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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고양이 Jul 18. 2021

그 해 여름은 지독했다고 한다.

휘낭시에를 굽는 여름.

쑥 크럼블 휘낭시에

 그 해 여름은 지독하게 더웠다. 10년 된 에어컨이 2번의 이사를 하면서 조금씩 힘들어하는 것을 느끼던 차에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매일 방송에 대고 소리쳤다. 


"이대로 가다가는 변압기가 폭발할 수 있으므로 전기 사용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밤 11시에도 계속 뭔가가 터진다는 경고가 흘러나와 안 그래도 더운 날에 짜증이 난 주민들이 항의를 했는지 어느 날부터인가 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나도 짜증이 났다. 그래서 아이들의 방학 내내 밖으로 돌아다녔다. 체감기온이 40도를 찍고 넘는 날에는 동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평일임에도 인산인해를 이루어서 근처에 있는 식당가는 모조리 30분 이상은 줄을 서야만 난장판 속에서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라도 사람들은 냉기가 있는 곳을 찾아서 좀비 떼같이 몰려들었는데 그건 그다지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나는 그 해 여름만큼 힘든 여름은 10년 전쯤 겪어보고 처음인 것 같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매년 이렇게 힘들어진다면 난 여름마다 의식을 잃은 채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식음을 전폐하고 생명줄만 유지하고 있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초당옥수수 휘낭시에와 쑥 크럼블 휘낭시에

그 해 여름, 지긋지긋했던 아파트 관리실의 방송은 왜 미리미리 변압기 승격 공사를 해놓지 않았느냐는 원성에 가을에 이르러서 공사를 마무리 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다음 해에는 더 이상 방송을 듣지 않아도 에어컨에 매달려서 누진세 폭탄을 맞게 되더라도 최소한 인간적인 생활은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이 가까워오자 우리는 또다시 7월 말에는, 8월에는, 계속 엄청난 무더위가 올 거라는 구라청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무더위 따위, 승격 공사를 해놓은 변압기 따위 무색하게 이번에는 엄청난 비의 쓰나미를 맞았다. 말 그대로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늘이 뚫린 것 같은 스콜성 폭우에 시달렸다. 에어컨은 틀 필요도 없었고, 실외기를 돌리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가는 온 집에 들이치는 물벼락을 견뎌야 했다. 그 해에 모든 집에 물이 줄줄 샜다. 그래서 이번에는 윗집, 아랫집이 누수 문제로 싸우는 광경을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끝없이 중재하고 다녀야 했다. 우리 집도 그런 집 중의 하나여서 베란다 벽으로 스민 물이 안방까지 들이치고 말았다. 


물론 그건 그 해 겪은 재난의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그것이 바로 작년, 그러니까 코로나가 시작된 해였다. 그 해의 우리는 재난영화와 지구 종말이 뭔지를 몸소 체험하는 것 같은 나날들을 보냈다. 해안가에 있는 아파트들은 태풍이라도 날아오면 수십 채의 집 창문이 다 깨져버리는 재난을 당했고, 마스크 하나도 못 건진 채 집이 토사에 파묻히는 이재민들이 넘쳐났다. 이렇게 우리는 멸망하는구나 생각하는 시기였다. 밖으로 자유롭게 나다니면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콩나물시루가 되던 그 전 한해의 여름이 몰고 온 폭염은 사실 축복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마스크를 쓴 채로 어항 속을 헤엄치는 것 같은 숨 막히는 시간이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과 모두의 재택과, 외출의 제한과 함께 생활을 덮쳤으니까.



무화과 치즈 휘낭시에

이제 징글징글한 폭염이 왔다. 습기도 함께 왔다. 베이킹을 하기에는 최악의 시간이다. 오븐을 돌리는 순간 에어컨을 끄면서 전력을 고르게 활용하는 첩보전이 필요하다. 마카롱 같은 건 잘 되지 않고, 빵 반죽은 엄청난 속도로 부풀어서 아주 쉽게 과발효가 된다. 만들어놓은 것들은 쉽게 부패하고, 쉽게 풍미가 사라진다. 빵이나 디저트를 제때에 냉동실로 직행시키지 않으면 눅눅해지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본래의 식감을 잃는다.


