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상한 미래의 끝에 도달하기 전까지
누구나 그럴듯한 미래 계획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이고, 어떤 커리어를 쌓아 나갈지에 관한. 하지만 계획의 끝에 도착한 순간 묻는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성인이 된 후 내가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였다. 그전에도 고민을 안한 것은 아니다. 다만 진지하지 않았다. 모호하고 얄팍하게 생각하다가 금방 질문을 덮어두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 계획 너머에 미래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예상치 못한 미래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뒤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내게 물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이제는 이 질문의 무게가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듣고 자란다. ‘나중에 뭘 하고 싶니?’부터 ‘어떤 전공을 들어가고 싶니?’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싶니?’까지. 더 나아가면 '이 회사에서 나가면 뭘 하고 싶니?'까지 우리는 항상 미래에 관한 질문과 살아간다.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들이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은 어른들은 그저 귀여운 꼬마의 대답을 듣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른들은 알차고 계획적인 대답을 기대한다. 학생들은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죽을 지경이다. 왜냐하면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부답스럽다. 듣기만 해도 무기력해진다. 나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내 현실이 답답하다. 나이대와 상관없이 그 다음에 무엇을 할지 몰라 막막한 시기에 도달한 인간은 불안의 바다에서 헤엄친다.
불안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수많은 성인 중 가장 깊은 불안과 막막함에 바다에서 헤엄치는 나이는 20대가 아닐까? 이제 막 성인이 된 20대는 보통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조급함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내가 뭘 하면서 살지 궁금한 한편, 잘 살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받고 싶어하고 ‘그대로만 하면 돼’라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스스로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확인해 본다. 그럴수록 불안감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기만 한다. 나도 당장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느끼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도저히 알 도리가 없다. 남들에게 떳떳한 내가 되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뚜렷한 대답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이 턱하고 막힌다. 언제쯤 답할 수 있을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말 알 수 있는 날이 올까?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학생들에게는 눈 앞에 닥친 현실이 있다. 이번 학기가 끝나면 방학 때는 또 어떤 스펙을 쌓으며 ‘생산적인’ 시간을 보낼지도 막막하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생들의 대답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질문할 여유는 있을까?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이제 막 사회에 들어선 젊은이들은 ‘뭘 준비하고 있니?’라거나 ‘졸업하면 뭘 할 거니?’라는 질문을 종종 접한다. 어른들이 쏘아 올린 작은 질문은 이들에게 거대한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어른들의 질문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이냐는 추상적이고 간단명료한 질문이 아니다. ‘네가 생각하기에 삶은 무엇이냐’에 대한 어려운 철학적 토론도 아니다.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냐. 그 직업을 가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 생각은 하고 있느냐. 잘 하는 게 뭐냐. 너의 장점이나 특기를 살리고 있느냐. 책임감은 가지고 있느냐. 너의 생각이 어떤지 좀 보자’라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내놓는 서두에 불과하다.
질문과 동시에 어른들은 평가표를 준비한다. 우리가 대답할 때마다 평가표로 우리를 평가하려는 모양이다. 우리는 대답한다. “잘 모르겠는데요.” 아, 그들이 평가표에 무언가 적고 있다! 평가 결과가 나왔다.
“생각 없는 애.”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사실은 어른들의 질문은 단순한 커리어 질문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취업’과 관련된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상황을 피해갈 수 있다. 공무원만큼 준비 과정과 미래가 명확한 직업이 없으니 공무원은 질문을 회피하기에 가장 무난한 대답이다. 내가 소속한 전공의 졸업생들이 취업했다는 기업들을 조사하면서 취업도 생각해보고 있다고 둘러댄다. 대충 이런저런 스펙을 쌓고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자격증 시험을 보고 있다고 하면 가까스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불확실한 대답은 오히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부를 뿐이다. 일격에 마무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바쁘게 살고 있는 티를 내면 어른들은 물어보기도 미안해한다. 바쁘게 살고 있는 척하면 어른도 안심, 나도 안심이다. 좋다!
가끔은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할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가 어떤 답을 내놓으라고 던져주기 때문이다. 바로 기업이다. 수많은 기업은 학생을 상대로 미끼를 던진다. 그들은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내가 알려줄게’라고 꼬드긴다. ‘뭘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내가 줄게’라고 속삭인다. 이 학교 저 학교 돌아다니며 자신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우리에게 확신을 던져준다. 매일같이 ‘어디에 취업해야 하지?’라고 질문하는 우리에게 그들은 하나의 구원주다! 이제 불확실한 대답은 없다. 애써 둘러댈 필요도 없다. 당당하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된다.
