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때
더킷리스트는 살면서 하고 싶지 않는데 억지로 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중에서 현실성 없는 것 말고 노력하면 가능한 것들을, 생각만 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없애 가는 것이다.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보다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며 효과도 높다.
<그 사람은 말을 참 예쁘게 하더라>, 김령아 - 밀리의 서재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보다 '나쁜' 음식을 먹지 않는 편이 낫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을 섭취하기보다 불행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 말은 그러니까, 삶이 1년 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지금 당장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버킷리스트보다 더킷리스트를 달성하는 편이 훨씬 간편하고 효과도 좋으리라는 가설을 제시하고 싶은 것이다.
‘버킷리스트’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을 정리한 리스트를 뜻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버킷리스트가, 꿈과 목표가 곧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배워왔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정답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버킷리스트를 쉬이 세울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하지만 나에겐 최소한 더킷리스트를 세울 만한 자기이해는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는 몰라도 무엇이 날 불행하게 만드는지는 안다.
가끔 나는 내가 불행이 얼마나 싫은지 불평하면서도, 매 순간 불행만을 떠들고, 생각하고, 느끼고 있음에 놀랄 때가 있다. 우리는 불행에 중독되어 있다. 사실 불행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그저 불행함을 느끼면 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행복을 선택하고 싶다. 그러면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책에서 배운 행복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예전에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그동안의 삶에서 나는 언제 진정으로 행복했는가. 과연 그런 적이 있었는가? 그때 한 가지 명확한 답이 찾아왔다. 나는 남 눈치를 보느라 내 삶을 다 낭비해 왔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나는 그로 인해 불행했다고.
무엇이 행복인지는 몰라도, 무엇이 불행인지는 알게 되었다.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이 피어올랐다. 나는 20살에 그리도 많이 술을 마시고, 또 재밌는 술자리에서 울고 울었고, 그리도 재밌는 유튜브 영상들을 봐왔지만 그런 건 행복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군생활동안 일부러 더 유튜브를 보지 않으려 했다. 이런 건 진짜 행복이 아니고, 이 순간의 ‘쾌락’에 가깝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쾌락이란 것이 요즘 다시 날 잡아먹고 있다. ‘행복’이라고 착각하게 만들면서. 그래서 다시 진정한 기쁨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말이라고 퍼지게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 것은 분명 행복하다. 하지만 기쁘진 않다. 한 번이라도 기뻐본 사람은 이게 진짜 행복이 아니라는 것쯤이야 금방 알 수 있다. 행복은 나만의 만족으로도 충분히 얻어낼 수 있는 간편한 것이다.
그럼 기쁨, 기쁨은 무엇일까.
나에게 기쁨은 전념이었다. 전념을 통해 얻어낸 결론이 아니라 진지한 탐구의 시간 자체가 나에게 기쁨이었다.
나에게 기쁨은 믿음이었다. 나보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진짜 기쁨을 찾아낸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은 나에게 기쁨은 존재한다는 믿음을 주었다.
나에게 기쁨은 책과 글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면 분명 기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에게 기쁨은 부정적 감정의 종말이었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 부정적 감정을 쏟아부으며 감정 낭비를 하지 않으려 했다. 남은 건 기쁨이었다.
더 이상 기쁨이 나의 목표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 더 이상 어떤 목표도 없었으면 한다. 지금 최선을 다하는 나에게, 충분한 것에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는 나에게 목표는 필요 없을 테니. 나는 지금 이곳에 머물러 행복할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기에, 목표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에게는 이제 기쁨을 선택하고 불행을 놓아버릴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당장 아주 쉬운 노력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더킷리스트다.
더킷리스트는 ‘살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리스트'다. 말하는 사람마다 조금은 정의가 다르지만 의미는 모두 통한다. 살면서 하지 않아도,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혹은 습관처럼 하고 있는 것들을 말한다.
버킷리스트는 어렵다. 작성하는 데만 한 세월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킷리스트는 쉽다. 누구나 무엇을 적어야 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버킷리스트는 착각일 수 있다. 내가 행복이라 생각한 그것이 사실은 행복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더킷리스트는 그보다는 정확하다. 우리는 언제 불행한지 잘 알고 있다.
시작은 사소할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 보지 않기, 다이어트에 스트레스받지 않기, SNS나 숏폼 끊기, 폭식하지 않기 등. 더킷리스트를 성실하게 지킨 사람들은 점점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점점 더킷리스트를 확장시킨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슬퍼하거나 집착하지 않기' 등.
이미 예전부터 터닝포인트의 대가 윌리엄 브리지스는 시작보다 끝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삶 그리고 행복을 떠올리면 목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그리고 그걸 하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찾기’, 버킷리스트 이루기를 떠올리지, ‘ㅁㅁ를 하지 않기’를 먼저 떠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기쁨을 찾아낸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방법이 ‘삶에 귀를 기울이기’라고 마치 똑같은 교사에게 교육을 받은 것처럼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삶에 귀 기울이기란 다른 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도 불리며, 그들이 말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란 정말로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믿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든 노력을 멈추는 것을 의미한다. 더킷리스트는 어쩌면 버킷리스트보다 기쁨에 더 가깝다.
더킷리스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 말은 행복하기 위한 모든 목표를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에 기쁨을 선택하고, 불행을 놓아버리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