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잃어버린 꿈과 열정을 찾아서

by 보로미의 김정훈

1961년, 이스라엘의 한 법정에서 재판이 열렸다.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나치의 친위대 장교였다. 나치의 고위관리였던 아이히만은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신분을 위장하고 도망 다니며 살아가다 1960년에 비밀경찰에게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우리가 '나치'와 ‘악’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달리 그의 모습은 꽤나 평범했다. 그리고 아이히만은 평범한 얼굴로 재판 내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마치 수많은 사람을 죽인 이유가 그저 상사의 명령과 행정적 절차를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집필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 재판을 보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녀가 말하길, 잔인하고 포악한 괴물들만 악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역시 악마가 될 수 있다. 타인에게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할 때 말이다. 즉, 남들이 어떻게 느끼고 어떤 입장에 있는지를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 때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것이 바로 ‘악’이라고 그녀는 주장한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악인이 될 수 있으며,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가 말하기의 무능과 생각의 무능을 낳는다는 지혜를, 그녀는 주었다.




살면서 공감 능력이 좋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영혼이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내 얘기를 하기 바빴다. 나는 남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속으로 ‘어떻게 저렇게 사람 말을 잘 들어주지?’하며 감탄한다. 나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청이 미숙한 내가 비교적 쉽게 공감하고 경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정하지 못해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 나는 이런 사람들과 대화할 때만큼은 자세를 앞으로 숙이고 그들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통과 감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나는 그들을 공감한다고 믿었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친구들이나 심지어 과거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공감으로 시작된 행동도 없었다. 그들을 찾아 나서서 이야기를 듣지도 않았다. 내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 ‘공감’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아픔이 어떤지 안다고 입으로만 떠들고 자발적으로 공감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못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아프고 답답한지 알기 때문에. 아니 적어도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냥 모른 채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20살의 나, 21살의 나는 나 혼자만 지구에서 고통을 받는 줄 알았지만 이제는 안다. 21살의 나와 같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에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고 그렇게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에서 시작된 글일지도 모른다. 악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고 하지 않는가. 나 역시 내가 옳다고 믿고 싶다. 나는 악인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내 인생은 떳떳하다고 믿고 싶다. 이 글은 후회 없고 떳떳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나름대로 의도를 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내게 글을 쓰는 의도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 수많은 젊은이 중 단 한 사람만에게라도 공감의 손길을 건네고 삶의 전환을 이끄는 도움을 주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히 이기적인 마음도 있다. 나는 내가 살면서 배운 것을 떠올리고 복습하기 위해 글을 썼다. 이 글은 앞으로 이렇게 살아보자고 스스로에게 다독이는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이 글을 기점으로 내가 깨달은 바를 환기시키겠다는 의도.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이기적인 이유다.




나는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 물건을 찾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물건만 찾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물건을 생각하느라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모든 일상이 멈추고 오로지 ‘물건 찾기’만이 나의 임무가 된다. 그리고 20살의 내가 잃어버린 물건은 바로 꿈이었다.


나는 20살이 되자마자 꿈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하던 공부를 멈추고 꿈만 찾기 시작했다. 꿈을 찾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이러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나의 성격 탓에 나는 20살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꿈만 찾아다녔다.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애초에 잃어버렸는지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를 그 꿈과 사명을 말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 ‘무엇’을 찾기 전까지는 오늘을 살아갈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무엇'을 찾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많은 것을 얻었다. ‘무엇’만 빼고 말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꿈을 찾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꿈을 찾아 다닐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경험과 성찰의 결과물을 공유하고 싶다.


책을 통해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면, 인생의 다음 단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것은 20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종종 하나의 단계가 끝나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 공백의 시기가 생긴다. 그리고 누구나 처한 상황은 다르더라도 비슷한 방황을 겪는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방황의 시기를 잘 견뎌낸 사람들의 경험과 믿음의 지혜가 아닐까? 방황의 시기만큼 내적인 믿음과 그 시기를 현명하게 보낼 지혜가 필요한 시기는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조금은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21살의 나에게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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