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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Sep 11. 2021

17세기 영국에서 나타난 특이한 피부

장르로 영화보기/ 오컬트 영화(1) 사탄의 피부

 세상엔 참 많은 영화 장르들이 있다. 그중엔 코미디, 멜로, 드라마, 액션, 스릴러 같은 주류 장르들도 있고 주류 장르와는 결이 다른 독자적인 성격을 띠는 서브 장르들도 있다. 필자는 앞으로 지면을 통해 대중적인 감성에서 조금 벗어난 마이너한 서브 장르들을 소개하고 관련된 영화를 다루려고 한다. 서브 장르에도 종류가 많지만 일단은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해 공포/스릴러와 관련된 것들이 많이 등장할 예정이다.


 17세기 영국의 한 시골 마을. 밭을 갈던 청년 '랄프'가 한쪽 눈이 있고 털이 난 사람 머리 같은 형체를 발견한다. 그 뒤로 마을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피터'의 약혼녀 '로잘린드'가 다락방에서 무언가 목격하고 이상 증세를 보이고 후엔 피터도 괴상한 형체를 보고 자신의 손을 자른다. 또 마을에선 아이들이 하나 둘 실종되고 시체로 발견되기도 한다. 몇몇 아이들 몸엔 괴상한 피부가 돋아난다. 그리고 사건의 중심엔 괴물의 발톱 같은 뼈를 발견한 '엔젤'이란 소녀가 있다.


 1971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사탄의 피부>다. 영화의 줄거리를 대충 봐도 불가사의하면서 초자연적인 어떤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제목만 봐도 <사탄의 피부>다. 사탄이라 하면 타락한 천사이자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존재, 흔히 악마라 불리는 것들 아닌가. 제목을 통해서 벌써 이 모든 일들이 악마로 인해 발생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장르를 먼저 짚고 가겠다.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서브 장르는 '오컬트 영화'이다. 오컬트는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ㆍ초자연적 현상. 또는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네이버 국어사전)'이라고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오컬트 영화는 그런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는 영화이다. 주로 악마의 형태를 띤 어느 정도 실체가 있는 것들이 영화에 많이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공포/스릴러와 깊은 연을 맺고 있는 장르이다. 오컬트 영화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60~70년대에 많이 나왔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 거꾸로 계단을 내려오는 이미지로 유명한 영화 <엑소시스트>, 악마의 아들이란 소재를 다룬 리처드 도너 감독의 <오멘>등이 이 시기에 나왔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 <사탄의 피부>도 1971년에 제작되었다. 시대를 건너뛰어 최근으로 오면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 연출하고 <퀸스 갬빗>으로 대중에게 눈도장 제대로 찍은 핫한 여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가 나온 영화 <더 위치> 그리고 공포 영화계에서 샛별을 넘어 거성으로 올라가고 있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유전>, <미드소마>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언급한 작품들을 보면 영화 분위기가 묘하고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전반적으로 감돈다. 그리고 마지막에 '빵' 하고 숨겨진 실체 혹은 배후의 신비로운 힘이 드러난다. 국내에서도 <검은 사제들>의 성공 이후 <사바하>, <사자> 넷플릭스에 공개된 <제8일의 밤> 등 전보다는 오컬트 장르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고 있긴 한데 여전히 편 수 자체가 적고 악마와 구마 사제의 대립을 다루는 퇴마 소재로 폭이 한정되어 있는 느낌이다.(물론 <곡성> 같은 예외도 존재한다.)



 그러면 이런 오컬트 영화는 왜 보는 걸까? 꽤나 주관적이고 어려운 질문인데 나름대로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먼저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다 보니 흥미가 생긴다. 뭔가 있을법한 일 같으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지 않은가. 또 장르적인 쾌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며 장르적 쾌감이라는 이 말은 마치 만병통치약 같아서 서브 장르 영화를 보는 이유 중 어디에 갖다 붙여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컬트 영화의 쾌감은 말로 형용하기 힘든 초자연적인 일이 일순간 터질 때 즉 상상 속 실체와 정면으로 마주할 때 가장 크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쾌감은 개인차가 심하기 때문에 같은 장면을 봐도 누군가는 짜릿한 감정을 느끼고 누군가는 불쾌하고 짜증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올 시간이다. <사탄의 피부>를 보며 느낀 것들을 간략하게 언급해보고 끝낼까 한다. 우선 첫 번째로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제목처럼 사탄의 피부 자체가 등장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마을 아이들에게 각각 부위별로 사탄의 피부가 돋아나고 그 피부가 돋아난 아이를 사탄에게 바치면 사탄이 힘을 얻고 완전하게 부활한다는 설정이다. 흔히 제물로 피를 바치거나 눈, 코, 귀 같은 얼굴 부위를 바치는 건 봤지만 피부 단위로 끌어모으는 건 처음 접하는 소재였다. 그리고 영화에서 돋아난 피부를 절개하는 씬이 있는데 이 절개 씬이 백미(白米)다. 영화를 보면서 내심 '저거 잘라내면 되는 거 아니야?' 했는데 그 궁금증도 풀리고 포를 뜨듯 살살 집중해서 자르는 의사와 고통스러운 소녀, 그리고 발버둥 치지 못하게 누르고 있는 랄프를 번갈아 비춰주며 조마조마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두 번째로는 엔젤과 그녀를 따라다니는 아이들이다. 사탄의 부활을 힘써 돕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엔젤(Angel)'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다. 이 엔젤은 극 중 다양한 표정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목사님을 유혹할 때는 치명적이고 거짓을 말할 때는 연약한 소녀 같으며 사탄의 피부를 지닌 아이들을 바칠 때는 잔인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엔젤의 등장 빈도는 그리 높지 않고 발산했던 포스들에 비해 마지막은 별 볼일 없었다. 엔젤 캐릭터를 잘 살렸다면 더 재밌게 영화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엔젤이 화관을 쓰고 숲 속을 거니는 이미지도 잔상이 많이 남는다. 그리고 엔젤을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순수함으로 사탄의 부활을 지켜보는 게 뇌리에 남는다. 그냥 봤을 땐 호기심 넘치고 순진무구한 표정인데 이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악마가 따로 없다. 이런 게 순수악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 사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사탄의 정확한 형체는 안 나오지만 실루엣 상으로는 성인 남성의 크기 정도이고 날카로운 손톱을 지녔으며 온몸에 복슬복슬 털이 나있다.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곰 같기도 하고 털 난 '울버린' 같기도 하다. 우연히 땅 속에서 발견되며 활동을 시작했고 완전한 부활을 위해 피부를 모았다. 이런 사탄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 정상적인 모습과 달리 피부로 상징되는 이질적인 모습을 지닌 사람들을 배척하고 사탄으로 몰아가는 17세기 당시의 세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남들과 다름이 의심과 상상력을 만나 사탄의 피부로 탄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속에서도 마녀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하는 '마거릿'이 등장한다. 이런 마녀사냥은 현대사회에서도 무수하게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그 배후엔 피부를 얻기 위한 사탄이 존재할지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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