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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환 Jan 20. 2023

평균실종과 '취존'

트렌드코리아 2023

매년 서점에 가면 항상 보이는 책이지만 손이 잘 안 갔던 책이 있다. 트렌드 코리아20xx.

별 관심 없었던 책이었지만 매년 책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항상 연말 베스트셀러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과 작년부터 브랜딩과 마케팅 등에 지대한 관심이 생겨서 매우 궁금해진 찰나, 마침 아는 분이 트렌드코리아 2023 독서모임을 한다는 정보도 들었고 무엇보다 트렌드와 힙함에 빠져있는 요즘 매년 내년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사람들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에 대해 알고 싶어서 책을 단숨에 집어 들었다.


책 표지에 김난도교수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있어서 그가 온전히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여러 명의 공동 저자들이 있고 그들 뒤에도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분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김난도 교수는 그런 자료들을 취합하여 정리하는 느낌의 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트렌드라는 건 굉장히 다양한 영역에 존재하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느 한 사람이 그걸 어떻게 점쟁이도 아니고 내년에 올 트렌드를 어떻게 전년도에 예측할까?라는 의문이 조금 해결되면서 책에 대한 신뢰가 더 생겼던 것 같다.


트렌드코리아 2023을 읽고 모였던 독서모임에서 한 참여자분은 책에서 가장 처음에 다루고 있는 트렌드인 ‘평균실종’이라는 개념이 결코 새로운 트렌드가 아니라 예전부터 있던 개념인데 왜 맨 처음에 이 개념을 배치하였는지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식의 말을 했다. 그런데 나는 평균실종이라는 개념이 2023년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이기 때문에 맨 앞에 배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그 이후 나오는 다른 트렌드들 중에 많은 트렌드들이 평균실종이라는 특징에서부터 출발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트렌드코리아 2023에서 소개하는 평균실종이라는 트렌드는 사람들의 선호도가 더 이상 종모양의 정규분포의 형태를 가지지 않고 변형된 형태의 분포를 따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양극단으로 몰리는 양극화/ 개별값이 산재하는 N극화/ 하나의 값으로만 쏠리는 단극화가 평균실종이 나타내고 있는 분포형태이다.


‘그냥 하지 말라’라는 책을 통해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남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에 많이 신경을 쓰는 경향이 심해서 나오는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대한민국 사람들은 국룰과 평타를 집착적인 수준으로 추구해 왔다.

인터넷에 떠도는 결혼하기 괜찮다고 생각하는 남녀의 스펙을 하나하나 놓고 보면 그리 특별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여러 스펙들의 교집합을 모두 갖춘 사람이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처럼 언젠가부터 실제로 국룰과 평타를 실행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깨달은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많고 국룰 평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만 전보다는 확실히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은 이제 남들이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것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들을 찾기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사람들의 행태가 평균실종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다.


독서모임에 참여한 또 다른 분은 화장품 판매업을 하시는데 이에 대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님들은 들어오자마자 어느 브랜드의 어느 제품 몇 호? 가 어디 있냐는 식의 질문을 해왔다면, 요즘은 그런 식의 질문보다 각자 본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다양한 칼라의 화장품을 알아오는 경향이 많다고 했다. 가장 잘 나가는 색의 독보적인 제품이 있다기보다는 가장 잘 나가는 색과 그렇지 않은 색의 화장품의 판매량 차이가 이전보다 확실히 덜하다는 이런 이야기는 평균실종의 N극화를 몸소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물론 트렌드 2023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아예 없던 개념들이 아니라는 그분의 이야기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새로운 트렌드라고 하는 것들은 예전부터 그 개념 자체는 존재했지만 그 정도가 이전에 비해 우리의 일상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현저하게 부각되고 있는 현상을 소개해주는 목적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유행은 돈다는 이야기처럼, 트렌드라는 것도 이전에 있던 개념이라 하더라도 지금 가장 주목을 받으면 그 시대에 조금 더 맞게 변형되어 우리에게 마치 새로운 무언가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러한 여러 트렌드 현상들을 많은 통계자료와 분석을 통해 하나로 통합하여 그들이 정의하는 새로운 단어로서 이것이 내년을 이끌 트렌드라며 말하는 느낌의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김난도 교수가 엄청난 통찰력이 있어 미래를 예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부터 그들이 정의하는 새로운 [새롭다고 정의하는] 사회현상 단어들을 미디어에서 자주 쓰기 시작하고 정말 그들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수준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나에게는 평균실종 이외에 인상 깊게 다가온 또 다른 트렌드는 인덱스 관계였는데


인덱스 관계란 서로의 공통된 취미나 취향으로 만나게 된 관계라고 생각하면 쉽다. #ㅇㅇ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ㅇㅇ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을 대치하여 넣을 수 있고 그런 것들을 할 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건축/동네맛집/독서 와 관련된 인덱스 친구들이 있다. 인덱스관계로 알게 된 사람과는 아직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먼저 관련 모임에서 만나게 된 뒤에 인덱스 관계로 남게 되는 경우는 많은 것 같다.


이전까지 우리가 맺어 온 인간관계들은 우연히 어느 학교에 갔더니, 학원에 갔더니, 회사에 갔더니 같은 반이어서 같은 팀이어서 알게 된 사람들 안에서만 이루어진 것 같다.

물론 그 안에서도 지금까지 잘 지내고 내 인생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 역시 그 안에서 만나고 이어온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테지만 내게는 그러한 집단 가운데에 있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랜덤의 집단안에서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굉장히 확률이 낮은 사건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좋아라 하는 나를 좋아해 준 사람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보낸다.


그리고 심지어 코로나로 인해 우연히 같은 반이 되어도 이제는 학급친구의 맨 얼굴을 잘 모르고, 화상수업과 재택근무 등으로 인해 선배와 후배와 상사와 얼굴을 대면하는 경우가 줄어들면서 서로의 취미와 취향을 공유하는 존재들끼리 만나는 인덱스 관계들이 늘어난 것이다. 나는 학교를 다닐 때도 학원을 다닐 때도 주류들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생활해 왔던 것 같다. 내향적인 성향의 문제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랬든 아니든 별로 나랑 성향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독서모임에서의 나는 학교와 학원 직장에서의 나와는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그룹에서의 내 페르소나보다 서로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려는 집단에서의 나는 조금 더 적극적인 것 같고 좀 더 나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알게 된 분이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독서모임에서 더 이상 보지 못하니 가끔 카톡이나 디엠으로만 안부를 묻게 되는 관계로 지내게 되었는데, ‘정환 님과 이렇게 인친으로만 남게 되는 건 아닌가 싶다’는 식의 섭섭해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인친이라는 것도 꽤나 의미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더 자주 봤던 여느 친구[사실상 지인]보다 더 친하게 느껴지는 인덱스 관계[처럼 지내는 관계들]들이 내게는 몇 명 존재한다. 또 나에겐 모르는 누군가가 선팔하면 무조건 맞팔하고 싶지도 않아서 나 같은 오프라인 아싸? 들은 인덱스관계가 꽤나 소중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다루는 핵심 트렌드는 평균실종이었고 평균실종의 본질은 ‘취존’인 것 같다. 우리는 이제 '취존'의 시대로 가고 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취향에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국룰, 평타를 원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점점 자신만의 것을 찾기 시작했고 그런 디테일하고 다양해진 시장 선호도를 대기업의 자본력이 아닌 다른 어떤 방법으로 만족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아이디어가 개인브랜딩을 하려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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