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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로미의 김정훈 Mar 26. 2023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나쁜 습관이 인생을 다 망쳐놓기 전에 참고할 참고서가 되길 바라며

해본 적도 없는 마라톤을 상상해 본다. 사람이 많다. 그 사이엔 같이 참가한 친구들도 있다. 출발 신호가 울린다. 모두가 달리기 시작한다. 아직 걷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직 발을 떼지도 못한 사람도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도 영광스러운 첫발을 떼기 시작한다. 이 마라톤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연습해 왔던가. 하지만 시작한 지 30초 만에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걸 내가 왜 해야 하지?’


2018년의 나는 제주에서 가장 행복한 학생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내게 남은 건 장밋빛 인생이라 생각했다. 대학교에 가는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논술학원 선생님은 공무원이 꿈이라고 말한 나에게 그럼 왜 굳이 그 학교를 가고 싶은 거냐고 물어봤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대학교. 그것이 내 꿈이자 목표였다. 그리고 입학한 지 일주일 만에 나는 서울에서 가장 불행한 학생이 되었다. 


내 상상 속 대학생활에 ‘공부’ 따윈 없었다. 하지만 교수님은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아차 싶었다. 나는 왜 대학교에 오면 또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지? 그렇다. 그것도 몰랐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외고’(외국어고등학교)라는 개념을 고등학교에 가서야 알았던 나로선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그렇게 미련한 놈이었다.) 대학교에 오면 공부가 아니라 진짜 ‘인생’을 살 줄 알았는데, 또다시 인생을 ‘준비’하라니. 그럴 순 없지. 난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내 모습을 소설가 카렐 차페크가 멋지게 정리해 주었다. 


“다시 돌이켜 보면 그 시기에 나는 얼마나 굶주린 듯 열렬히 학교와 무관한 것을 경험하려고 들었던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고 삶 그 자체라면, 그것이 우정이든, 소위 첫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든, 친구들과의 갈등이든, 독서나 신앙 문제 또는 바보짓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어떤 것, 바로 현재의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며, 졸업 시험이 끝난 후이거나 학교에서 말하듯 <준비가 끝난 후>의 것이 아니었다. (...) 이 지속적인 임시 상태에 대항하여 우리는 가능한 한 충만하고 진실한 삶을 살려고 애를 쓴다.” - <평범한 인생, 카렐 차페크 中>


그렇게 1년을 살았다. 끝장나게 놀았다. 평생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열심히 놀았다. 좋은 1년이었을까? 아니었다. 2019년 2월,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울면서 전화했다. ‘나 잘못산 거 같아. 1년이 너무 아까워.’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는 게 맞을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면 되는 걸까? 끝장나게 놀자고 다짐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내게 남은 건 만족이 아닌 공허함과 상처뿐이었다. 나에겐 나를 발견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만약 내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그리고 내가 만약 지금 당장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만약 내가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 <삶의 의미를 찾아서, 빅터 프랭클 中>


확신이 필요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생을 걸만한 일은 어디 있는가. 내 인생의 화성은 어디 있는가? 내 인생의 '한 가정에 한 컴퓨터'는 무엇인가? 내 인생의 ‘원피스’는 어디 있는가?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 


분명 돈은 간절했다. 하지만 돈보다 ‘의미’가 더 간절했다. 돈이 없어서 1000원짜리 자판기 물도 뽑아먹지 못했지만, 돈보다 의미가 더 중요했다. 이걸 도대체 ‘왜 왜 왜 왜’ 해야 하는지 알아야만 했다. 먹을 게 없어서 배고픈 것보다, 의미의 배고픔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몸과 정신 건강이 모두 망가졌다. 점점 내일이 기대가 되지 않았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인생을 건 무언가에 헌신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천천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경험하며 목적을 찾아나갔다. 그렇게 5년을 살았다. 그땐 사명을 찾는 질문에 대답을 한 번 해보겠다고 달려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무모한 도전이었는가. 멍청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선택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면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친구들에게 내가 배운 지식과 지혜를 하나씩 알려주었는데 가슴 설레고 내게 꼭 맞는 일이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위로와 도움을 받았다거나, 가슴을 울렸다는 말을 해줄 때마다 감동했고 놀랐다. 그렇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를 썼고, 이 분야에 대한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을 쓴 후 1년 동안 더 깊이 있게 공부하면서 대학생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습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습관의 필요성을 깨닫고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알려주는 글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대단한 코치가 아닌데, 경험도 부족한데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나로 시작하자. 그래, 그 글이라면 20살의 나는 큰 도움을 받으리라. 내가 4년 동안 거친 시행착오를 3개월로 줄일 수 있으리라. 


22살의 나와 같은 사람이 이 책을 우연히 읽게 된다면,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아니,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이라고 외칠 수 있는 글이 더 매력적이려나? 이런, 나를 가로막는 장벽은 항상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였다. 그것을 나는 내려놓아야 한다. 


내 욕심을 내려놓는 김에 모든 걸 내려놓자면 앞으로 쓸 글은 신선한 맛이 전혀 없다. 습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꿈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란 사실은 이미 뻔한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은 모두 그런 당연한 사실을 대학생을 위해 간결하게 정리했을 뿐이다. 신선한 내용은 없어도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면.. 이 글의 목표는 그래, 당신이 하루에 고작 3분간 운동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아직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버리지 못했던가. 그래, 이 욕구는 어쩌면 내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인정하기로 한다.)


아직 기획도 하지 않은 글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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