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인사이드 빌게이츠>라는 넷플릭스 다큐가 있다.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아프리카에서 소아마비를 퇴치하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나왔다. 게이츠가 딸에게 비디오를 보여줬다. 화면 속 아이는 소아마비로 인해 제대로 걷지 못한다. 게이츠는 이와 관련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한다.
듣던 딸이 말한다. "그래서, 저 아이를 위해 뭘 해주셨어요?" 게이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화면 속 '그 아이'를 위해서는.
빌 게이츠는 말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도와서는 예산이 감당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소아마비가 근절되지 못한다. 듣던 인터뷰어가 말한다. "그렇게 말해서는 사람들이 감명받지 않을 것 같은데요?"
게이츠의 답. "저는 사람들이 '감명'받는 것에 관심 없습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에 관심이 있죠?"
"최적화" (Optimazation)
다음 장면은 빌 게이츠 재단이 예산과 자원 봉사자 숫자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보는 접근을 통해 소아마비 발병률을 수년에 걸쳐 급격히 낮췄음을 보여주는 그래프와 나레이션으로 이어진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왜 계속 물에 빠진 사람이 떠내려오는지를 보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당장 건져내는 일을 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
빌 게이츠, 그가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이 이렇다.
그런 그가 책을 냈다. 빌 게이츠가 쓴 책. 본 적 있는가? 나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자주가는 온라인 서점에서 저자명으로 봤더니 국내도서 5권이 나온다. 95년, 99년에 쓴 책 2권은 IT 비즈니스를 한창 하던 시절 사업에 도움이 되고자 출간한 책으로 보인다.
05년에 워렌 버핏과 공저로 나온 것은 '쓴' 책이 아니라 대담집을 책으로 묶어 낸 것이고, 09년 나온 책도 미국 유명 기업가들을 인터뷰한 것을 모은 책이다.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20년만에 직접 '쓴' 책인 셈이다. 사업가가 아닌 자선 단체 '게이츠 재단' 대표로서 쓴 첫 책이기도 하다.
왜 책을 썼을까?
게이츠 본인도 이렇게 말한다.
"20년 전만 해도 나는 기후변화에 대해 책을 쓰기는커녕 공개 석상에서 강의를 할 거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 게이츠 재단은 주로 세계 공중보건과 미국의 교육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내 관심은 에너지 빈곤이라는 문제를 고민하다 생겼다."
에너지 소비량과 소득분포를 그래프로 그리면 둘이 상관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한 나라의 문명이 발전할수록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난다. 선진국이 쓰던 에너지 줄이기는 힘들다. 그대로 유지된다고 보고 개발도상국과 극빈국의 에너지 사용 추이가 늘어나면 이런 그래프가 나온다.
가만 냅두면 지구 온도는 5도가 올라갈 것이고,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보던 불타는 지구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책에 잘 설명되어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얼마 전 텍사스에 한파가 들이닥쳐서 전기가 모두 끊긴 것을 모든 사람이 보지 않았는가. 그리고 2주도 지나지 않았는데 텍사스의 오늘 온도는 23도라고 한다. (이건 뭐 화성도 아니고)
그래서 이 아저씨는
책을 쓴 것이다. 생각을 가장 빨리 널리 퍼뜨리는 법이니까.
책은 논리적 글쓰기의 교본처럼, 완벽한 논리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거 분명 어려운 내용 맞는데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개괄하면 아래와 같다.
1. 왜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해야 하는지
- 기온 상승에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2. 제로 달성이 얼마나 어려운지
- 목표달성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장애물을 파악하는 것
3. 기후재앙에 대한 대화를 할 때 짚어야 할 5가지 질문
- 논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새지 않기 위하여
4. 제로 달성은 가능하다는 좋은 소식
- 탄소 배출하는 아래의 각 분야별로
4-1. 전기생산 분야: 510억 톤 중 27%
4-2. 제조: 510억 톤 중 31%
4-3. 사육과 제배: 510억 톤 중 19%
4-4. 교통과 운송: 510억 톤 중 16%
4-5. 냉방과 난방: 510억 톤 중 7%
5.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
- 정부가 해야 할 일
- 개인이 할 수 있는 일
다 읽고 나서 몇가지 적어본다.
1. 소고기를 줄여야 하는 논리적 이유 학습
힘들 때 찾는 음식이 소울푸드다. 내 소울푸드는 햄버거와 떡볶이. 햄버거는 그중에서도 버거킹 치즈버거다. 빌 게이츠 집안은 치즈버거가 전통이라고 한다. 그는 말한다.
"아직도 나는 치즈버거를 사랑하지만, 소고기가 포함된 고기가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된 이후부터 치즈버거를 예전처럼 많이 먹지 않는다."
왜? 소고기는 기후재앙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요약해보겠다. 사람의 위는 하나인데 소는 넷이다. 그래서 사람이 소화하지 못하는 풀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위가 네개니까 박테리아도 많다. 장내 발효 과정을 통해 음식물을 분해-소화시킨다. 여기서 메탄이 발생하고 소는 방귀나 트림으로 배출한다.
세계의 10억 마리 식용 소가 내뿜는 메탄은 이산화탄소 20억과 같은 온난화 효과를 낸다. 전체에서 4%를 차지할만큼 양이 많다. 대안은 식물성 고기나 인공 고기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시장에 이런 수요가 존재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은 이런 시도를 계속 하고, 확대시킨다. 이 책을 한창 읽다가 치즈 와퍼가 너무 땡겼는데 이걸 읽고 플랜트 와퍼를 사먹었다.
