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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곤잘레스 파파
Mar 08. 2022
[10] 응답하라1994 국산맥주 삼국지
OB-하이트-카스!!!
가급적 맥주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싶었다.
얘기가 꺼내기가 무섭게 편의점 만원맥주를 사러
왠지 달려갈 것 같은 느낌에 ㅠㅠ
요즘처럼 맥주의 호시절이 있었을까?
편의점에 달려가면 너무 많은 맥주 종류에
선택 장애가 오기 마련이니...
다들 마음에 품은 No.1 맥주 하나쯤은 있으리.
참고로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맥주는
깔끔한 맛의 'OB라거'와
산뜻한 맛의 '곰표맥주'이긴 하지만 ^^
어쨌든, 오늘은 국산맥주의
아찔하고도 슬픈 역사 한 소절 부르고
맥주 한 모금을 넘기련다.
맥주 선택장애
우리 맥주의 전성기는 바야흐로 1994년이 아니었을까?
물론 다양한 국산 수제맥주가 편의점을 공습한
요즘이 전성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순수하게 "국산(국내기업)"이라 불리는
맥주의 전성시대는 개인적으로
국민맥주 "카스"가 출시된 1994년이었던 것 같다.
카스는 기존의 아성이었던 국산맥주계 양대산맥
OB와 하이트를 긴장시켰던 진로의 작품이었다!
소맥 전성시대를 만든 대명사 "테슬라"와 "카스처럼"의 맥주 주인공
지금까지도 소맥의 대명사로 불리는
"테슬라(테라+참이슬)"와 "카스처럼(카스+처음처럼)"
2012년 맥주 시장의 1위로 자리매김한 카스는
아쉽게도, 지금은 국산(국내기업) 맥주라 불리긴 어렵다!!
진로는 카스로 맥주 시장에 진출하며
새바람을 불러일으켰지만
1997년 IMF로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오비맥주에 인수된다.
게다가 오비맥주는 모기업 두산의 구조조정으로
벨기에 인터브루에 매각되고, 현재는
미국-벨기에 합작회사
AB 인베브라는
회사로 최종 넘어갔
다!
벨기에 대사관 부인의 폭행사건이
한창 이슈가 되면서
덩달아 카스불매운동도 잠시 일었던 듯.
우리가 즐겨 마시고 있는 OB라거 역시
브랜드만 OB일 뿐 더 이상 OB주식회사가 아닌 것!
AB 인베브는 자신들의 히트 상품인
버드와이저, 벡스, 호가든을 포함해
OB라거, 카스 등을 OEM으로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OB라거나 카스가 많이 팔리면, 벨기에로 수입이 들어간다고 하니 ㅠㅠ)
오비 호가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자란 맥주산업!
하이트와 OB가 6:4 비율로
내수시장을 오랫동안 차지했을 만큼
맥주시장의 진입장벽은 높았고, 맛의 변화는 없었다.
1933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맥주가 생산된다!
물론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공장을 세우면서 진출한 격!
삿포로와 아사히로 유명한 (주)대일본맥주가 1933년 8월,
기린으로 유명한 (주)소화기린맥주가 1933년 12월,
조선이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군수 기지화되면서 서울 일대에
많은 공장들이 세워지면서 맥주 공장이 들어온 것이다!
해방 후, 두 맥주회사는 미군정청에 귀속되고
민간에 불하된다.
어수선한 해방정국에서 친일 기업인들이
덤핑으로 적산관리 공장을 사들이는데
1952년 친일파에 의해 OB와 하이트 전신인
민간기업이 출범한다!
(주)소화기린맥주는 두산그룹 박두병 초대회장이 (주)동양맥주로!
(주)대일본맥주는 을사오적 민영휘의 손자인 민덕기가 (주)조선맥주로!
공교롭게도, 두 맥주기업의 역사가 비슷하다...
