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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곤잘레스 파파
Feb 07. 2022
그대를 아름다운 여름날에 비할까
현대 유목민의 배설
Nomadland (2020)
그대를 아름다운 여름날에 비할까
- 셰익스피어 원작(노메드랜드 번역) -
그대를 아름다운 여름날에 비할까
그대는 여름보다 사랑스럽고 부드러워라
거친 바람이 오월의 꽃봉오리를 흔들고
우리가 빌려온 여름날은 짧기만 하네
때로 하늘의 눈은 너무나 뜨겁게 빛나고
그 황금빛 얼굴은 번번이 흐려진다네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움 속에 시들고
우연히 혹은 자연의 변화로 빛을 잃지만
그대의 여름날은 시들지 않으리
그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리
죽음은 그대에게 멀리 있고
영원한 시간 속에
인간이 숨 쉬고 볼 수 있는 한
그만큼 오래도록 이 시는 살 것이고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니
어느 날,
지는 해를 보면서
삶이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셰익스피어의 시구처럼
아름다운 날들은 아름다움 속에 시들고
자연의 변화로 빛을 잃는 만물의 덧없음이
인생에 빗대면 참 허무함이 느껴졌기에
우리 인생도 세월의 흐름 속에 내맡겨
흐르는 대로 관조하는 삶.
내 몸속에 흐르는 유목민의 피처럼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돌다
어딘가에 불안한 듯 안착하며
늘 쫓기듯 뒤를 돌아보는 삶.
우리네 인생은 덧없는 아름다움에 갇혀
영원하듯 생명을 갈구한다.
정처없이 떠돌던 어느 밤길
김훈 작가님의 산문을 읽다가
자연법칙의 하나인 배설의 과정이
참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감히 문구를 베껴 쓴다.
세상에 분노해 지껄여대는 술자리의 탄식과
다음날 그 쓰라림을 안고 배를 부여잡으며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인내를 견디는
그 과정이 참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생애가 다 거덜 난 것이 확실해서
울분과 짜증, 미움과 피로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날에는 별수 없이 술을 마시게 된다.
술 취한 자의 그 무책임하고 가엾은 정서를
마구 지껄여대면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지껄이고
낄낄거리고 없는 사람 욕하고 악다구니하고
지지고 볶다가 돌아오는 새벽들은
허무하고 참혹했다.
다음날 아침에 머리는 깨지고 속은 뒤집히고
몸속은 쓰레기로 가득 찬다.
이런 날의 자기혐오는 화장실 변기에
앉았을 때 완성된다.
뱃속이 끓어서, 똥은 다급한 신호를 보내오고
항문은 통제력을 잃고 저절로 열린다.
똥은 대장을 가득히 밀고 내려오지 못하고
비실비실 기어 나오는데,
그 굵기는 국숫가락 같다.
국숫가락은 툭툭 끊어진다.
슬픈 똥이다.
간밤에 안주로 집어먹은 것들이
서로 엉기지 않고, 제가끔 반쯤 삭아서
따로따로 나온다.
이런 똥은 평화로운 구린내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덜 삭은 원료들이
제가끔의 악취를 뿜어낸다.
똥의 모양새는 남루한데
냄새는 맹렬하다.
간밤에 마구 지껄였던 그 공허한 말들의
파편도 덜 썩은 채로 똥 속에 섞여서 나온다.
저것이 나로구나.
저것이 내 실존의 엑시스로구나.
저것이 내 밥이고 내 술이고
내 몸이고 내 시간이로구나.
이 똥은 사회경제적 모순과 갈등이
한 개인의 창자 속에서 먹이와
불화를 일으켜서 소화되지 않은 채
쏟아져 나온 고해의 배설물이다.
- 김훈 <연필로 쓰기> 中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시문과
김훈 선생님의 처절한 인생 산문이
참 아이러니하게 닮았다.
감히 대변할 수 없는
인생 곳곳의 허무함과 쓰라림들을
감내하며 버티고 인내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대를 아름다운 여름날에 비할까?
셰익스피어는
자연과 인생의 덧없는 아름다움을
영원히 시들지 않는
모순된 여름날이라 빗댔고
김훈 선생은
인생 구석진 어느 밤 술자리를 뒤로 하고
견뎌냈던 뒷간에서의 지독한 인내 과정을
직설적으로 인생에 빗댔다.
허무주의에 사로잡힌 어느 청춘 날.
악다구니를 쏟아내던 술자리를 뒤로 하고
정처 없이 어느 골목길을 떠돌다
한 줄기 희망 어린 문구를 보며
다시금 다가올 여름날을 상상했다.
"I'm happy I'm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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