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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y Feb 10. 2017

넷째 날 : 영어 듣기 평가 7시간

벨기에 브뤼셀 교환학생 일기



교환학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왔다.

 

숙소에서 학교로 처음 가 봤는데 길을 헤맷다. 신호 기다리면서 찍은 이름 모를 건물.


여러 직원들이 나와서 많은걸 얘기해줬는데 그중에 반 정도만 알아들은 것 같다. 못 알아들은 걸 개인적으로 물어봤는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반 정도만 알아들은 것 같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1000 Brussels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코뮌에서 거주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어제 정말 헛걸음 했다..


오티가 끝나고 캠퍼스 빌딩을 돌아다니면서 설명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같이 걷는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어디서 왔냐, 이름이 뭐냐,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살았냐 등등 어색함을 깨기 위한 것들을 물었다. 한국에서 새내기 때 했던 것과 정말 똑같았다. 애들이 너무 영어를 잘한다. 그래서 대화를 길게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영어를 잘할수록 애들이 더 활발한 것 같았는데, 끼고 싶어도 말이 너무 빨라서 끼지 못했다. 그래도 오늘 그리스 친구와 터키 친구랑 친해졌는데, 그 친구들과 나의 공통점은 영어를 빠르게 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시티 투어를 하면서 설명을 알아듣지 못해서 우리 모두 '아무것도 모르겠다.......'며 공통점을 찾았다. 그래도 서로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터키 친구와는 우리가 형제의 나라라는 것에 의견을 같이했고, 그리스 친구와는 그리스 로마 신화이야기를 하면서 이카루스, 이아손, 헤라클레스 등을 이야기했다. 공통점이 많을수록 할 말이 많아서 편했다. 


영어는 한국말처럼 가만히 있는다고 들리지가 않는다. 한국에선 아무 생각 없이 걸어도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다 들렸는데. 여기서는 고딩 때 영어 듣기 평가할 때 엄청 신경써서 들어야 기억하듯이 우리가 대화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집중해서 들어야한다. 오늘 하루 7시간동안 영어듣기평가를 받은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대부분 하지 못했다. 던지고 싶은 드립이나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많은데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찾고 나면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다. 넘나 슬픈 것.. 여기서는 집중하지 않으면 남들이 하는 말은 그냥 소음이 된다. 내 귀에 들어오기 않고 그냥 귓바퀴에 맴돌다 회색빛 보도블록에 툭 떨어진다.


여기서는 집중하지 않으면 남들이 하는 말은 그냥 소음이 된다. 내 귀에 들어오기 않고 그냥 귓바퀴에 맴돌다 회색빛 보도블록에 툭 떨어진다.




아마 한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동갑내기들 중에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표현할 줄 몰라서 못하는 친구들이 있을 거 같다. 어른들도 보여주고 싶은 그분들의 마음이 있지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내가 눈치 채지 못한 그동안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 못하면서 꽤나 슬퍼했을텐데. 거창한게 아니라, 그냥 주변에서 내가 일상적으로 소외시키는 사람들의 속마음까지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배려가 더 많이 필요하겠다고 오늘 하루 종일 생각했다. 한국에서 나는 내가 원한다면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어렵지 않았고, 많은 친구들이 내 주변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나를 궁금해하는 눈빛과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열려있는 귀들이 있어서 어디서든 말하기 편했고 즐거움을 얻어내기가 쉬웠다. 하지만 여기서는 사람들이 그다지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어쩌면 싫어하는 건 아닐까?'싶은 걱정까지 하게 된다. 게다가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완벽히 이해하지도 못해서 오늘도 웃는 타이밍을 늦게 알아차렸다.


조금 건방진 말일지 모르지만, 나와는 다르게 대화에 끼는 것이 어렵고, 누군가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내성적이어서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나 보다 싶은 그런 사람들. 근데 그중에 대부분은 사실 대화하고 싶고 웃고 싶고 즐겁고 싶지만 단지 용기가 없거나 타이밍을 잡지 못했거나, 대화에 필요한 기술을 갖지 못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했을 뿐일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오늘 내가 그랬으니까.


감자튀김을 먹으러 가서 '앙뚜안'이라는 벨기에 친구가 나를 많이 도와줬는데 정말 많이 고마웠다. 마음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고 편안해졌다. 한국은 따뜻한 정이 많은 나라이지만 낯선 이들에게는 한 없이 차갑기도 한 나라인데 그들에게 따뜻함을 주면 정말 고마워할 거 같다. 외국인이나 뉴페이스 같은 낯선 이들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모든 소외된 사람들에게 항상 따뜻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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