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유현 Nov 17. 2022

동력의 전환을 보여주는 플래시백

Good Time, 2018 - 사프디형제

 사프디 형제(조쉬 사프디, 베니 사프디)의 영화 <굿타임>은 러닝타임 내내 텐션이 떨어지지 않고 질주하는 서사를 지녔다. 잦은 클로즈업의 활용과 핸드헬드 기법의 촬영은 긴장감 넘치는 서사와 시너지를 일으키며 관객이 지속해서 몰입하고 인물과 동일한 불안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이는 감독의 차기작인 <언컷 젬스>에서도 나타나는 사프디 형제의 연출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해가 뜨기 전까지 자주 등장하는 네온 빛 조명과 신시사이저 음악은 뉴욕의 밤거리, 뒷골목 등의 배경을 어딘가 몽환적이면서도 차가운 도시 이미지가 부각되게 만든다. 극의 중심에는 ‘코니 니카스’ 역을 맡은 ‘로버트 패틴슨’이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그는 연기력보다는 ‘하이틴 스타’라는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각인됐고 이러한 인식을 깨기 위해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영화를 자주 찍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다. 수많은 좋은 필모그래프를 쌓아온 지금이야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력에 물음표를 띄우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 같다. 바로 이 전환점을 사프디 형제의 <굿타임>이 제공했다. <굿타임>에선 잘생기고 피부도 창백한 뱀파이어 ‘에드워드 컬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사프디 형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로버트 패틴슨이 아닌 그의 새로운 얼굴을 끌어내며 시종 질주하는 서사의 지휘를 맡긴다. 그리고 로버트 패틴슨은 맡은 바 임무를 훌륭히 소화한다.     


 <굿타임>의 전반부 질주의 동력은 함께 은행을 털다가 홀로 경찰에 붙잡힌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동생 ‘닉 니카스(베니 사프디)’를 빼내기 위함이다. 일각에서 보면 장애가 있는 동생이 치료 상담도 못 받게 하고 은행강도 짓에 동원하는 건 동생을 위함이라기보다 물질을 얻어 성공하려는 본인의 욕망을 위해 이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번 돈을 동생과 함께 뉴욕을 벗어나 살기 위해 쓸 것이라는 사실과 혼자 강도질할 때보다, 큰 체형의 동생이 함께할 때 도움이 된다는 걸 감안하면 납득 못할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힘들게 턴 은행 돈을 동생의 보석금으로 내고 보석이 실패하자 직접 동생을 빼내 오려고 한 거 보면 동생은 수단이 아니라 코니의 전반부 질주 동력으로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렇게 앞만 보며 달리던 질주의 동력이 변화하는 순간이 온다. 바로 영화의 중간 지점을 넘어 ‘레이’라는 인물이 등장할 때이다. 동생인 줄 알고 빼 왔던 사람은 바로 ‘레이’였고 코니는 그를 다시 돌려보내고 진짜 동생을 빼 오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레이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요지만 말하면 큰돈을 숨긴 위치를 안다는 것이다. 이 시점부터 질주의 동력은 큰돈으로 한탕하고자 하는 코니의 욕망으로 전환된다. 붙잡힌 동생을 빼내 오기 위해 노력하던 코니는 이제 자신을 도와준 소녀(크리스탈)가 경찰에 붙잡힐 때 아무 말하지 않고 돈을 숨긴 놀이공원을 지키던 수위를 패고 마약을 먹여 경찰에 넘기기도 한다. 동생을 위한 그의 마음의 진위가 의심될 정도로 코니는 욕망을 좇는다.     


 앞서 동력의 전환이 일어났다는 전환점에 대해서 세부적인 장면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이 부분은 영화상에서 특히 이질적이다. 상담할 때나 감옥에 갇힐 때 나온 동생의 시점 빼곤 코니의 시점에서 정신없는 하룻밤 이야기를 보여주던 영화에 갑자기 레이의 시점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플래시백의 형태로 구현된다. 영화의 전체적인 플롯을 놓고 봤을 때 홀로 톡 튀어나온 부분이다. 아마 영화의 동력이 바뀌는 중요지점인 만큼 감독이 구도를 의도적으로 비틀면서까지 강조해서 보여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더불어 개인적으론 코니의 동력의 전환을 보여주는 플래시백이라고 생각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러닝타임상 57분 33초에서 1시간 4분 44초까지 총 7분 11초간 진행된다.     


