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김키미
브랜드 자산을 축적한다는 건 사실 형체 없는 무언가에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것과 같아서 도박처럼 여겨질 수 있다. 뚜렷한 결과를 얻기 어렵고, 결과를 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 때로는 시류에 편승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쳐야 하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듯한 불안감을 극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가치 있는 일이라 판단된다면, 가치 창출이 보장된 모자 뜨기를 기획했다면, 자신에게 크게 한번 베팅해 보기를 권한다. 우직하게 밀고 나가보는 거다. 모자 뜨기를 하는 시간 동안 속세의 계산기는 잠시 넣어둬도 좋겠다.
- 김키미,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중 2부, 06. 가치 있는 브랜드 자산에 베팅하기- 세이브더칠드런 편 중에서.
아침부터 시간을 쏟아부은 사워도우 반죽을 하나 말아먹은 날이었다.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말을 대충 훑어서 알고만 있는 나에게, 어느 독립 책방의 인별그램 피드는 이 책의 인용구를 내 앞에 풀어놓았다. 책을 읽고 나서 발견한 것이지만 거의 말미에 있었던 구절이었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 그 뼈아픈 지적은 이미 내 개인의 베이킹 프로젝트 속에서 온 신경을 비트는 교훈이기도 했다. 신발을 찍찍 끌며 서점에 갔다. 이 매대 저 매대 어슬렁거리다가 이 책을 찾아냈다. 베이킹을 하고 기록을 남기는 나의 일상 어느 부분이 퍼스널 브랜딩에 관한 책을 찾게 했는지는 첫 페이지를 펼 때에도 알지 못했지만, 책을 덮을 때 즈음에는 내가 하던 것들을 발전시켜야겠다는 충만한 의지로 이두박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가끔 이렇게 누군가가 정리해놓은 에세이들이 일상의 전반을 바꿔놓는 경우가 있다.
카카오 브런치의 브랜드 마케터가 들려주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파타고니아, 아마존, 시몬스, 애플, 츠타야, 인스타그램, 몰스킨, 마켓컬리, 블루보틀 등등의 브랜드 이야기가 이 책의 전개이다. 그러나 이 핫한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모두 퍼스널 브랜딩의 관점에서 전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분야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나와 같은 독자에게도 스무 가지의 브랜드들이 내세우고 있는 브랜딩의 방법들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관한 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기 계발서에 가깝다. 자기 계발서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나는, 주로 정신줄을 놓아버려서 다시 그 썩은 동아줄을 잡아야만 할 때에 비로소 자기 계발서를 찾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에세이 형식의 글로 저자 개인의 경험들과 함께 잘 버무려져 있어서 매료되었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를테면 브랜딩과 마케팅의 차이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키워드를 만들어가고, 자신에게서 발견한 가치 있는 부분들과 강점들을 정리해서 베팅을 하고, 해야 할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구별하고, 경험치를 연결 지어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며,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미지를 만들면서, 그 브랜딩의 노력을 지치지 않고 이어나가는 법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브랜드라는 메타포가 우리의 인생에 줄 수 있는 최선의 아이디어들이다. 적어도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스무 가지의 독창적이거나 핫하거나 어마 무시한 브랜드들의 이야기가 나 같은 개미에게도 위안이 되었던 것은 단순히 나는 뭔가를 '시작'은 했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로 그냥 덤볐다는 점에 있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 짧지 않은 시간을 살면서 유감스럽게도 한 번도 어디로 가는지 알고 가본 적이 없다. 무계획이 계획이다. 그러나 시간이 준 교훈은 '시작'을 하면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한 계속 다른 시작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파트였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스킬 익히기'는 만들고자 하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어떻게 역경에 굴하지 않고 끌고 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를 건드렸다. 이 부분은 적어도 망한 사워도우 때문에 때려치울까 생각하며 이 책을 산 나라는 인간에게는 킬링 포인트였다. 왜냐면 나는 프로중단러이기 때문이다. 베이킹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 자체가 말해주듯, 시작이 반이고 반에서 끝나는 인간에게는 '꾸준함'과 '일관성'이라는 건 아주 특별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이 독자로 말하자면, 이미 여러 가지 기록들을 블로그에 꼬박꼬박 남기면서 별로 읽히지도 않는 글들을 끄적이는 것이 취미인 사람. 기자 지망생 출신이었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교내 편집부에 합격했다가 공부하라고 엄마한테 멱살 잡혀 끌려 나온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글을 쓰는 일이란 '업'이라기보다는 '숨'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써본 일은 없었지만, 쓰는 것은 읽는 것과 함께 유일한 해방구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인 작가의 일터, 카카오 브런치는 당연히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은 후로 한 달은 족히 문턱을 기웃거리며 망설였다. 그러나 제일 무서운 건 '누군가가 읽을지도 모를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글 쓰는 일을 해방구로 삼았지만, 그 글을 굳이 누군가에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는 언제든 그 글로 누군가를 찌르거나 할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림자 노동자라는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고, 그 한계에 갇히고 싶지도 않았던 내가 누군가에게 읽힐만한 글을 쓰거나, 적어도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아마존에 내가 출간한 책의 영어 번역본을 파는 것과 비슷한 경지에 오르는 것으로 느껴졌다.
