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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Sep 04. 2021

고층 빌딩을 기어오르는 남자

슬랩스틱과 스턴트, 기막힌 상황 설정의 유머! 영화 <안전불감증>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20년대 미국 무성영화 시대의 대표적 인물을 말해 보라 하면 대부분 '찰리 채플린'을 이야기한다. 콧수염 분장에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찰리 채플린의 모습은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모습이다. 찰리 채플린은 또 <모던 타임즈>, <황금광 시대>, <위대한 독재자> 등등 무성/ 유성 영화를 가리지 않고 대단한 대표작들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 찰리 채플린 특별전이 열려 <모던 타임즈>를 한 번 더 봤다. 다시 봐도 놀랍고 대단한 영화였다. 하지만 지금 이 지면은 다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거고 찰리 채플린에 대해선 추후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이만 줄이겠다.  또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은 '버스터 키튼'도 이야기할 것이다. 찰리 채플린과 더불어 무성영화 시대에 가장 유명한 거장으로 꼽히는 감독이자 배우이다.

 오늘 다룰 영화에 출연한 '해롤드 로이드'는 앞선 두 거장처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무성 영화 시대에 한 획을 그은 숨은 거장이다. 트레이드마크인 안경을 쓴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며 시계에 위태롭게 매달린 사진으로 유명한 배우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슬랩스틱에 능하고 여기에 스릴 넘치는 스턴트에도 능하다. 해롤드 로이드의 대표작인 <안전불감증>이란 영화 한 편만 봐도 그의 진가를 느껴볼 수 있다.

 

 <안전불감증>이란 영화의 원제는 'Safety Last!'이다. 2015년에 영화가 국내 재개봉할 때엔 이 원제를 직역한 <마침내 안전!>으로 나왔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남자는 성공을 위해 큰 도시로 떠난다. 거기서 돈을 많이 벌면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할 생각이다. 그는 큰돈을 벌기 위해 고층 빌딩에 올라가는 쇼를 기획한다. 중간중간 생략이 있었지만 거의 줄거리 반 이상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말로 설명하기엔 한계가 명확하다. 특히 아슬아슬한 마지막 고층빌딩 시퀀스만큼은 직접 보시는 것보다 나은 설명은 없어 보인다.

 이 영화는 1923년에 나왔으니까 100년 전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사 하나 없이 음악 만이 흘러나오고 몸짓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서사는 긴 줄의 자막으로 처리하는 100년 전에 나온 무성영화는 쉽사리 도전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시대가 흐른 만큼 요즘에는 안 통할 유머 감각이 있을 것 같고 대사가 없으면 졸릴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이어서 볼 다른 재미난 무성영화들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의 장점을 3가지로 꼽고 싶다. 첫 번째는 슬랩스틱이다. 흔히 몸개그라고 많이들 부른다. 단순히 넘어지거나 뭔가에 부딪히는 액션 말고도 <모던 타임즈>에서 공장에 나사 조이는 일만 하다 돌아버린 찰리 채플린이 나사 모양으로 된 물체를 보면 조이려고 달려들면서 벌어지는 우당탕탕 해프닝처럼 몸으로 웃기는 건 다 슬랩스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월세 독촉하러 온 집주인을 피하기 위해 벽에 걸린 옷 행세를 하고 지각을 면하기 위해 구급차를 타고 출근하려고 환자 행세를 하는 등 재미난 슬랩스틱 코미디들을 찾아볼 수 있다.

 두 번째는 기막힌 상황 설정이다. 영화에서 아예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해 주는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남자는 돈 잘 버는 백화점 매니저인 척 사랑하는 여자를 속여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여자가 백화점을 찾아오게 된다. 여기서부터 벌써 상황이 재밌어진다. 여자가 온 순간부터 남자는 자기와 동등한 동료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리고 일처리를 감독하는 등 들키지 않기 위한 필사의 연기를 시작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자가 남자가 일하는 매니저 사무실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숨 막히는 위기 상황을 남자는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보는 사람의 흥미도 더 생겨나고 재미가 배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슬랩스틱과 기막힌 상황 설정은 사실 재밌는 코미디 무성영화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소양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본에 덧붙여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세 번째, 스턴트 액션이다. 직접 보시는 것보다 나은 설명은 없다고 했던 고층 빌딩을 실제로 오르는 시퀀스가 바로 그것이다. 해롤드 로이드는 '스릴 코미디언'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스턴트 액션에 능한 배우이다. 기술력도 부족한 100년 전에는 참 위험요소가 많은 장면이었을 텐데 12층 높이의 건물을 두 손으로 오르는 액션은 정말 대단하다. 보다 보면 그의 상체 근력이 궁금해진다. 훗날 여러 영화에서 오마주 된 시계에 위태롭게 매달린 장면도 해롤드 로이드였기에 가능한 액션이었다. 재미도 있으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쫄깃한 긴장감도 제공해준다.  


 <안전불감증>은 시대도 문화권도 완전하게 다른 사람이 영화를 보고 웃고 스릴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성영화의 힘을 제대로 체감할 수 있는 영화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영화의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내내 거짓과 과장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위기 모면에만 힘쓰던 주인공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자신의 힘으로 고층빌딩을 끝까지 올라가는 모습이 자신의 진짜 자아를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져 감명 깊었다. 이 영화 러닝타임도 그리 길지 않으니 무성영화의 색다른 재미를 느껴보기 위해 주말 저녁 한 시간 정도 투자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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