김부선_'말죽거리_잔혹사'_-_3.jpg 이리 와, 여자를 알려줄게 - 라고 해서 이런 느낌은 아니다. -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中


적나라한데, 유쾌하고, 발랄하고, 재미있다. 몇 개만 맛보기.



p 32. "말하자면 그때로군요." "어떤...?" "남자가 일을 끝낸 다음이요."


남자의 몸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하물며 남자의 성적인 부분이다. 더더욱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저 막연하게 유추할 뿐.


"남자의 욕망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남자도 그러고 싶어 지면 눈앞이 깜깜해지고 머릿속이 윙윙거리며 다른 생각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순간적으로 '으악'하고 몰아치는 에너지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발산하기만 하면 곧바로 마음이 후련해지고 평정심을 되찾습니다. 이제 조금 이해가 가십니까?"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다.



(앞서 말한 저자의 경험담은 택시에서 오줌을 참은 이야기였다)



p 38. 여자의 성욕은 머나먼 절에 있는 종과 같다. 어둠 속에 숨겨져 있지만 그윽하고 강한 소리를 내며, 여운이 어둡고 묵직하게 깔리면서 음파를 형성하고, 그 음파는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여자를 유혹하려고 하는 건 무거운 죄다.


여자의 욕구는 느리게 다가온다. 아까 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 아직도 뭐가 부족한 거냐, 남자들은 모두 여자의 욕심에 진력이 난다고 말하지만, 여자의 성적 만족은 단순히 톱니가 맞물리느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유치한, 혹은 간단하고 천박한 것이 아니다. 남자를 거미줄로 공들여 휘감고 아이를 만들어 둥지를 꾸리는 그 긴 시간 동안의 충족을 말하는 것이다. 한두 번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남자의 성욕과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알겠는가?


성욕. 남자에게 그것은 주사기에 들어 있는 약간의 에센스이고, 여자에게 그것은 양치액처럼 희석시켜 오래도록 쓰는 것이다. 또는 남자에게 그것이 한 방울의 향수라면, 여자에게 그것은 샤워하고 넉넉히 바르는 오드콜로뉴 같은 것이다.




비유가... 정말... 쩐다...




p 135. "제 말이 맞죠? 보통 남자들은 자신이 좋으면 여자도 좋을 거라고 단정 지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가모카 아저씨는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뭐 그럴 수도..."

"그럴 때 남자는 뭐라고 해요?"

"여자한테 물어보겠지요. '좋지?'라고..."


그러면 안 된다. 그렇게 물었을 때 안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땀 흘리며 고생하는 남자에게 별로 안 좋다고 솔직히 말할 수는 없다. 그놈의 정이 뭔지. 개중에 더 착한 여자는 억지로 애교를 부리며 남자한테 맞추려고까지 한다.


그럼 남자는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여자는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쉬며 단념해야겠다며 우울해하는데, 남자는 완전히 엉뚱한 곳에 공을 던지고 혼자서 즐거워한다. 정말 손발이 안 맞아서 못해 먹는다니까.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이 칼럼을 읽고 반성(?)을 했을까.





무려 20년간 연재한 시리즈이기 때문에, 아마 다른 부분을 묶어서 계속 출간될 것 같다. 캬. 좋은 기획이다. (출판사에 박수 짝짝짝) 제목 누가 뽑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이 안 가기 어려운 것 같다. 출판사와 나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괜찮은 책이 많이 팔려야 계속 나온다고 생각하기에 소개하고 싶고,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바다출판사 번창하시길!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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