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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Jun 02. 2022

기록으로 남기는 내 삶의 일부

대학원생 에세이 2

 어느덧 대학원 1학차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시간 참 빠르다. 처음 입학했을 때 학기말이 되면 내가 어떤 성장을 이루어냈을지 나름의 기대치가 있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그때의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친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주로 학업적인 측면, 즉 지식에 주로 한정되어 있다. 아직도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고 남들에 비하면 넘어야 할 고비가 더 많다. 학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수업을 들을 때 서로 간의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은 기본값이다. 그런데 나는 학술적인 부분에서 이 기본값부터 충족이 되지 않는다. 어쩔 때는 아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자랑할 만큼 뛰어나진 않았어도 나름 공부를 해왔다고 자부하는 나에겐 자주 있는 경험은 아니었다. 내가 해야 하는 공부에서 이렇게 많이 벽에 부딪혀본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시간의 마법을 믿었다. 1학차 마무리를 앞둔 지금은 아직 그 마법이 가시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당연히 그동안 읽은 텍스트도 있고 수업 들은 것도 있고 세미나 한 것도 있으니 발전이 아예 없다고 말하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내 높은 기대치를 충족하려면 방학과 다가올 2학차에는 놀고 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는 결단력이 필요할 것 같다.


 첫 에세이를 쓰고 대략 2개월이 좀 넘는 시간 동안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2개의 수업에서 있었던 총 4번의 발제를 무사히 마쳤고 1개의 수업에선 12개의 과제를 수행했다. 이중 '영화와 지정학' 수업에서 엘라 쇼핫(Ella Shohat)의 '포스트 제3세계주의의 문화'를 발제하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30페이지가량의 영어 텍스트였는데, 이걸 내가 이해하고 발제할 수 있게 제대로 해석하는 데만 일주일은 걸린 거 같다. 번역본이 아예 없다 보니 단어 하나하나 옮기는 데 신중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번역은 되지만 해석은 되지 않는 문장이 넘쳐났다. 어느 정도의 기초지식이 요구되었기에 발제 준비를 위한 추가 공부를 많이 했다. 해석을 마치고 텍스트를 요약하고 부연설명을 더하는 과정은 발제 이틀 전부터 시작해 발제 당일 아침에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발제 날은 밤을 꼬박 새웠다. 2시간 정도 잔 후 수업에서 발제를 진행했다. 약 1시간 정도의 발제는 무사히 끝났고 밤새며 준비하는데 소진한 체력을 회복하는 데에 주말이 날아갔다. 고된 만큼 내가 얻어가는 것도 많았다. 그렇지만 자주 하고 싶진 않다.


 5월 달은 조교 업무가 수업보다 바쁜 달이었다. 명색이 수업조교이긴 하나 소속이 대학원 행정실인지라 대학원 신입학 과정을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서류 검토부터 면접 준비까지 할 일이 많았다. 물론 조교인 나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만 수행했을 뿐이다. 그래서 교직원분들에 비하면 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추가 근무에 주말근무까지 공부할 시간 없이 일만 하다 보니 일주일 중 공부하고 수업 듣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내가 대학원생이 메인인지 조교가 메인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올 정도였다. 반복적이고 시간을 요하는 일이었을 뿐 일 자체의 강도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 했으면 재미없었을 텐데 함께하는 다른 선생님들이 있어서 나름 즐겁게 일했다. 입시시즌을 넘긴 후엔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지금 이 에세이도 조교 근무 시간에 작성하는 중이다.


 추가로 공부하고 싶어서 학과 내에서 따로 진행되는 세미나도 시작했다. 방학 때는 '발터 벤야민'으로 세미나가 진행된다고 해서 학기 중에는 '아도르노' 세미나를 진행하기로 했고 <계몽의 변증법>을 주 텍스트로 삼았다. 지금은 이제 거의 끝물에 다다렀다. 간단히 요약하면 계몽으로 현대사회에 돌입했는데 왜 자연과 같은 야만적 행위가 현대사회에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아도르노의 관점을 쓴 책이다. 2차 대전 시기의 쓰인 책이다 보니 야만적 행위는 주로 파시즘에 한정된다. 아도르노가 엘리트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보다는 냉소주의자처럼 느껴졌다. 문화의 상품화도 반유대주의도 모두 흐름상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스탠스에서 그가 고급 예술을 예술로 여긴 것에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여하튼 나도 극히 일부만을 공부했고 오독의 여지도 있기에 더 알아야 할 것이 많아 보인다.    


 이제 이번 학기는 텀페이퍼 작성만 남겨두고 있다. 과목당 하나씩 써야 하는데 이번 학차에 나는 3과목을 들으니 총 3개의 텀페이퍼를 동시에 써야 하는 것이다. 이번 학차에 남겨진 최후의 고비다. 하나 정도 쓰는 건 충분히 할만한데 3개를 써야 하다 보니 시간 분배가 특히 어려운 거 같다. 일단 대략적으로 주제는 다 나온 상태다. 지정학 수업은 알제리 독립 전쟁을 다룬 영화들을 비교 분석할 예정이고 비평세미나는 고딕 멜로드라마의 등장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훑어볼 생각이다. 장르영화는 워낙 수업에서 훌륭한 감독들을 많이 다뤄서 안 다룬 감독의 작품을 하나 선정한 다음, 현대 장르 특징과 이데올로기 분석을 해볼 생각이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현재 유력한 후보이다. 다음 에세이를 쓸 때는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진 이 텀페이퍼들이 완성된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내가 쓸 거지만 어떤 모습일지 나도 궁금하다!


 이렇게 내 삶의 일부나마 글로 남기니 뭔가 더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이런 정리 없이 하루하루 살다 보면 나중에 '내가 뭐한 거지?' 싶을 정도로 내 삶이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종종 글을 쓰다 보면 대학원 생활만큼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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