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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Mar 18. 2022

[12] 대한제국 황실의 슬픈 만찬

비극의 시작 : 고종 황제와 앨리스 루스벨트

1905년 덕수궁(당시 중명전) 홀에서 

성대한 오찬이 열린다.


오찬 메뉴는

열구자탕(신선로)에서 골동면(비빔국수), 편육, 전복초,

화양적(산적) 등에 이르는 성대한 한식 한 상이다.


이 오찬은 대한제국 최초로

외국인 여성을 초대한 식사였고,

보통 외국인과의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고종 황제가 황세자 순종까지 일부러 불러

자리한 성대한 오찬이었다.


그 초대받은 최초의 외국인 여성은

다름 아닌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였다!


대한제국에 방문한 앨리스 루즈벨트 (1905)


앨리스 루스벨트는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 성취를

국제사회에 널리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시아 5개국(필리핀, 홍콩, 중국, 싱가포르, 일본)을

순방한 뒤, 마지막으로 대한제국에 방문한다.


한국의 외교권이 강탈되기 전,

미국에 의지해 일본의 침략 야욕을 떨쳐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고종 황제는 성대하게 앨리스를 맞는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대한제국의 사정을 잘 알려주길 바라는

정말 마지막 바람을 담아 말이다.


대한제국 황실 오찬 메뉴판과 앨리스의 기록


앨리스 루스벨트가 기념품으로 챙긴

대한제국의 오찬 메뉴판.

메뉴판의 뒷면에는 "9월 20일 궁정에서의 점심.

황제가 참석하였고, 그가 외국 숙녀와 공개적인 식사를 한

첫 번째 행사였다"라고 그녀는 기록했다.


1934년 출판된 그녀의 자서전에는

고종과의 만남을 이렇게 적고 있다.


"황제와 곧이어 마지막 황제가 될 그의 아들은

우리 공사관 곁에 있던 궁전에서 내밀한 삶을 이어갔다.

우리가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 그 궁전의 유럽식 건물에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였다. 우리는 먼저 2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고 땅딸막한 황제는 먼저 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서둘러 좁은 계단을 내려가

특히 주목할 것 없고 조그마한 만찬장으로 들어갔다"


"그 두 사람은 애처롭고 둔감한 인물들이었으며

황실로서 그들의 존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한 나라의 황실이자

황제가 친히 마련한 오찬 자리를

그녀는 이렇게 비아냥거리듯 기록했다니.

게다가 마지막 황제라는 표현에서

이미 그녀는 대한제국의 운명을 알았던 것일까?


이미 대한제국이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간 걸 알면서도

태연하게 오찬을 즐기고, 땅딸막한 황제라 비난하고,

거만하게 문화재 석상에 올라 기념촬영을 한 그녀.


고종 황제의 간절한 바람은 무참히 짓밟히고,

농락당했던 것이다!


오찬이 열리기 두 달 전,

이미 미국의 육군 장관 윌리엄 태프트와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는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상호 인정하는 밀약을 맺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그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결국,

오찬이 열린 후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일본은 한국인들에게 치욕적인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한다.


그리고 이듬해

창덕궁 후원에서 삿뽀로 맥주를 포함한

갖가지 술들을 가져와 성대한 만찬을 연다.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 후 40년 간,

일본은 한국의 음식문화를 포함한

수많은 민족문화를 말살했고,

서양문물들을 표방한 제국의 음식들이

민족음식의 이름으로 탈바꿈된다.


만약, 일본의 침탈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이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켰거나

미국의 식민지가 됐더라면

우리의 과거는 달라졌을까?


해방 후 미군정은, 안정을 핑계로

친일 지주들에게 적산기업들을 헐값에 넘겼고,

그들이 오늘날 대기업의 반열에 서서 보수 애국을 외친다.

친일관료들은 이승만의 빨갱이 매카시즘에 기대

양민들을 학살하는 구국 청년단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경찰서장이 되는 현실이었다.


남아도는 잉여 밀가루들을 원조한다며

실제로는 돈을 받아 주한 미국 기관들을 지원했다.

여기에 공산주의 방어선으로 치밀하게

민족의 분단을 방관한 나라 미국.


해방 후, 냉전기를 거쳐, 분단에 아픈 역사를 이른

오늘날까지 그 중심에는 늘 미국이 있었다.


제국 전쟁의 놀이터, 냉전의 희생양이었던 나라.

수많은 양민들 희생을 뒤로하고,

우리는 여전히 먹고살기 바쁜 게 아닐까.


앨리스 루즈벨트의 대한제국 방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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