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못 보는 사람들도 우리의 장치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안을 고민할 때, 나는 빌어먹을 투자자본수익률(ROI)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 내가 오직 ROI만을 보고 일을 진행해주길 원하는 사람은 우리 회사 주식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면 됩니다."
- 2014년 5월, 팀 쿡
내 머리속에서 팀쿡과 잡스의 관계
읽기 전,
잡스: 한고조 유방 / 팀쿡: 재상 소하
읽은 후,
잡스: 광개토대왕 / 팀쿡: 장수왕
혹은 태종과 세종
기업의 시대, 전 세계에 있는 회사 중 가장 가치가 높은 기업의 수장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투자결정에 매우 중요한 정보일 것이다. 제목대로 팀 쿡이라는 인물을 탐구한 책이다. 책이 내게 남긴 인상을 몇가지로 정리한다.
1. 공급사슬관리(SCM)의 천재
돌아온 잡스가 만난 애플은 정말 엄청나게 엉망이었다. 특히 생산-운영-공급 관리는 처참했다. 공급망이 우연하지 못한데다 수요예측까지 엉망이면 재앙이 발생한다. 엄청 많이 만들어놨는데 너무 안팔라셔 창고비용이 끔찍하게 나가거나, 주문이 말도 못하게 밀려드는데 생산여력이 떨어져서 기다리다 지친 고객이 취소한 금액만 꼽아봐도 10억달러에 이르는 상황.
애플은 이 두가지 고통을 다 겪었다. 1993년에는 쌓인 재고로 인한 고통. 1995년에는 생산량 부족으로 인한 고통. 1996년 애플 CEO 스핀들러는 쫓겨나고 1997년 잡스는 돌아온다. 1998년 3월. IMB, IE, 컴팩을 거치며 이 분야의 달인이 되어 있던 쿡은 잡스의 눈에 띄어 스카웃 당한다. 37세의 나이에 세계 전역의 사업 운영부문 수석부사장으로 애플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제조-유통을 총체적으로 정비해야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취임 후 7개월, 쿡은 애플의 재고를 30일치에서 6일치로 줄였다. 단순히 줄인 것이 아니라 공급사슬 전체를 정비한 것이다. 이후 애플의 전선에는 군량미가 너무 많이 쌓여 좀이 들고 썩어가거나, 탄환 보급이 늦어 빈 총으로 겨누고만 있을 일이 없어진 것이다. 한고조가 천하통일을 한 것은 소하의 보급 덕분이었다. 이때까지만 한정하면 분명 쿡은 잡스의 소하였다.
그는 재고를 증오했다. 1999년 애플의 재고는 2일치로 줄어든다. 당대 업계 최고 수준이던 델을 뛰어넘는다. 이말은 애플의 효율과 재정건전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가 최전방에서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던 것은 팀 쿡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가히 예술의 경지로 SCM개선을 이룬 팀 쿡. 이런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책에서 소개하고 있어 옮겨본다. _ 쿡이 애플에 합류하던 시점에는 산업 디자인팀만 픽업 나온 스트레이트 리무진에 올라 5성 호텔로 향했고 다른 팀 직원들은 모두 택시를 타고 3성 호텔로 갔다. ... 그러나 쿡의 시대에 이르러스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는 운영팀이 스트레이트 리무진에 올라 5성 호텔로 향한다. _
초한지가 끝나고, 한나라 공신 1위는 소하였다. 초한지와 다른 점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잡스는 미리부터 그를 후계자로 준비시켰다는 것이다. 태종이 세종시대를 준비했듯이.
2. 태종과 세종이 다른만큼
잡스와 쿡은 다른 사람이다. 잡스는 소리지르고, 격렬하게 비난하고, 욕도 하는 사람이었다. 태종스타일로 화끈하게 조져버리는(?) 경영자인 것이다. 쿡은 조곤조곤 타입이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질문에 질문을 더해 디테일로 조져버리는 리더다. 이 부분은 책을 좀 옮겨본다.
_ "그는 10개의 질문을 던집니다." 1998년 12월 쿡의 운영 그룹에 합류한 스티브 도일의 설명이다. "그 10개에 대답을 잘하면 열 번 더 물어봅니다. 한 1년 동안 그렇게 하면 9개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단, 하나라도 대답을 못하거나 틀리게 답하면 질문 수가 20개 내지는 30개로 늘어납니다." _
_ 쿡의 운영 그룹을 속속들이 알았다는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D열의 514행에 적힌 이 변화량은 무엇인가요? 그런 변화가 생기는 근원이 무엇인가요? 이런 식으로 질문합니다. 만약 담당자가 세부사항을 모르면 바로 그 자리에서 신랄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 순간 직원 한 명이 쿡이 알고 있던 수치 하나를 틀리게 제시하자, "그 숫자가 맞아요? 여기서 나가세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_
세종과 신하들의 대화기록을 보면, 실무자보다 더 디테일에 강한 리더가 어떻게 논리로 신하들의 고집과 편견을 꺽어버리는지 볼 수 있다. 성군 이미지가 강했지만 인터넷 시대가 깊어지면서 세종밑에서 일하는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는 밈화 될 정도로 많이 알려져있다. 팀쿡의 애플은 세종의 어전회의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D열의 514행에 생긴 변화의 근원이라니... 실력으로 일하는 사람이면 좋겠고 그게 아닌 사람은 끔찍하겠다.