버거킹 뿐 아니라 모든 햄버거 업체는 매번 신제품을 내놓는다. 판매통계를 보고 정식메뉴로 올릴지 말지를 결정한다. 잠깐 나왔다가 사라진 와퍼가 얼마나 많은지. 플랜트 와퍼를 정식메뉴로 내놓으라는 신호를 주고 싶었다.
맛은 very good은 아니었지만 not bad 정도는 되었다. 계속 발전하고 빨리 발전해서 콩고기건 인공고기건 원래 와퍼만큼 맛을 낼 수 있게 되면 좋은 일 아닌가.
"수요만 확인된다면 기업들은 저탄소 제품 생산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할 것이다. 그러면 이런 제품의 가격은 하락해 대규모 도입이 더 쉬워질 것이다. 투자자들은 제로 기술을 만드는 혁신적인 기업에 자신감을 가지고 투자할 것이다.
수요 측면에서 신호가 보이지 않으면 정부와 기업이 투자하는 혁신은 실험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애초에 개발 시도조차 없을 것이다. 개발을 할 경제적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2. 이렇게 만드는 비용이 비싸져야 한다.
여행용 치약이다. 하루-이틀 여행 갈 때 가방에 하나씩 넣어가기 좋게 생겼다. 1000원에 8개입이다. 제품을 생산할 때 환경부담금 개념이 전혀 들어가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플라스틱 분해라던지, 탄소배출이라던지 하는 부분을 포함해서 10000원에 팔리면 사람들이 이걸 살까?
사지 않는다. 팔리지 않으면 기업도 만들지 않는다. 조금 불편해도 대용량 하나를 들고 다니라고 문구같은 것을 프린팅해가며 팔 것이다.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게이츠는 탄소 가격제를 말한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제품을 구매하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신호를 시장에 주는 것이다. ... 이렇게 얻은 수입을 에너지가격 상승에 따른 피해보상 차원에서 사회나 기업에 돌려줄 수 있다. 또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연구개발에 투입되어야 한다."
3. 세계 각국의 환경부처 및 정부 모든 고위관료부터 읽어야 할 책
환경부만 읽어서 될 일이 아니다. 국토건설부와 산업자원부와 농림수산부가 이 문제에 대한 인식 없으면 환경부 혼자 뭘 할 수 있겠는가. 각국 정부만 잘하면 되는 문제도 아니다. 코로나보다 더 전 세계 각국이 협력해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게이츠는 구체적으로 (1) 2050년까지 제로탄소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2) 이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정책과 시장구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시, 기후재앙은 코로나보다 몇 배 큰 규모의 사망률과, 경제적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4. 탈원전에 대하여
원래는 탈원전 정책을 지지했다. 바로 옆 건물(일본)에서 도시가스 폭발로 큰 사고가 나고 사람들이 다쳐 죽어나가면 도시가스 끊고 다른 대체제를 찾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게이츠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전세계 사람이 모여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 많으니 모든 자동차를 없애자고 하겠냐고. 인류는 혁신을 통해 자동차를 더 안전하게 만들어왔다. 안전벨트, 에어백, 후방카메라 등등. 원전도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적 혁신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에너지 생산에서의 탄소배출만이 아니라, 발전소를 지을 때 얼마나 많은 탄소배출이 일어나는지를 종합해서 고려하면 더욱 타당한 결론이 된다.
아직 학습이 더 필요한 부분이지만 원전 안쓰면서 확실히 기후재앙으로 다같이 x되는 것과, 위험의 여지는 있지만 100% 사고나는 것은 아닌 원자력 발전을 사용하며 사는 것의 차이인 것 같다. 100% 망하는 것보다는 2.5%의 위험이 나은 것 아닌가 싶다.
발전소 짓고 유지하는 이권에 대한 부분을 더욱더 철저하게 투명하게 만들어서, 부품 빼먹거나 이런 일 없도록 구조정비를 하고 다시 가동해야 하지 않을까.
5. 빌게이츠 입덕
스티브 잡스 팬은 많이 봤어도 빌 게이츠 팬은 못봤다. 잡스가 전형적인 히피 이미지라면 게이츠는 전형적인 너드다. 그러나 <인사이드 빌게이츠>와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을 접하고 나니,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너드가 세상을 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영화에서는 아이언맨에 인류를 구하고 현실에서는 일론 머스크가 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의 프로젝트는 '지구 버리고 도망가자'는 쪽이다.
'지구 고칠 수 있어. 할 수 있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할 수 있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 하고 플랜을 제시하고 기업가로서의 명성을 활용해 각국 정상을 만나고 혁신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 투자하고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은 빌 게이츠다.
성경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7년 대흉년을 앞두고 어떻게 대비해야 그 시기를 견뎌낼지 파라오에게 비책을 제시한다. 그 말을 들은 파라오는 요셉에게 일임하고 덕분에 7년 대기근을 무사히 넘긴다.
현대판 요셉이 빌 게이츠다. 인류 전체가 타고 있는 버스가 벼랑으로 달리고 있는데 이대로 가면 떨어진다고, 확실하게 떨어지니까 이렇게 이렇게 해서 노선을 틀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파라오는 모든 인류다. 모든 인류가 이 사실에 대해 인식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기후재앙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책 속 한 구절은 인용하며 마친다.
"기후변화 대응에서 남을 돕는 것은 스스로를 돕는 것과 같다. ... 인도에서 탄소 배출량이 감축되지 않으면 텍사스도 계속 더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