하지만 찝찝하다. 그 길을 따르려던 순간, 혹은 그 길을 애써 잘 가고 있는 어느 날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을까?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내 열정을 불태울 일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도저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른들이 묻는 “앞으로 뭘 할 거니?”는 커리어 관련 질문일지 몰라도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질문은 단순한 커리어 질문이 아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그보다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나는 어떤 일을 해야 열정으로 불타오를까? 나의 재능은 무엇이고 그 재능과 딱 맞는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 하는 일이 정말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아니라면 어떤 일이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지금까지 왜 이걸 해왔지? 사실 나는 남에게 끌려다니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주체적으로 선택했다고 믿은 모든 것이 사실은 가짜는 아닐까?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걸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정말 내가 선택한 인생이 아니라면 내 인생은 도대체 뭐지? 난 왜 항상 나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기분일까?
그리고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던지는 이들이 있다. 바로 대학교 2학년 학생들이다.
‘대2병’은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단어다. 대2병이란 대학교 2학년이 되고 나서 학생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급격하게 낮아지는 현상을 말하는 신조어다. 아니 신조어였다. 이 단어가 생긴 지는 너무나 오래되었다.
대2병에 걸린 학생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기분이 좋은 날보다 우울한 날이 더 많으며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 내가 누구인지 고민해보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매일 휴학을 입에 달고 산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지만 정답을 찾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전공에 회의감이 들어 공부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한다. 남과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를 만들고, SNS 중독에 빠지거나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나 혼자 외롭고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많아진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느끼며 자괴감을 느낀다.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기 어려워한다.
즉, 대2병에 걸린 대학생은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지금 하는 공부 역시 왜 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방황하고 있다. 희망적인 조언이 있기는 하다. 가끔 어른들은 말한다. ‘어차피 전공은 나중에 쓸모없으니까 전공에 너무 마음 쓰지 말라’. 그 조언을 들은 학생들은 묻는다.
‘그럼 대체 학교는 왜 다니고 있지?'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묻어 둔다. 다른 대안은 없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인문계열의 학생들에게 두드러지는 고민으로, 인문계열의 많은 전공의 경우 이걸 사회에서 도대체 어떻게 써먹는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기술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실무를 배우는 것도 아니고, 중학생을 내 옆자리에 앉혀놔도 그 친구가 나보다 더 잘 이해할 거 같은데 이런 걸 왜 대학교까지 와서 공부하고 있지?’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조언대로 전공과 직업은 별개라는 결론을 낸다면 ‘그렇다면 내가 가진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또다시 찾아온다.
이렇게 보았을 때 대2병은 꽤나 피해의 정도가 심각해 보인다. 증상이 고약한 병이다. 한 학교에 단 한 명만 걸리더라도 마치 학교에 중대사가 생긴 듯 다뤄야 하는 문제는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렇다면 대2병은 정말로 소수만 겪고 있는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EBS 다큐멘터리에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본인이 대2병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는 질문에 무려 66%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비슷한 고민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아무리 과거의 자료라고 하지만 이는 절대 과거의 잔재가 아니다. 사회의 수많은 지표가 지금 현재에도 대2병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따라서 만약 과거의 자료이기 때문에 대2병은 끝났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면 아무 대학교에 가서 2학년이라고 하는 사람을 붙잡고 지금까지 말한 증상을 겪고 있냐고 물어보아라. 10명 중 7명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학교 진학률은 약 80%로 OECD 국가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대학교에 대한 열기는 실로 굉장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당일이 되면 사회 전체가 수능 시간표를 기준으로 돌아간다. 버스 배차 간격도 단축하고 일부 직장인들은 한 시간 늦게 출근한다.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에는 비행기가 이륙할 수도, 착륙할 수도 없다. 대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은 차고 넘친다. 그만큼 앞으로 대2병을 겪을 예정인 학생이 많다는 뜻이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만 이런 고민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사회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문제가 되었지만 여전히 학생들의 고민은 되물림되고 있다.
유일하게 희망을 품어볼 수 있는 사실은 대2병이라는 이름에 있다. 말 그대로 2학년이 겪는 병이라 하니, 대2병은 1년만 지나면 사라지는 병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제 막 성인이 된 학생들에게 찾아온 사춘기일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2병은 2학년만 지나가면 해결된다.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 많은 학생들과 어른들은 그 믿음대로 대2병이 잠시 찾아온 변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시기가 지나면 잡생각은 줄어든다. 불안감도 사라지는 듯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어른이 돼서 다시 찾아온 사춘기라고 생각하거나 사치스러운 고민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2병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대2병은 시작이다. 앞으로 수년간 찾아올 공허함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왜 3학년이 되면 대2병의 증상이 하나둘 사라지는가? 이것이 대2병을 해소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내가 보았을 때 3학년이 된 학생들은 대2병을 해소한 게 아니다. 다른 고통 속으로 들어가서 대2병이 잠시 묻힌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어떤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가? 바로 취업 전선이다. 3학년이 되자마자 스펙 경쟁과 졸업 준비라는 고통을 마주한다. 대학교 3학년을 대표하는 단어로 ‘사망년’이라는 웃지 못할 단어가 있다.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해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기가 보통 대학교 3학년이기 때문에 죽는다는 표현인 '사망하다'가 3학년 발음과 비슷하여 만들어진 단어다.
