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나서

by 보로미의 김정훈

불행에 질려버릴 때면 책을 읽는다. 그러니까 나는 책을 너무 좋아해서 읽는다기보다는 책을 통해 무언가 답을 찾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내가 그토록 찾던 책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말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영원히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행복은 네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러한 기적은 특정 누군가만의 특권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다고,

당신은 ‘영원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로 행복은 가까워질 듯 멀어지기만 했다. 분명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행복을 선택했다고 믿었는데, 책을 덮는 순간부터 행복이 시작될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런 한편, 나는 새로운 독서를 멈추고 지금껏 읽어왔던 책을 다시 읽어왔다.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할 뿐이라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렇다.


당신이 불행한 이유는 외부의 무언가가, 당신이 가진 조건이 비극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당신이 불행해지기로 선택했을 뿐이다.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었다. 나는 정말 불행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 행복하고 싶은데 내가 불행을 선택한 거라니. 만약 정말로 내가 불행을 선택하고 있는 거라면, 그럼 나는 나도 모르게 선택한 이 불행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들은 말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할 게 아니라, 불행한 것을 붙들고 있지 말라고. 너는 지금 불행이라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직접 손을 넣어 놓고 뜨겁다 말하면서도 손을 빼고 있지 않을 뿐이라고. 네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손을 빼는 일이 전부라고 말했다.


또 다르게는, 구름이 걷히면 맑은 하늘이 찾아오듯, 더러워진 흙탕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물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되듯이, 행복은 그렇게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불행은 생각에서 오고, 모든 것은 생각일 뿐이니 생각이 잠잠해지면 남는 것은 평화와 행복이라고도 말했다.


‘아, 그렇군요. 제가 찾던 인생의 진리, 그리고 답을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하며 읽긴 했지만 여전히 내 삶엔 불행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아직 그들의 말을 덜 이해했다고 느꼈다. 더 깊은 이해가 필요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그러다 이 책을 발견했다.


<미움받을 용기>는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이다. 청년은 철학자에게 가서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털어놓는다. 그 예시 중 하나가 바로 청년의 친구였다. 친구는 불행했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이라던가. 하지만 철학자는 청년에게 일침을 놓는다.


“그 친구는 ‘불안해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세. 거꾸로 ‘밖으로 나오지 못하니까 불안한 감정을 지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처음 읽으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밖에 없는 문장이다. 뭐 조금 유식한 척하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키는 문장일 수 있다. 그리고 청년은 또 다른 예시를 든다. 카페에서 점원이 실수를 해서 화를 내버렸단다. 그런 청년에게 철학자는 또 이렇게 답한다.


“자네는 ‘화가 나서 큰소리를 낸 것이 아닐세. 그저 ‘큰소리를 내기 위해 화를 낸 것’이지."


이것이 아들러의 철학 중 하나인 목적론이다.


“그야 불만도 있을 테고 행복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가 ‘목적’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그 친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어떠한 ‘목적’을 따라 살고 있다네.”


철학자의 말도 맞지만 조금 더 내 나름대로 부연설명해 보자면, 청년에게는 그동안 쌓인 습관이 거대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청년은 정직했다. 그는 화를 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생각보다 지금껏 화를 내왔던 습관이 더 강하게 작용했을 뿐이다. 샤우나 샤피로의 <마음챙김>의 문장을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뭐든 실천할수록 강화됩니다.”


여기서 샤우나 샤피로는 ‘신경 가지치기’ 개념을 소개한다.


20세기 뇌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인 신경가소성은 우리 뇌가 일생 동안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 우리는 긍정적 시냅스 연결을 생성하고 강화하면서, 다시 말해 뇌 구조를 건강한 방식으로 빚어내면서 허술한 경로를 쳐낸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신경 가지치기’라고 부른다. 우리가 어떤 생각이나 기분이나 행동을 수행하지 않으면 뇌는 그와 연관된 뉴런들을 ‘발화시키지’ 않는다. 그 결과, 그러한 생각과 기분과 행동은 점점 약해지다가 결국 시들어버린다.


