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만들어 줍니다. 미술사를 보는 눈을.

'난처한' 미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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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네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줄여서 난처한 미술이야기. 미술 관심 없는데 썸남 혹은 썸녀가 미술 좋아하냐고. 데이트로 박물관이나 미술관 가자고 하면.. 생각만 해도 난처하네요.


저는 미술사에 1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고흐를 좋아하고, 운보 김기창을 좋아하는 정도. 좋아하는 화가가 두 명 있는 정도입니다. 제가 살 확률이 제로였던 책입니다. 펼쳐볼 생각도, 이쪽 서가에 갈 생각도 안 할 책이죠. 그런데 왜 샀느냐. 알라딘에서 책을 사는데 옵션에 이 친구 샘플북 신청이 있었습니다. 샘플북이니까. 공짜니까. 읽어보고 관심 없으면 버리고 재밌어 보이면 낚이는 게 샘플북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낚인 거죠.


샘플에는 50p정도 있었을까요? 그렇게 봤는데 재밌더군요. 더 읽어보고 싶고, 이 책을 따라가면 미술사를 재미있게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출판사나 유통사가 아무 책이나 다 샘플북을 만들지는 않잖아요. 편집자는 좋은 책임을 확신하는데 그냥 냅둬선 많이 나갈 일이 없어 보이는 책. 그런 책들에 마케팅 비용을 들여가며 샘플북을 찍어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제 경험상 샘플북=좋은 책 타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자 그럼 본론으로.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스코 이후 현대 미술이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상을 하나 보실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2hiFqqqjTxQ

라스코 동굴 가상투어 영상


샘플북에 들어있던 게 이 부분이었습니다. 라스코 동굴 이야기. 학교 다닐 때 어디선가 이런 그림과 내용을 봤던 것도 같네요. 교과서에서 '분명' 봤을 법한 그림 하나 더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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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기억나십니까. 빗살무늬토기입니다. 수능 국사 영역에 꼭 나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책에서 이 사진과 함께 말하는 내용을 조금만 옮겨볼게요.


p 19.

요즘 사람들도 살기가 팍팍한데, 원시인들은 정말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기가 힘들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빠듯한 삶을 살면서 그릇에 굳이 무늬까지 집어넣은 이유가 궁금하네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해주셨는데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지금 그 질문에는 한 가지 편견이 깔려 있습니다. 바로 장식은 본질이 아닌 부가적인 요소라는 생각이지요. 무늬는, 아니 좀 넓게 보자면 미술은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부차적인 활동이라는 생각입니다. 정말 그러까요? 장식이 오히려 본질일 수는 없을까요? 빗살무늬토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적어도 이 토기를 만든 이들에게는 장식이 더 본질적인 요소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릇을 빚는 것'보다 '무늬로 장식하는 것'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았던 것 같거든요.


어때요.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호! 흥미롭네..!' 싶었습니다. 사진 하나 더 볼까요? 설명을 듣기 전엔 그냥 돌입니다.


KakaoTalk_20160819_203120277.jpg 주먹도끼라고.. 기억나요?


p 26.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주먹도끼의 고고학적 가치가 아니라 모양입니다.


주먹도끼의 모양이요?


네. 언뜻 이야기가 나왔지만, 주먹도끼를 보시면 뚜렷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의도한 게 아니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죠.

도구적 기능에만 충실했다면 굳이 주먹도끼를 좌우대칭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껍질을 벗기든, 찌르든, 자르든, 어쨌거나 날이 잘 들기만 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 주먹도끼를 만든 누군가는 좌우대칭의 형태를 만드느라 굳이 '안 들여도 될' 공을 들였습니다. 처음에 봤던 빗살무늬토기의 무늬처럼 과한 장식을 한 거죠.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이론이 있는데, 그중 재미있는 걸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진화생물학자 머렉 콘의 이론입니다.

머렉 콘은 주먹도끼를 만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주먹도끼를 필요 이상으로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쉽게 말해, 멋지게 만든 주먹도끼를 가져가면 이성에게 잘 보일 수 있었다는 거에요. 훌륭한 주먹도끼를 만들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솜씨가 좋다는, 바꾸어 말하면 머리가 좋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이걸 섹시한 주먹도끼 이론 Sexy Handaxe Theory라고 합니다.



어떠세요, 빗살무늬 토기와 주먹도끼가 좀 다르게 보이시나요?


느끼신 분도 있겠지만..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서술방식을 가상의 청자를 내세워 서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는 대화의 방식으로 이어갑니다. 책을 읽는 경험이 아주 신선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권위자가 친절하게 나만을 위해 세계 곳곳을 함께 다니며 작품을 보여주고,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세계 미술 투어를 다니는 느낌이었어요. 딱딱하고 지루하고 재미없게 여겨질 수 있는 미술사라는 주제를 아주 편안하고 쉽게 풀어주고 있었습니다. 설명을 듣다 보면 '아 이게 정말 재미있는 거구나...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구나...' 싶으면서 '다르게' 보이는 거죠. 이전엔 없던, 미술을 보는 '눈'이 생겨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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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영상에서 보셨던 라스코 동굴의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보면 느낌이 잘 안 오죠? 그런데 밑에 도식화해놓은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보다 보면 궁금증이 생깁니다. '원시인들은 이걸 왜 그렸을까?' 사냥감을 많이 잡기를 기원하면서요? 저 거대한 황소를요?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하시길... ^^)



1권 1부는 원시 미술, 2부는 이집트 미술, 3부는 메소포타미아 미술입니다.


좋은 책은 끝나는 게 아쉬운 책이죠. 이 책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2권 구매를 위해 알아보니, 무려 9권까지 나오 예정이라고 하네요. (기사 중에서) 2권 그리스·로마 미술, 3권 기독교 미술, 4권 르네상스 미술이 이어진다. 5권~8권까지는 각각 17세기부터 20세기 미술이, 9권에는 한국미술이 담길 예정이다. http://news1.kr/articles/?2656687


이쯤 되면 행복한 비명을 질러도 되겠네요.

퀄리티가 끝까지 유지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미술사를 공부하는 것은 세계사를 공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입니다. 가장 재미있게 세계사를 공부하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집트 미술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면 이집트 역사도 알게 되고, 왕조도 알게 되고, 언제 정복당했는지도 알게 되고, 뭐 그렇습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게 많아집니다. 이집트 미술 파트에서 피라미드 관련해서 재미있었던 내용 조금 옮기고 책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p 253. 이때 많은 노예들이 희생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텐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해입니다.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같은 거대 건축물을 지은 사람들은 노예가 아니었어요. 평소에는 농사를 짓던 일반 백성들이 농한기에 피라미드를 지었다고 합니다.


노예를 동원하지 않았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생계를 버려두고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됐을 백성들도 불쌍하네요.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피라미드 건설은 복제 제도에 가까웠어요. 농사일이 없어 놀고 있는 백성들이 일정한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도록 했던, 고대 이집트식 뉴딜 정책이었던 거죠. 백성들은 일정한 임금을 받으며 피라미드를 쌓았습니다. 돈뿐만 아니라 몸보신하라고 마늘도 나눠줬고요. 몸이 아플 때는 물론이고 친구들과 잔치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도 작업에 빠질 수 있었다고 하니 노예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이라고 했는데, 공부하는 느낌이 전혀 안 났습니다. 여행을 다니는 것만 같았어요. 저자와 편집자와 출판사와 동굴에 벽화 그린 원시인들에게까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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