더군다나 이 곳에 글을 쓸 사람을 '심사' 한다는데, 이 나이에 '탈락'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견뎌낼 자신도 없었다. 수기를 읽다 보니 여러 번 떨어졌다가 합격하신 분들의 이야기들이 곳곳에 지뢰처럼 있었기에 유리 멘털의 내가 저렇게 여러 번 도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그 의심이 <무진기행> 속 안개처럼 뒤덮일 때 무슨 성경책 찾는 사람처럼 책의 말미에 적힌 '내가 뭐라고'의 함정을 다시 읽고 마음을 먹었다. 구독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글을 계속 발행하게 된다 해도, 그냥 한 번 해보자고. 그렇게 나는 브런치에 영업당해서 어느 일요일 밤, 새벽 동이 틀 때까지 이 곳에 발행하고 싶은 글을 써서 작가의 서랍에 차곡차곡 쌓았다. 예전에 쓴 글들을 다시 후벼 파는 일은 사실 고통이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이딴 걸 쓰다니 네가 궁해도 한참 궁했구나 싶은 자괴감의 파도 속에 넘실대는 그 고통.
일요일 밤을 지나 월요일 새벽, 신청서를 어떻게 채웠는지도 모른 채로 집어던지듯 내고 나서 이틀간 무엇을 던진 건지 정신이 아득해진 채로 살았다. 대학 입학할 때도 이랬나 싶을 정도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사회생활에서 물러나 있던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었나 보다. 스트레스 내성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달까. 이미 영업당한 호갱은 어이없이 간절한 마음이 된다. 이건 스타벅스 md가 제대로 한정판이었던 시절의 호갱의 심정과 같다. 아.... 이건 브랜딩에 관한 책이기도 했지만, 나는 브런치 팀의 마케팅에 당한 것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지만 어쨌든 기다렸다. 그리고 이틀 후 저녁 즈음, 앱이 울렸다. 메일함을 열었을 때 작가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뜬 것을 보고는 한 30분쯤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이쯤이면 카카오 브런치라는 브랜드가 입성하고자 하는 유저들에게 어떤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작품처럼 만들 수 있다는 그 기본 하나만으로도 쓰고자 하는 욕망이 넘치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설레게 할 수 있는 어떤 가치를 제공한다고나 할까. 심장마비를 일으키거나 충격으로 쓰러지지 않고 한 번에 통과하게 해 준 브런치 팀에게 굽신거리고 싶은 것은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허니문 유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하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어서 글을 써본 일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라도 그간 써온 방식과는 다른 것들에 도전해야 하니까. 그건 시작의 느낌이고 어느 정도는 발전의 느낌이다.
기분이 매우 좋은 며칠이었다. 그렇게 시작을 하고, 첫 글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기에, 이 '노출'이라는 시스템에 매우 감사하게 되었달까. 그러나 그중에는 내 글이라는 것을 제목만 보고 한번 그저 눌러봤을 뿐인 사람들이 더 많을 테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시간 내어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 점에서 이 책이 던지는 말은 매우 유효하다. 우직하게, 남들에게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끝까지 자기가 정한 가치를 밀고 나가서 해보라는 것. 물론 이 말은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불문율이다. 때로는 소처럼 가야 하는 일들이 삶에는 분명히 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대로, 브랜딩은 잘 팔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꾸준한 가치를 지향하는 개념이다. 동영상과 찰나의 멋진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에, 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이다지도 많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읽어야 할 글자 수가 늘어나면 창을 닫는 데에 0.1초도 걸리지 않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모두가 이미 퍼스널 브랜딩을 위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달리고 있구나 하는 생동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종국에는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플랫폼을 쓰든 가장 어려운 일은 멈추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기업 브랜드도 그 한결같은 가치로 '살아남는 것'일 테고. 그러니까 이 책이 나에게 준건 브런치에 영업당하는 것뿐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무엇을 써야 하는가에 관한 나름의 철학을 찾아가도록 해 준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이면 이 선명한 주황색의 튀는 책 한 권이 쏟아낸 것들을 내가 잘 주워 먹었다고 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