1950년대까지는 (주)조선맥주의 브랜드
크라운이 시장을 주도하지만,
동양맥주가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친 노력 끝에
1950년대 후반
시장을 역전시키고,
결국 (주)조선맥주는 1969년 부산의 대선주조 일가가 인수해 오늘날 '하이트진로'로 이어진다.
오랜 양대산맥 "하이트와 OB"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맥주는
부유층이 즐기는 고급술이었지만
중동건설 특수, 수출시장의 호조로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맥주 소비량이 늘기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장을 선도한 (주)동양맥주의 OB는
직장인들에게 친근한 마케팅으로 맥주 대중화를 이끌었고,
1980년대 중반 등장한 OB호프는 맥주 소비층을 전 세대로
확대해 '호프집'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었다.
이러한 대중화에 힘입어 1990년대 초반 OB맥주는
무려 시장점유율 80%까지 무섭게 성장한다!
국내 식품산업 역사를 들춰보면
언제나 잘 나가던 1세대 기업들은
기업의 운명을 가르는 흑역사가 등장하기 마련이니..
삼양식품의 '우지파동'이 기업의 몰락을 불렀다면,
OB맥주에는 바로 모기업인 두산그룹의
그 유명한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몰락의 계기가 된다...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1991)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이라는 영화에도 나온
그 유명한 페놀 원액 30만 톤이
낙동강으로 유출된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여파로 두산그룹은 위세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OB맥주까지 불매운동으로 확산된다.
세상은 참 돌고 돈다!!!
무려 30여 년 OB의 아성이 무너질 줄 몰랐는데
이처럼 얼토당토않는 사건으로
한순간에 기업 이미지가 추락하면서
그 아성이 무너질 줄 누가 알았으랴.
이때가 기회다!!!
페놀사건으로 OB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만년 2위였던 (주)조선맥주 크라운은
1993년 "지하 1,500미터 천연암반수로 만든 맥주"
하이트를 출시한다!!!
남의 실수는, 곧 나의 성공가도니...
당시 사회 환경과 분위기를 반영해
OB의 불신 이미지를 반전의 기회로 살려
깨끗한 물로 만든 맥주를 콘셉트로
하이트는 출시 3년 만에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선다!
그리고, 1998년 사명까지
(주)조선맥주에서 (주)하이트맥주로 변경한다.
하이트와 OB의 각축전
여기서 하이트와 OB는 서로의 약점을 도발하며
각축전을 벌이고, OB는 '사운드, 아이스'등
새로운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오비의 체면을 세운 건 '오비' 브랜드.
'오비라거'를 브랜드로 채택하고,
박중훈을 광고모델로 기용해
"맛있는 맥주"를 강조해 겨우 브랜드 회복을 했다.
그리고 1995년 기업 사명을 (주)오비맥주로 변경한다.
그 이후, OB맥주의 흐름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모기업인 두산그룹의 흔들림으로
결국 벨기에 기업에 매각되고,
오랜 전성기의 추억은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자취를 감춘다.
세상에 여전한 건 없다.
경쟁사 OB가 사라진 자리에는
진로와 합병한 "하이트진로"가 <테라>로
2016년 <클라우드>로 맥주시장에 진출한 "롯데"가
그리고 제주맥주와 같은
다수의 중소 크래프트 맥주기업들이
춘추전국시대를 형성하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은 국산맥주의 전성시대라고 보기엔
애매한 측면이 있지만 오히려 맥주의 다양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측면에서
소비자들에겐 더 풍족한 맥주시대가 아닐까 싶다.
더 이상 맛없는 탄산 가득 담긴 맥주를 마실 필요도 없고.
이젠, 뭐가 국산맥주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만
여전히 우리 기억 속에 OB맥주 광고에 나오던
귀여운 곰 그림이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치열했던 삼파전이 벌어졌던 1994년 맥주시장!!
어쩌면 다시 안 올 전성시대였던
카스-OB-하이트의 삼파전은
시대의 뒤안길에 곱게 묻어줘야겠다.
오늘 밤, 맥주 한 모금하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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