쉽게 설명하면 화를 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점점 화와 관련된 신경을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쉽게 화가 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우리는 매 순간, 매분 매초 무언가를 강화하고 있다. 항상 불안에 떨고 있다면, 쉽게 불안해하고 계속 불안한 생각 속에 빠져 살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강화하고 있는가?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 한 가지. 언제든 삶의 불행한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제대로 된 이해와 헌신적인 수행이 동반되어야 한다. 처음엔 분명 어렵다. 이미 베베 꼬여버린 내가, 항상 불행하기로 선택한 내가, 두려움에 숨어버린 내가,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내가 계속 튀어나오려 할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습관적인 선택을 하려는 나를 알아차리고 다른 방식을, 친절해지기를, 행복해지기를, 행복과 불행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로 선택한다면 천천히 변한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변하다 어느 순간 ‘확’하고 변한다. 마치 형광등 스위치를 켜듯이 말이다. 그렇기에 아마도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난다고 표현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불행해지기로 했는지 하나씩 찾아서 놓아버려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감사한, 그리고 내가 이전부터 스테디셀러로서 이 책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고 믿는 문장, 역시 모든 책은 필요한 순간에, 인생의 정확한 타이밍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만들어준 문장이 있다.


그러면 저처럼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사람도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나’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의미에서 자기중심적일세. 자네는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걸세.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라는 것을.


읽자마자 부끄러움과 동시에 ‘아, 그렇구나. 내가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싶은 깨달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첫 번째 ‘인생책’이라 꼽는 <두 번째 산>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이제 나는 인격 형성이 거의 대부분 개인적 과업이라고 또는 개인 차원에서 성취되는 것이라고 더는 믿지 않는다. 인격 형성이 헬스장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근육을 키우듯이 정직성, 용기, 성실성, 끈기 등의 덕목을 키울 수 있다고 더는 믿지 않는다. 지금은 좋은 인격이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의 부산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인격이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의 부산물이다’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은 절대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를 신경 쓰는 삶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 일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내가 다 짊어지려고 하면 오히려 나와 상대방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니까 행복해지기 위해선 먼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한데, 즉 ‘나’라는 것이 없어져야 한다. 실제로 위의 ‘그들’ 중 한 명인 레스터 레븐슨은 ‘나는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라는 생각이 행복을 없애버린다고 말한다. 그 말인 즉, 개인으로서 ‘나’는 착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내용을 깊게 들어가자니, 나 역시 온전히 온몸으로 이해한 바가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만 말하면 무엇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네. 그저 ‘용기’가 부족한 거지.”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걸세.


더 나아가 이렇게 나를 내려놓는 것은 곧 ‘평범해질 용기’를 갖는다는 뜻이다.


만약 자네가 ‘평범해질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질 거야.


나는 행복해질 용기가 없었다. 혹은 평범해질 용기가 없었다. 매번 불행하다는 핑계만 대 왔지만, 사실 나는 ‘이런 불행한 나, 그러면서도 인간관계에서 상처받고 싶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는 원하는 나’라는 목적에 따라 살아왔고, 그런 목적을 유지한다는 자체에 편안함과 변태적인 만족감을 느껴온 것이다. 마치 담배를 끊었다고 말하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담배 밖에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나 역시 책 속 청년처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이 중요했고, 그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즉,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했다. 게다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집착했다.


메이저 리그의 20세기 첫 흑인 야구 선수이자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등 번호 42번을 리그 전체 영구 결번으로 남긴 재키 로빈슨의 실화를 다룬 영화 <42>에 이런 대사가 있다. “날 좋아하든 말든 신경 안 써. 친구 사귀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존중 받든 말든 상관없어. 난 내가 누군지 아니까. 내가 날 존중하면 돼.”


이 책을 읽고, 또 이 대사를 듣고 생각했다. 아, 붓다는 집착이 불행의 원흉이라 했거늘. 이 책 덕분에 내가 어디에 그리 집착하고 있었는지 명확히 깨달았다. 나는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내 목적에 따라 불행에 집착하고, 사랑을 주기보다 받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붓다는 “우리의 모든 것은 우리가 생각한 것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에 기초하고 우리의 생각으로 구성된 것들입니다.”라고 말했다. 붓다가 설하였듯 사람이 행복하다면 행복한 생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고, 비참하다면 낙담하고 나약한 생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 <스스로 창조한 나>


<미움받을 용기>는 독자로 하여금 어떤 생각에 머물러 있는지 살펴보게 만드는 거울과도 같은 책이다. 이런 거울 같은 책이야말로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하나의 동화와 같다. 어쩌면 나도 동화 속 주인공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이제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마음을 품게 만들어준다. 여러분에게도 이 책이 하나의 선물 같은 책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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