대학교 3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자욱하게 깔려있다. 어른들도 3학년이 되는 학생들에게 ‘이제는 생각을 좀 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압박을 하기 시작한다. 3학년이 된 학생들에게는 이제 그런 부담을 줘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과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대2병은 시간이 지나서 해결이 되었다거나 잠시 찾아온 변덕이라고 볼 수 없다. 3학년에 찾아온 ‘현실적인’ 문제가 2학년에 찾아온 인생 실존적인 고민을 잠시 덮어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렸다고 봐야 한다. 3학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는다. 이제는 묻는다. ‘어떻게 해야 취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나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순식간에 덮어 버린다.
2학년은 ‘여유가 있는 시기’로 받아들여진다.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 역시 ‘2학년은 아직 아니야’기 때문에 본인 역시 조급함이 적다. 어른들도 ‘그래 아직 2학년이니까’라고 생각해준다. 기업들도 2학년은 인턴 과정이나 설명회에 끼워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2학년은 아직 취업 전선에 차출되지 않는다.
때문에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심적 여유나 시간이 많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해보고 지금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문과 궁금증도 던져본다. 꿈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왜 꿈이 없는지에 대해 고민도 해본다. 지금까지의 인생에 대해 돌아보며 자신의 실수들을 평가해 보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한 자조적인 생각도 실컷 해본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해본다.
놀랍게도 한 학년이 올라가는 순간 이 모든 고민은 사치가 된다. 취직을 앞두는 순간까지 스펙 쌓기 바빠진다. ‘2학년 때부터 할걸’하고 후회한다. 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이 제법 무섭기 때문에 졸업은 미뤄둔다. 면접에서 ‘당신은 졸업하고 나서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은 그들에게 또 다른 공포다.
우리는 나름대로 10대를 알차게 보냈다고 믿었는데 왜 이렇게 무능한 성인이 된 것처럼 느껴질까. 왜 마치 쓰라린 경험도, 성장도 하지 않은 채 커버린 사람이라고 느껴질까? 미국의 의학자 데이비드 시버리는 “책벌레에게 발레를 시켰을 때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경험의 압박을 대비하지 못한 상태로 성인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은 게임의 고수다. 가능성을 넓히는 게임의 고수. 고등학생은 항상 대학 진학이라는 큰 산만 넘자는 생각 하나만으로 공부를 한다. 어른들은 지금 하는 공부가 가능성을 넓히는 게임이라고 알려준다. 고등학생은 어른들의 말을 믿고 가능성을 넓히는 게임의 달인이 되었다.
학생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눈앞에 놓인 문제만 풀면 된다. 대학 지원서에 적은 희망 진로는 모두 대학 진학을 위한 페이크다큐다. 3년간 일관되게 적어온 전공은 죄다 합격을 위한 황금열쇠에 불과하다. 대학만 가면 복수전공을 선택하거나 전공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내 학업에 일관성을 더해주는 진로를 일단 선택한다.
이렇게 그들은 가능성 넓히기의 고수가 되었다. 그들에게 이제 가능성을 좁혀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다. 가능성을 넓히는 게임의 고수에게 이제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골라 달려나가라고 시키면 전혀 준비될 리가 없다.
10대 청소년들은 산을 오르며 꿈꾼다. “정상만 올라가면 나는 영원히 행복할 거야. 앞으로 꽃길만 걸을 거야.” 그렇게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거쳐 도착한 산의 정상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잘 왔는데 이제 다시 걸어 내려가서 또 다른 산 올라가야 돼.”
그럼 우리는 묻는다. “눈앞에 이렇게 많은 산이 있는데 나는 어떤 산에 올라가야 돼?” 우리는 뭘 해야 할지 모른다. 거대한 산 뒤의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 계획이 존재했다. 성인이 되면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어왔다. 수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고리타분한 잔소리도 들어보았다. 살면서 ‘앞으로 뭘 할 거니?’라는 질문은 꾸준히 들어왔기 때문에 생각도 나름 해봤다. 취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이야기도 들어왔다. 대학교에 와서도 공부한다는 사실은 당연히 알았다. 따라서 우리는 분명 거대한 산 이후의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때가 오자 그 계획은 쓸모도 없을 만큼 초라했다.
‘경험의 압박’이 이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너무 믿은 탓일까. 나름 큰 산만 넘으면 앞으로는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녹록치 않았다.
오만이었을까? 문제가 무엇일까? 나는 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까?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건 무엇인가? 교육을 착실히 받아왔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의 실상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