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을 놓아버리는 리스트
이번 주에 드디어 더킷리스트를 개시했다. 나는 단 한 개만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1. 출근길에 핸드폰(유튜브 등 SNS) 보지 않기
정말 단순하고 실천하기 쉬웠다. 이제 막 더킷리스트를 시작하는 나에겐 그것이 중요했다. 성공의 느낌. 조금이라도 어렵게 시작했다가는 하루라도 실패해서 금방 좌절할 게 뻔했다. 예컨대, 처음부터 ‘유튜브 끊기’라고 해버렸다면 나는 몇 시간도 채 가지 않아 나도 모르게 이미 유튜브를 켰을 것이고, 나에게 한심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래본 적이 많기 때문에 거의 확실하다.)
그래서 쉽게 시작했다. 어쩌면 다음 주엔 ‘퇴근길에 핸드폰 보지 않기’를 추가할지도 모른다. 조금 느려 보일지 몰라도 최소한 후퇴는 하지 않을 수 있다. 중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리스트가 많아질까 봐 걱정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유튜브 보지 않기’라는 하나의 리스트로 합칠 수 있으니 문제없다.
더킷리스트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 습관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아니지, 이건 하지 않기 리스트잖아.’
‘하루 10분 영어회화를 겸하면서 더킷리스트를 해보자! 아니지… 이건 더킷리스트와 맞지 않아. ’
이런 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타 무르자니가 쓴 글을 읽었다.
하지 않기undo. 우리는 ‘존재’할 수 있으려면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삶의 어떤 측면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대체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책을 사거나, 어떤 수업에 등록하거나, 그동안 두려워했던 것들을 매일 다섯 가지씩 하거나 등등. 그러나 먼저 우리는 여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분주하게 뭔가를 하는 대신, 더 이상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놓아버리는letting go 작업을 해볼 수 있다. 잠시 멈추고 혼자 고요히 앉아서, 우리가 밖으로 나가서 답을 찾기보다는 해답이 우리를 찾아오도록 여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뭔가 일이 잘못되면—건강 위기, 경제적 위기, 정체성 위기 등등—대부분 ‘이제 뭘 해야 하지? 뭘 더 알아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아니타 무르자니
그렇다. 사실 더킷리스트를 ‘하게 된’ 이유는, 아니타 무르자니가 말한 것처럼 내 삶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 들었기 때문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행복한 사람이 뭘 더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뭔가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함’에는 목표가 없다. 하는 그 자체에 보상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그 무언가에는 목표가, 아니 집착이 있다.
건강에 집착할수록 건강하지 않게 되듯이, 행복에 집착할수록 불행해지는 것만 같다. 독서가 정말 그런 것 같은 게, 행복에 관한 책에 집착하며 읽다 보니 오히려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것만 같다. ‘이것이 행복해지는 비결이요’라고 말하는 행동지침들을 따라 하려고 했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불행한 상태에서 애쓰고 있었지, 더 이상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시작 지점에서 1%라도 더 행복해졌나고 했을 때, 나는 도저히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헛똑똑이가 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는 게 있다면, 행복은 전적으로 ‘하지 않음’에서 온다. 여기서 하지 않음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의 상태가 아니라 어떤 목표를, 집착을 좇기를 멈춤을 의미한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결국 어떤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유튜브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쁨을 준다기보다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허하다. 그리고 잠시나마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더킷리스트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것만 같다. 이것은 내 삶에 깊이 녹아들어 있는 집착을 놓아버리는 리스트다. 붓다의 말마따나 불행의 근원은 집착이니, 나는 이 집착을 모두 내려놓을 때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번엔 정말 멈추지 않고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