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2주간 로렌스 크레인의 <자기 사랑>을 읽었다. 출퇴근길에 읽다 보니 따로 독서 시간을 두지 않았는데도 2주간 3번은 읽었다. 책 내용이 아주 단순하고 실천 위주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릴리징 테크닉'이라고 하는 것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이 릴리징 테크닉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일종의 명상과도 비슷한데,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명상은 우리의 존재 방식이지, 우리가 하는 어떤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명상'한다'라고 하지만, 사실 명상이 행위가 아닌 존재 방식인 것처럼, 나는 2주간 틈날 때마다 존재하고자 노력했다. 이 책에도 내가 <더킷리스트>를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와도 같은 구절이 있었다.
“저기에 분명 내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야. 나는 그 새 책을 읽어야만 해. 나는 전에 들었던 새로운 단체에 대해 알아봐야 해.” 당신은 결코 마음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던졌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데도, 당신의 마음이 계속 딴소리를 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은 그 정답을 봐왔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뭔가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자기 사랑>, 로렌스 크레인
위 구절에서 '당신이 던졌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데도'라는 말은 우리 삶이 아이러니한 이유를 잘 꼬집고 있다. 쉬운 예시로 우리는 "왜 다이어트를 하는데도 살이 빠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답을 알고 있다고 살이 빠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한 건 누굴까? '나'다. 하지만 우리는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또 화를 낸다.
소설 <싯다르타>에서 주인공인 싯다르타는 일찍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의 '더 나은 가르침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니까, '번뇌로부터의 해탈'을 위한 가르침은 모두 빠삭하게 알고 있으나, 자신이 해탈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에는 그 가르침이 자신의 것이 되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하고, 마지막에 오랜 친구를 다시금 우연히 만나 자신의 '깨달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 깨달음 중 하나란,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었다.
삶이 힘들 때마다 행복에 대한 책을 읽었다. 내가 읽지 않은 새로운 책에는, 내가 보지 못한 어떤 철학적인 영화는, 내가 만나보지 못한 어떤 사람은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와 더불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어 찾고 또 찾았다. 그러나 바깥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었다. 행복이 없는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이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에 나는 새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읽었던 책을 읽고, 또 읽고 있다. 2주간 새로운 더킷리스트를 만들지도 못했다. 여전히 '출근길에 유튜브 보지 않기'가 전부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비워내고 있다. 더킷리스트에 무어라 적기 어렵지만 나는 내가 붙잡고 있던 감정들을 놓아버리려 하고 있다.
다른 이야기지만 문득 그 구절이 떠오른다.
나 역시 살면서 숱하게 좌선을 해왔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불꽃놀이처럼 팍 터지는 기막힌 그 무엇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상당히 애매했습니다. "아, 뭐 그저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가 완성한 것들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무척 좋을 터입니다. 성취한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제시한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단지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 반년 동안 일 년 동안 그저 앉아만 있었습니다. 이것을 수행의 성취랍시고 남에게까지 알린다는 것은 자아의 입장에서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티베트 스님의 노 프라블럼>, 아남 툽텐
그러니까 더킷리스트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의도 역시 결국에는 내가 그저 존재하기만 할 때까지 내 인생에서 '애씀'과 '집착'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곧 궁극의 행복이라 하니. 버킷리스트는 한 가지 목록을 달성할 때마다 '나는 드디어 이것을 해냈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더킷리스트는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할 때마다 비워진다. 뭐라고 남들에게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매력적이다. 남들에게 할 말이 없으니, 내 자아도 부풀어지지 않는다.
나의 더킷리스트 (여전히 1개)
1. 출근길에 핸드폰(유튜브 등 SNS)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