#1 현재 - 화이트 캐슬(white castle)에 도착하다(108s 지속시간)    

사진 1, 2 (순서대로)

 코니 일행(코니, 크리스탈, 레이)이 화이트 캐슬에 도착한다. 잠시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들렀다. 화이트 캐슬에 도착하는 숏은 사진1처럼 롱 숏으로 건물(화이트 캐슬) 전체와 자동차까지 다 담아 보여주고 있다. 사진2처럼 인물 클로즈업 숏이 잦은 영화에서 이런 롱 숏은 내내 꽉 찬 느낌으로 불안하게 흘러가던 영화를 환기하는 효과도 있다. <굿타임>에서는 이런 롱 숏이나 위에서 전체를 조망해서 보여주는 드론 숏(익스트림 롱 숏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을 중간마다 보여주며 관객이 숨 돌릴 틈을 제공한다. 화이트 캐슬에 도착한 후 어린 크리스탈을 음식을 사 오라고 내보낸다.    

사진 3, 4

 크리스탈은 차에서 내린 후부터는 사진3처럼 프레임에 갇혀 신체 일부가 제한적으로만 드러난다. 이는 코니의 시점 숏으로 볼 수 있다. 카메라는 굳이 크리스탈의 온전한 모습을 숏에 담을 노력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크리스탈이 아닌 레이와 코니의 대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둘의 대화는 사진2와 사진4의 반복이다. 레이를 비출 때는 종종 코니의 얼굴 일부분이 프레임에 걸친다. 그리고 따로 캡처하진 않았지만, 사진4의 구도를 역으로 해서 레이가 프레임 한구석에 걸치고 코니의 뒷모습을 잡아둔 숏도 있다. 그리고 코니가 걸리지 않은 레이의 단독 숏도 있다. 크게 이 4가지의 숏이 돌아가면서 나오고 대화가 이어진다. 단독 숏들은 대화가 무르익을 때 등장한다.      


#2 레이의 회상 – 출소하자마자 술을 마시다(6s) 

사진 5, 6

 영화에서 처음으로 플래시 백이 등장한다. 영상은 과거의 영상이고 현재 시점의 레이의 보이스오버가 덧입혀진다. 출소하자마자 술을 마시는 레이의 모습이 처음엔 미디엄숏으로 나왔다가 점점 줌인해 들어와 브랜디 병까지 클로즈업된다. 술을 마시는 그의 모습이 강조된다.         


#3 레이의 회상 – 친구 칼리드를 만나다(15s)    

사진 7, 8

 컷이 전환되고 ‘칼리드’라는 친구를 만나는 숏이 나온다. 칼리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중인데 숏은 타이트하게 클로즈업으로 잡혔다(사진7). 그리고 촬영은 핸드헬드를 사용해 인물의 초점이 뚜렷하게 잡히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속도감과 현장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연출기법이다. 레이는 정확히 칼리드와 대조된다. 프레임 상에선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 중이다. 클로즈업과 핸드헬드는 동일하다. 중앙으로 향하던 둘이 길 한복판에서 만난다(사진8). 웨이스트 투 숏으로 카메라가 구도를 잡고 있다. 인물 주변에 길을 오가는 인물들이 빽빽하게 차 있어서 현장감이 느껴진다.     


#4 레이의 회상 – 트레버의 집으로 가다(32s)  

사진 9, 10

 잠시 2초 정도 사진4와 같은 현재 레이의 단독 숏을 보여주다가 다시 컷 전환된다. 플래시 백을 통해 빠르게 상황이 전개되는 만큼 어느새 레이와 칼리드는 트레버의 집에 와 있다. 전환된 장면부터 카메라는 전체적인 배경이나 인물이 아닌 인물의 행위를 비추고 있다(사진9). 트레버는 마약의 일종인 LSD를 제조해서 판다. 그래서 이 장면은 마약을 제조하는 행위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가 움직이며 전체적인 방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마약 만드는 트레버의 뒤에선 레이가 매춘부와 성관계를 하고 있다. 또다시 컷 전환이 일어나며 트레버가 스포이트로 액체 형태의 마약을 테스트하는 숏이 나온다(사진 10). 그리고 컷 전환이 되고 술과 약에 취한 레이와 칼리드가 농담을 주고받는 숏들이 빠른 호흡의 편집으로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트레버가 완성된 마약을 잘라 자신의 혀에 대는 장면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30초가량의 짧은 장면이지만, 많은 숏이 사용되었고 인물이나 배경보다는 행위에 초점을 맞췄기에 구도도 불친절하다. 이 장면의 핵심은 트레버가 제조하는 LSD로 그가 제조하는 숏에서 시작해 마무리된 마약을 맛보는 숏으로 마무리된다. 중간에 삽입된 레이와 칼리드의 모습은 생략된 제조 과정을 연결된 것처럼 이어 붙이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장면을 통해 이 플래시백은 레이의 회상으로 구성된 장면들이지만 레이가 직접 본 레이의 시점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레버가 약을 만들던 시간에 레이는 매춘행위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음에도 플래시백은 트레버의 약 제조를 중점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는 레이가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살을 붙여서 기억과 실제 사건을 융합한 회상을 했다고 볼 수도 있고 영화가 제4의 벽을 뚫고 관객에게 친절히 전지적 작가 시점의 플래시백을 제공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5 레이의 회상 – 오락실과 돈의 등장(52s)    

