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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e Nov 28. 2023

마케터의 은밀한 제주도 책방 나들이

나는 어떤 책방을 낼까? 먹고나 살 수 있을까? 

그게 너무 궁금해서 나처럼 마케터를 하다가 퇴사를 하고 책방을 낸 책방지기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그녀는 책방을 내고 우울증에 걸렸단다. 책방 운영에 대한 부담감과 생활고 때문이었다. 그는 책방지기를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고충을 솔직하게 얘기해 주었다.

책방지기라는 꿈을 마음속에 은밀하게 감춰놓은 이유는 이런 현실적인 고민과 더불어 지나치게 낭만적인 바람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불쑥 돌출되기 마련인 농도 짙은 비밀처럼, 이번 제주도 한달살이로 인해 나의 로망은 다시 되살아났다.


바용(낚시 좋아하는 바다 용사)과 나는 제주도 책방 투어를 계획했다. 제주도에 그렇게 많은 책방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책방을 모두 돌아다닐 것이라 생각하며 떠난 한달살이였는데, '제주도 책방'을 검색창에 쳐보고 바로 '책방 투어'에서 '책방 나들이'로 서둘러 컨셉을 바꿨다. 한 달이란 시간 동안 45개의 책방을 다 돌아다니는 건 무리였다. 나는 전투적인 책방 투어보다는, 소소한 책방 나들이를 택하기로 했다.


1. 책방무사

이름도, 공간도, 책방지기도, 문학적인 공간

동쪽에 숙소가 있었기 때문에 숙소와 가까운 책방을 골라서 돌아다녔다. 뮤지션이자 작가인 요조가 책방지기로 있는 '책방무사'를 먼저 가보았다. 가장 많이 알려진 제주도 책방 중에 하나라서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했다. 제주도 방언으로 '무사'는 '왜'라는 말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책방 왜? 지만, 질문을 던지는 이름마저 어쩐지 책방의 모습과 책방지기처럼 문학적으로 느껴졌다.

가을이 기다려지는 책방무사의 마당

책이 있는 메인 공간은 촬영이 어려워서 좀 아쉬웠다. 책방에 놀러 온 사람들을 위한 카페도 함께 있었고, 고양이가 없어서 섭섭하던 참에 귀여운 강아지가 나를 반겨주었다. 생각보다 책이 있는 공간은 규모가 작았다. 문학과 인문교양서적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책방지기인 요조 관련 서적과 사진도 많았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엘피 공간과 서점, 카페가 모여있고 그 속에 ㅁ자 모양의 작은 마당과 나무가 있었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하여 시골마을에 있는 가정집 같은 고즈넉함과 여유를 안겨주는 곳이었다. 나는 더위가 한창인 늦여름에 방문했지만, 어쩐지 가을과 어울리는 서점이다.

책방무사의 음악 공간


2. 공항서점

떠나고 싶은 날에는 '공항서점' 들려볼래요?

제주시에 바용의 낚시 장비를 당근 거래하러 갔다가 겸사겸사 찾은 책방은 바로 '공항서점'이다. 제주시에 있는 이 책방은 내가 간 책방 중에서 가장 번화가에 있는 곳이었다. 오피스텔과 신축주택들 사이에 작게 자리 잡은 서점이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방의 이름과 걸맞은 서점의 풍경이 펼쳐진다. 다양한 책들이 많지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여행 서적들이었다. 밝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는 책방지기 덕분에 책방을 나갈 때 좋아지는 기분은 덤이었다.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가장 긴 여행을 하고 있던 나로서는 매우 반가운 서점이었다. 여행 동안 자린고비가 되어야 했지만 기분이 좋아져서 책을 세 권이나 사버렸다.

제주도 여행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공항서점
짱구 좋아하는 친언니한테 줄 선물 하나, 제주도 한달살이에 딱 어울리는 에시이 하나!


3. 밤수지맨드라미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책방

어쩌면, 제주도에 오면 꼭 한 번쯤 들려봐야 하는 책방이 아닐까? 제주도를 마음에 아름답게 간직하고 싶다면 밤수지맨드라미 책방에 와볼 것을 추천한다. 관광지로 유명한 우도에 자리한 작은 책방이다. 책방을 소개하는 낭만적인 카피는 책방과 잘 어울린다.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서, 배 타고 우도 도착해서, 바이크 타고 책방에 도달했다. 나는 이 책방지기의 고독함과 고요함에 대해 떠올렸다. 이런 섬에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모든 빛이 사라진 깜깜한 섬 하늘 아래 책방에서 불빛 몇 개 켜놓으면 어떤 풍경이 보이고 어떤 바람이 불어올까? 책방 문을 열었는데 이게 웬걸. 사람이 북적북적해서 전혀 고요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책방'이라는 낭만적 카피에 조금 속은 느낌도 들었지만 섬 안이라고 해서 막연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탓도 있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알차게 꾸며진 책방이었고 큐레이션도 흥미로웠다. 사람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에세이가 많았고 문학 서적도 눈에 띄었다. 밤수지맨드라미에 온 사람들이 기념으로 사갈 수 있는 엽서나 굿즈도 있었고, 나는 그중에서 밤수지맨드라미의 풍경이 한 폭 담겨있는 엽서 한 장을 골랐다. 특히 격자무늬 창은 이곳의 하이라이트다. 창 밖으로 쏟아지는 햇빛과 바다의 풍경은 제주도를 아름답게 추억하기에 가장 좋은 스폿이었다.


