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대회 우승 따위는 아무것도 아님

- 그늘 아래, 너를 바라보는 중

by 공운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쳤지만

기대되는 마음만큼은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우리 반의 승리보다

네가 어떻게 활약할지가 더 궁금했다는 사실을

나조차도 믿기 힘들었는데.


선명하게 맑은 날은

언제나 너의 미소를 가득 담기 좋았다.

산뜻한 바람결이 네 앞머리를 흐트러뜨릴 때면,

새어 나오는 웃음이 네게 닿을까 궁금했다.


활기가 도는 운동장 위로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던 그날은

단연코 너의 날이었다.

함성이 울려 퍼지고 박수갈채가 번질 때,

그 한가운데를 지키고 서 있는…

에이스.

딱 너를 통칭하던 말.


여러 종목을 뛰느라 네 모습은 늘 멀리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더 자주 너를 찾게 되었다.

나 혼자만의 비밀게임처럼.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이기고 있을까, 지고 있을까.

투명하게 변하는 너의 표정을 바라보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태양보다 더 밝을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몰라.

온갖 것에 너를 견주다 보면

네가 내게 진정 최고가 되어버릴까,

그게 괜히 두려워지곤 해.


네가 운동장을 가로지를 때,

나는 응원석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늘 아래는 쌀쌀해서,

운동장의 뜨거운 열기가 한 뼘 앞에서 끊겨버린 듯했다.


멀리서 너를 지켜보다

너의 반이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무심코 박수를 쳤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려,

우리 반 애들한테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리 반인 줄 알았어.’

‘응원해 준 거야.’

과연, 믿어줬을까.


왁자지껄한 소리와 웃음 사이로 피어난 너는

승리의 여운을 입가에 가득 묻힌 채,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쉬는 시간,

다른 아이들이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받으러 갈 때

너는 말없이 내 옆에 와 앉았다.

딱 한 사람이 앉을 만큼만 남기고,

나란히.

그 거리가 어쩌면 우리의 간격을 의미할지도 몰라.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너를 몰래 훔쳐보며

뜨거워진 두 뺨을 숨겼다.


손부채질을 하며 땀을 식히던 너는,

금세 다른 여자애와 장난을 주고받았다.

시답잖은 농담과 소소한 시비가 오가는 걸

나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봤다.

마음이 아파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조금 무거워져서 그랬던 걸까.

기억났으면 좋겠지만…


조금만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장난스러운 승리의 응원을 이라도 좋으니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하지만 네 앞에서는

입안에 맴돌던 단어들이 자꾸 녹아내려,

목구멍에 달라붙어

끝내 문장이 되지 못한다.


너는 가까워질 듯, 잡히지 않는다.

줄다리기를 하는 중이지만,

너는 금방 놓아버릴 수 있으니.

이미 줄의 반대편에서 여유롭게 서 있는 너를,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겠어.


사랑은 달콤한 맛을 내다가도

끝맛은 늘 텁텁하니까.

굳이 시작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이 마음을 가장 깊은 곳에 감춰두면

언젠간 빛을 잃고 바스라져 버리는 건 아까우니까.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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