다양한 디저트들을 판매하는 베이커리들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늘어난 코로나 확진자들의 풍파에 다른 자영업자들과 함께 휩쓸리고 있다. 그래서 단골들은 택배로 주문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어떤 카페들은 변질을 우려해서 택배를 하지 않기도 한다. 진심으로 모두가 식욕을 잃기 딱 좋은 계절이다. 여름이면 녹아내리는 나와 같은 사람들도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있는 것은 시원한 음료뿐. 맛있다고 소문난 것들을 먹고 싶어도 6시 이후에는 혼밥 하지 않는 이상 누구와도 먹을 수 없으니, 우리는 디저트든 주식이든 먹는 것의 진정한 즐거움을 잃어버린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피넛 초콜릿을 끼얹은 초콜릿 휘낭시에

늘 시련이 닥치는 순간에는 그 시련만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은 가고 지독하게 폭압적이던 자연은 여름과 작별한다. 여름의 대기를 가득 채우던 불쾌감들은 서서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증발한다. 더 이상 사람들은 한밤중 잠을 설치게 하는 열기와 싸우지 않고, 증오로 가득 찬 것 같은 매미의 울음도 어느덧 멈춘다. 비는 마르고, 대지가 식는다. 그렇게 우리는 또 그 시련들을 조금씩 잊는다. 잊어서는 안 될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참 간사해서 그 시련이 쓸고 간 자리쯤은 다시 찾아온 안락함과 뽀송함에 쉽게 내어준다. 그리고 다음에 찾아오는 시련은 예전의 그것과 같지 않고 때로는 더 크고 고통스럽다. 


나는 또다시 그런 여름을 나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불안이 엄습하도록 주변에서 끊임없이 환자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서 다시 멀어져야 하게 되었다. 모든 예상들은 우리가 아주 길고 지독하게 덥고 고통스러운 여름을 날 것이라는 저주 같은 것들을 쏟아내고 있다. 작년 여름의 끔찍했던 비에 비한다면 더위가 나은 것인지, 이제 그것도 모르겠지만, 지구 상 어딘가에는 실외에 설치된 선별 진료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유독 올해가 지옥문이 열려버린 한 해로 또 기록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늘 우리에게 시련이란 매번 다른 모습을 하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휘낭시에 하나, 그리고 책 한 권의 휴식

그래서 나는 이번 여름,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그 어떤 기후가 나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할지라도, 또 어떤 전력난이 우리를 돌게 할지라도, 내 집 베란다에서 물이 좀 들이치더라도. 너무 덥고 습해서 마카롱을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던 나는, 대신 카스테라를 만들다가 남은 계란 흰자들을 소진하기 위해 휘낭시에를 구웠다. 삼시 세끼를 해먹이고, 모든 것을 줌 수업으로 해결하는 역대급 세대의 아이들이 모니터에 매달린 동안, 그 잠깐의 시간이나마 즐기면서. 여름은 땀이 나는 것이고, 더운 것이고, 또 비가 내리는 시간이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고, 그 기후가 그다지 인간을 우아하게 만들어줄 수도 없으며,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에는 체력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겪는 시련 같은 것은, 사실 이 팬데믹과 기후변화로 이한 이상기후가 일상 드라마가 된 시대에 그다지 엄청난 일도 아니며, 그저 뉴 노멀이 되었을 뿐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아, 휘낭시에는 프랑스어로 Financier, 그러니까 자본가, 금융가라는 단어와 관계가 있다. 여러 가지 유래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금괴 모양으로 생긴 이 케이크가 파리 증권가에서 주머니에 오래 넣고 다녀도 잘 망가지지 않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뭐, 우리의 떡이 어쩌다 떡이 됐는지 모르는 것처럼 이것도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휘낭시에는 여름에도 상온에서 비교적 식감이 변하지 않고 잘 견뎌준다는 점이다. 이름답게 비싼 고메 버터를 일부러 잘 태워서 풍미를 높여주고 제대로 잘 만든다면 그 상태가 꽤나 잘 유지된다. 냉장고에 보관했더라도 상온화 시키는 시간을 거치면 다시 풍미가 살아난다. 그러니 올여름은 끝없는 휘낭시에 생산공장을 가동하는 것으로 이 시절의 이중고를 견뎌내기로 했다. 이만하면, 맛있는 여름으로 기억되도록. 


그 시간이 지나간 후에, 다시 발 디딜 틈 없는 멀티플렉스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도 꼭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우리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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