3. 제일 쎈애가 제일 착할 가능성
세계의 기업이 한 학교의 아이들이라면, 애플은 그곳의 짱이다. 가장 강하다. 학교다닐때를 돌아보자. 가장 강한 녀석은 가장 착할 가능성이 있다? 없다? 싸움으로 짱이거나 성적으로 짱이거나 인기로 짱이거나 다 왠지 아닐 것 같다. 애플은 어떨까. 세상 어떤 기업이 애플만큼 커졌을때 윤리, 환경, 노동인권 이슈를 애플만큼 다루고, 개선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잡스가 애플의 CEO로 있던 모든 기간동안 고민하고 행동하고 변화시킨 것보다, 쿡의 첫 1년이 더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책에서는 이 부분을 여러 챕터에 걸쳐 다룬다. 노동인권, 환경, 보안 등의 이슈에 대해 팀 쿡의 애플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4. 그 애가 더욱 쎄질 가능성
모든 것을 읽으며 애플 주식은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더 내릴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쿡이 있는 한. 쿡의 애플은
소비자윤리의식이 날로 높아지는 흐름에 비춰 봤을 때, 가장 큰고 힘이 세서 영향력이 높은 기업이 1차, 2차 하청업체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진정성있게 노력하고 있고, 공급망 전체를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하고 실천하고 있고, 사법당국과 개인의 보안 이슈로 싸울때 물러나지 않으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기와 기술개발에 가장 열심인 기업이다.
NGO가 아니라 기업인 애플은, 이런 노력들을 하면서도 가장 효율적으로 거대한 회사를 운영하고, 최대의 이윤을 실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오케스트라처럼 지휘하는 자가 팀 쿡이다. 광개토대왕처럼 자신에게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가져오며 혁신적인 정벌 전쟁을 벌이지는 않아도, 조용하게 애플이라는 제국을 확장해나간다. 장수왕은 오래 살면서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지킨 왕이 아니라, 선왕 못지 않은 정복군주였다. 팀 쿡에게서 장수왕을 본다.
5. 게이가 세상을 변화시키리라
그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능력있는 사람은 치켜세움받게 마련이다. 권력자의 뇌는 실제로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한다. 엄청난 성과를 일궈낸 사람이 자만하지 않기란, 겸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쿡의 직업 커리어 시작 전인 성장기를 다룬 책의 전반부에 힌트가 있다.
_ 사실 쿡이 사회적으로 무시되는 소수집단에 대해 지원하는 일은 남부에게 게이로 성장한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_
_ "1960년대 앨라배마에서 자라며 특히 동성애자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차별을 목격한 그로서는 가만히 침묵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달았을 겁니다." ... 케리 케네디의 말이다. "이제 그는 잘못된 무언가를 보았을 때 분연히 일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_
그가 중학생일 때, KKK단원들이 흑인 가족의 사유지에서 십자가 화형식을 거행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쿡은 이때의 이미지가 영구이 자신의 뇌에 각인되었고, 자신의 삶을 영원히 바꿨다고 말한다. 쿡의 사무실에는 로버트 F.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의 사진이 걸려있다. 목숨을 걸고 차별에 맞서 싸운 인물을 매일 보는 것이다.
그는 기업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선한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2013년 듀크대학 동창회 연단에서 그가 한 말을 옮겨본다. "저는 모든 것을 접했을 때보다 더 낫게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이 기업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환경은 물론이고 노동문제를 야기하는 공급업체와 협력해 일하는 방식 ... 직원을 대하는 방식 등 모든 것이 여기 해당합니다. 당신의 모든 페르소나가 이 우산 아래에 들어가야 윤리적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을 옮겨본다.
_2014년 5월,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전미공공정책연구센터의 한 연구원은 쿡에게 지속가능성 지향프로그램이 애플의 수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쿡은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앞을 못 보는 사람들도 우리의 장치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안을 고민할 때, 나는 빌어먹을 투자자본수익률(ROI)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 내가 오직 ROI만을 보고 일을 진행해주길 원하는 사람은 우리 회사 주식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면 됩니다." _
같은해 10월, 그는 <블룸버그>에
[팀 쿡이 거리낌없이 밝힙니다] 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이 소수자였기에, 소수자에 속한 사람들이 겪는 고충을 주의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며 자신의 성적지향을 신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위치에 오른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괴물이 되지 않은 비밀이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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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에는 원기옥같은 성격이 있다고 본다. 이런 놈이 잘 되어야 해. 하는 쪽에 나의 자본을 몰아서 힘을 더해주는 것이다. 마땅히 잘될 놈이었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반드시 투자한 쪽에 이윤을 돌려준다. 잡스와 잡스의 애플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들었을 테고, 지금까지 팀 쿡과 팀 쿡의 애플에 대해 이야기했다.
투자는 자기결정이니까, 한 번 스스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애플 주가'를 검색해서 변화 추이를 쭉 살펴보고, 팀 쿡이 애플에 합류한 시점과 그가 CEO에 취임한 시점을 보고, 지금 읽은 내용들을 돌아보라. 애플 주식은 앞으로 더 오를까? 오르지 않을까? 사야할까? 사지 말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