나의 낭만이 실현되어 있던 공간

여자분은 카운터를 보고, 남자분은 커피를 내리고 있었는데, 내 눈에는 부부로(정확하지는 않음) 보였다. 나는 관광객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북적거림을 느꼈지만, 그래도 이곳은 섬이다. 아마 다른 곳보다 밤이 더 빨리 내려앉을 것이다. 바빠 보이는 부부에게 말을 걸 틈은 없었지만 다음에 이곳에 오면 꼭 물어보고 싶다. 어떻게 이곳에 책방을 차리게 된 여행과도 같은 여정과,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서점의 하나뿐인 손님인 파도를 맞이하는 기분은 어떤지. 그 손님은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정말 궁금하다!


4. 소심한 책방

너도 이렇게 책방을 내면 되겠다!

소심하다기에는 내가 제주도에서 들렸던 책방 중에서 가장 넓기도 했고, 소장하고 있는 책도 많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작업 공간을 통유리로 된 방으로 뺀 것이었다. 정말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간인 나라면 작업 공간은 아무도 못 보게 꽁꽁 숨겨놓을 건데. 통유리 안으로 컴퓨터가 올려진 책상이 훤히 내다보이는 작업 공간이라니. 우선 부러웠고, 그리고 멋있었다. 함께 온 바용은 생각보다 넓은 책방에 놀랐고, 통유리로 된 작업실에 또 한 번 놀라며 말했다. "너도 이렇게 책방을 내면 되겠다!"

이곳은 두 번째 방문하는 곳이었다. 혼자 제주도 여행을 왔을 때 우연히 들렸는데 한참 책을 보다가 갔던 기억이 난다. 바용과 함께 다시 오니 소심하기보다는 활기 찬 서점으로 달리 보였고, '종달리'라는 동네의 고즈넉함은 여전하게 느껴졌다. 또 여행을 온 기분을 내고자 제주도에서 딸과 함께 방학을 보내는 회사원이 쓴 에세이를 골랐다. 이상하게도 제주도 책방에서 책을 사서 책을 읽으면, 장소를 불문하고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코 끝에 끼치는 바다 냄새와 내일도 여행할 수 있다는 여유로움은 책과 가장 친한 친구다.

이건 바용이랑 내 얘긴데...뭘 살까... / 초록색 배경에 어린 딸의 명랑한 뒷모습이 표지로 담긴 <우리의 여름은 거기에 있어> 구매!


5. 일희일비

작가들의 정성과 꿈이 담긴 작은 책방!

고양이가 상주하고 있는 이 작은 책방의 이름은 일희일비! 바용을 따라서 바다낚시를 하러 갔다가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투박하고 두꺼운 글씨로 '책'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을 발견하고 가보니 이곳, 일희일비가 있었다. 책방의 규모는 지금까지 가본 책방 중에서 가장 작았다. 문학 서적이 가장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새침한 고양이와 책방지기의 화사한 얼굴이 나와 바용을 반겨주었다. 책방지기가 설명하길 이곳은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간 책방이라고 한다. 눈을 사로잡는 큐레이션이 있거나 특이한 굿즈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애정하는 사람들의 정성과 소박한 분위기가 마음을 감싸는 것 같았다. 사실 이미 책을 많이 샀고, 읽고 있는 책이 있던지라 책을 구매할 마음은 없었지만 어쩐지 무언가 사야 할 것 같았다. 밝은 표정의 책방지기를 보니 그랬고, 우연히 마주친 책방을 기억에 남길 기념품을 사고 싶었다. 내가 자꾸 책장에서 고민만 하고 책을 고르지 못하자 바용이 나 대신 가죽 책갈피를 하나 골라서 선물로 주었다. 평범한 갈색 빛깔 가죽 책갈피였지만 제주도로 돌아오고 난 후에도 어쩐지 애정이 가서 가장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에 끼워주고 있다!

   

마을 곳곳에 숨은 책방 찾기! 제주도 한달살이의 참맛


다 정리를 하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커져서 아무래도 책방 투어를 한 번 더 떠나야 할 것 같다.


최근 읽고 있는 <시와 산책>이라는 에세이에서 '행복'에 대한 좋은 구절을 발견했다.

"행복은 그렇게 뻔하고 획일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저마다 손금처럼 달라야 한다. 행복을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는 일처럼 은밀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난 책방이나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조금 부끄러워진다. 제주도에 숨은 책방들은 나의 은밀한 손바닥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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