사진 11, 12

 이어서 컷 전환이 되고 차를 타고 가는 일행의 모습을 단독 숏으로 보여준다(운전석-칼리드, 조수석-트레버, 뒷좌석-레이). 이동에만 목적을 둔 숏으로 빠르게 보여주고 오락실로 넘어간다. 오락실은 오락기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과 조명이 섞여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마치 그들이 제조하고 직접 하기도 했고 팔기도 하는 마약에 취하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빠르게 전환되는 숏 중에 인물의 클로즈업도 나오는데 레이를 보면 동공이 상당히 확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사진11). 인물이 마약에 상당히 취한 상태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인물의 클로즈업이 나오지 않을 땐 게임을 하는 등 행위에 초점을 맞춘 숏들이 이어진다(사진12).    

사진 13, 14

 이후 트레버의 친구라는 멍청이 ‘도니’가 등장한다. 레이의 회상은 이렇게 칼리드에 이어 트레버, 도니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들이 추가되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네트워크식 서사구조를 띄고 있다. 도니의 등장은 <굿타임>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바로 도니가 전자 제품 상가를 턴 돈 가방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사진13). 이 돈 가방 이야기가 나올 때 오랜만에 현재 시점의 코니 모습이 나온다(사진14). 그는 항상 레이를 등지고 있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뒤를 돌아본다. 돈 가방에 코니의 욕망이 자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 레이의 회상 - 경찰에 쫓기고 택시에서 탈출하다(112s)        

사진 15, 16

 다시 회상으로 컷 전환이 되고 오락실 안에 들어오는 경찰들의 숏을 보여준다. 이후 레이 일행이 도망치는 장면이 나온다. 먼저 그들은 근처 놀이공원으로 도망친다(사진15). 그들이 도망치는 곳에서는 화려한 놀이기구들은 보이지 않지만, 대신 공룡의 조형물들이 프레임 한 중앙에 놓여 있으므로 이곳이 놀이공원임을 알리고 있다. 이후 과정은 대폭 생략이 되었는데 영화는 이때 사진4와 같은 현재 시점의 레이를 보여주고 그의 말로 일어난 일을 요약해서 나타낸다(나머지 친구들은 붙잡히고 혼자 숨어있다 도망쳤다는 내용). 이러한 전환은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낮이었던 시간은 어느덧 저물어 시간의 흐름이 나타나고 레이는 택시를 타고 도망치려 한다(사진16).

사진 17, 18

택시 안에서는 사진17처럼 타이트한 클로즈업의 얼굴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택시기사와 말다툼 끝에 자신이 또 경찰에 잡힐 것을 걱정한 레이가 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장면이 마무리가 된다(사진18). 이를 통해 그가 얼굴을 다친 이유까지 밝혀지며 숨겨진 레이의 서사가 다 드러난다.     


#7 현재 – 돈을 찾으러 가는 코니 일행(105s)    

사진 19, 20

 레이의 회상이 모두 끝나고 현재 시점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사진4와 같은 레이의 단독 샷이 잡히고 이어서 코니의 샷이 레이를 걸쳐 잡히는데 사진14와 달리 레이를 등지고 앉아 있다. 레이는 자기 말을 듣긴 한 거냐며 코니를 다그치는데 코니는 반응이 없다. 이어진 숏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휴대폰을 클로즈업해서 잡아주는데 코니는 휴대폰으로 레이가 말한 놀이동산을 검색 중이다(사진19). 아마 레이가 택시에 탄 이후 이야기는 안 들었을 확률이 높다. 이어서 그 숨긴 돈 가방을 찾으러 가자고 레이를 설득하는데 그제야 다시 레이를 바라보고 대화를 시도한다(사진20).    

사진 21, 22

 외부에 있던 크리스탈이 돌아오며 오랜만에 크리스탈 단독 숏도 등장한다(사진21). 코니는 크리스탈에게 진실을 숨긴 채 레이와 함께 숨긴 돈을 찾으러 놀이동산으로 떠난다. 이때 카메라는 사진1 이후 현재 시점에선 처음으로 외부로 빠져나온다. 사진1은 롱 숏에 가까웠지만, 사진22는 드론 숏으로 자동차 위에서 그들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이렇게 카메라가 거시적으로 빠지며 레이의 회상 장면이 마무리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히치콕은 모더니스트 감독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