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_ 매일 죽어야 하나를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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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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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겨울, 유독 늘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

어머니는 MRI 촬영 결과 풍 조짐, 뇌출혈이 지나간 흔적 발견, 그리고 다른 좋지 못한 혈관 상태 때문에 병원에 추가 검사를 예약하고 오셨다. 그리고 그날 밤,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셨어야 할 아버지가 집에 오셨다. 동료분이 몸살이 심한 아버지를 보고 그냥 일찍 퇴근하라고 하셨다고 했다.


2달 전, 응급실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이후로 몸이 많이 안 좋아서 식사 한 끼 차리는 것도 심히 지쳐하시던 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꼬박 쉬셔야만 하는 몸살감기. 결국, 딸인 나는 병으로 인한 두통과 원인 모를 미열, 관절 통증에 시달리면서 컨디션이 난조인 상태로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다. 나보다 늙은 부모님을 챙겨드려야 하니까. 그렇게 2달이 흘렀다.


아버지가 몸살로 퇴원한 다음날, 어머니는 도배 일을 나가셨다.

밥 한 끼 차리는 것도 지쳐하시면서 어딜 가시냐고 화를 내니 쓰러질 정도 아니라 괜찮다며 고집을 피우셨다. 뇌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수술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처음으로 우리나라 큰 질병을 진단받았다는 충격으로 마음이 붕 뜨셔서 많은 시간을 멍하게 보내시면서도 생계가 걱정된다며 일을 놓지 못하셨다. (결국 현장에서 몸에 무리가 됨을 느끼신 이후로 쭉 쉬고 계시지만)


그런 와중에 나는 전날 어머니와 병원에 다녀온 것이 무리가 됐던 모양이다. 몸이 지쳐서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를 않아 아침과 점심을 떡 몇 조각 겨우 먹고 버텼다. 근데 그 상황에서도 도저히 아버지 보고 알아서 차려 드시라고 할 수가 없었다. 국 하나를 끓이면서도 수시로 앉아서 쉬다가 다시 꾸역꾸역 일어나 아픈 아버지의 아침, 점심을 차리려니 정말… 사는 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몸살감기라 곧 나으실 거였고, 그럼 다시 직장에 나가실 테니 숨통이 트일 거였다. 하지만 당장 ‘일을 나가시려면 얼른 나아야 할 텐데…’ 마음 졸이면서 가족 밥 한 끼 차리는 것도 지쳐서 끙끙거리는 나와 그런 내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는 부모님 뿐인 그 시간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이게 미래의 우리 집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촘촘히 메웠다. 두 분에 건강은 한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는 중이라 한 분이라도 거동을 못 할 만큼 건강이 안 좋아지게 된다는 시나리오는 영 상상에서만 일어날 일은 아니었다. 이제는 두 분 모두 건강하신 게 기적 같은 일이고 매일 건강을 지켜달라며 빌어야 하는 게 당연한 연세가 되신 지 몇 년 되었다. 그 바람에 지독한 치통 같은 괴로운 기분은 나아지지를 않고 꽤 오래 지속되었다.


어머니가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소식에도 독립한 아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오지 않으니 더 이상 도와줄 가족이 없다. 그러니 만약 그 어느 날과 달리 누구 하나라도 평생 돌봄이 필요한 불행을 겪는다면, 그 지독한 치통 같은 고통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였다.


겪어보는 것과 겪어보지 않은 것은 딱 천지차이였다.

가끔 아픈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했을 때 떠오르던 건 단순히 힘들겠다 정도였는데 실제 닥쳐보니 끔찍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그리고 그 끔찍하다는 생각 뒤에는 차라리 죽어야 편하겠다는 생각이 딱 한 템포 느리게 따라붙었다.


잠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드나들었다. 딱 그 정도만큼 지치고 괴로운 순간이었다. 그동안 제주도는커녕 카페 1번을 편히 못 가는 쪼들리는 삶을 살면서도 이만하면 됐다 하고, 가끔 가진 것에 행복하다며 웃을 수 있었던 건 그럭저럭 건강한 두 분 덕에 서로 힘든 부분들을 도와가며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쪼들리는 상황에서 변변치 않은 부모님의 노후를 준비하면서 이 정도만 돼도 괜찮다며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나마 안정적인 생활환경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만 병에 걸려 아플 때는 노후의 가난을 좀 만만하게 봤다. 그것이 2년 전 겨울 어느 날에 비하면 천국이었으므로. 하지만 두 분이 모두 아프던 그날, 나는 노후의 가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


매일 자살을 생각하며 사는 삶.

노후에 가난을 맞이하는 순간 늙는다는 사실보다 ‘오늘 죽어야 하나…?’를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나라는 노인 자살률 1위(2019년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라고 한다. 그것이 빈곤 때문이다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사는 게 힘든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했을 거라는 생각은 꽤 합리적일 듯싶다. 자살은 보통 죽는 것보다 사는 게 힘들 때 선택하게 되는 거니까.


죽어야 하나를 고민해야 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세상은 아직까지 살만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한 그런 곳이라 그렇다. 근데 내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사람을 참 잔인하게 아프게 다. 다른 이들은 향긋한 커피 향을 맡으며 하하호호 소리 내는 틈에서 나는 그 커피 향에도 괴로움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산다.


홀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겪는 외로움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사는 게 힘들다며 죽고 싶다는 사람들이 수두룩이지만 막상 행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은 그만큼 자살이라는 관문에 닿기까지가 쉽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느냐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일, 그중 하나는 매일 죽어야 하나를 고민하는 일이다.


노후에 가난.

가난한데 아프고 돈이 필요한 상황들은 자꾸 사람을 절벽 끝으로 내몬다. 건강하기만 하면 그 가난조차 정신승리로 이겨낼 수 있겠다 싶지만, 실상 늙으면 감기만 걸려도 폐렴을 걱정해야 하는 판이라. 50대에 부모님은 작년이나 올해나 겉모습이 별로 달라진 게 없으셨지만, 60살 딱 넘어가니 한 해가 다르게 노쇠해지신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들처럼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신다.


작년보다 주름이 하나 더 늘어나시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정말 길에서 보던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가고 계신다. 그동안 이런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보험과 비상금을 만들고 그걸로도 어려우면 주택연금 등의 대책을 염두에 둔 덕에 치안이 위험한 곳에서 더 비참한 삶을 살아가지는 않겠지만. 두 분 중 한 분이라도 아프게 되면 그건 좀 많이 위태로워지는 일이다.


그래도 부모님의 노후 준비를 그만둘 생각은 없다.

빈곤이라는 더 끔찍한 상황에는 닿고 싶지 않아서. 거기까지 가면 정말 못 살 것 같아서. 두 분이 건강하신 동안에도 충분히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하니까. 보험으로 병원비 걱정 없이 미리미리 치료받아야 병도 예방할 수 있고 이런 힘든 상황도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고.


다행히 아버지의 몸살은 곧 나아졌고 어머니도 아주 조금씩 컨디션을 회복하셨다. 한 해가 지난 지금 어머니는 더 이상 일은 못 나가시지만 식사 준비를 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젊지도 튼튼하지도 않으므로 나는 문득문득 아버지 기침소리와 어머니의 잔병치레에 가슴이 발발 떨린다.


나의 가슴이 불안을 느끼며 발발 떨리는 이유는 혹시나 또 죽어야 하나를 고민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어야 하나를 고민하는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부모님의 노후가. 그리고 내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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