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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에 대한 감사함

바람이 있어야 나무가 잘 자란다.

by 김아솔


2023년에는 정말 고마운 일들이 많았다. 아니 어쩌면 돌아온 날들을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고, 다른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금 내 상황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되었는지가 좀 더 맞는 표현이겠다.

아직도 신규 때 내 모습이 생생한데 벌써 10년 동안 교직에서 일했던게 인정이 되어 연수휴직을 해 볼 수 있었다. 4년 전 다녔던 영화학교에서 아직 재적이 되지 않아 다시 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전에 국내에서 다녔던 대학원은 바로 자퇴처리가 되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2022년부터 세계가 위드코로나를 선언함으로써 이제 대면으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해외생활이 처음이면 정말 아예 생각이 없거나, 불안함과 두려움을 많이 수반하기 마련인데 한 번 캐나다 토론토에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미리 머릿속에서 상황들을 그려볼 수 있었다. 예전에 영화학교 다닐 때 친구였던 Dennis 덕분에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도착했을 때 어디로 가야할지 헤맬 필요 없이 그 친구 차를 타고 그 친구집에서 한동안 지낼 수 있었다. 룸메이트가 예민하면 주변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기가 쉽지 않은데 사교성 좋은 프랑스인 배우 Robin을 룸메이트로 만나 많은 새로운 경험을 했다.

학교에서는 교수님들을 비롯해 주변 친구들이 매우 호의적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가서 상황을 좋게 보는 건지 실제로 호의적인건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마음이 불편한 일들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2023년도에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서 졸업하는 아이들과 헤어지는게 아쉬워 추억겸 놀이로 함께 만들었던 뮤직비디오가 토론토영화학교에서 열린 자체 영화제에서 뮤지비디오 부문 대상을 받았다. 인생경험과 교직생활에서 배웠던 교육, 그리고 업무 경험들이 학교생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늦게 시작했다는 마음이 항상 나를 나태해지지 않게 해주었다. 하지만 일을 할때 마음만 급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배웠기에 내가 생각하는 단계들은 시간이 지연되더라도 꼭 거쳐서 지나갔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무슨 모든 일에 감사해하는 사람같은데 그렇진 않다. 항상 예상치 못 한 일들은 발생하기 마련이고, 영어가 낯설 때에는 그러려니 받아들일 법한 일들을, 내가 해 볼 수 있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권리주장을 했다. 실제적인 영화기술과 영감을 받으러 학교휴직을 하고,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영화학교까지 갔는데 비자 문제로, 내가 온라인 학생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학교측에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해서 캠퍼스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조치했다. 캐나다에 올 때에도 연말 휴일기간이 겹쳐 비자가 발급이 안되어 애를 동동 굴렸었는데 캐나다 대사관에 적극적으로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서 출국 하루 전에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영화학교에서 단편영화 제작을 할려면 교수님들을 대상으로 만들려고 하는 단편영화 프로젝트를 피칭하고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장비지원과 보험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나도 당연히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피칭했지만 야외촬영으로 인해 안전이 염려가 되고, 배우들의 숫자가 많고, 스케줄이 늘어져서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승인을 받지 못 했다. 물론 승인을 받지 못 한다고 할지라도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한국에서 온 초등학교 교사출신의 연출가와 함께 일할려고 하는 영화학교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호의적인 교수님을 찾아가 다시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고, 다른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팀을 재조직해서 다시 피칭을 했다. 실내촬영이었고, 안전했고, 배우들의 숫자는 많지만 공간이동이 없었고, 내가 살고있는 곳에서 촬영하기때문에 촬영장소 변수를 줄였다고 어필했다. 그리고 내 프로젝트는 승인이 되었고, 난 감독으로서 단편영화를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

졸업생 대표 축사를 내가 했는데, 그것도 내가 적극적으로 어필했던 결과였다. 학교에서는 졸업생 대표축사를 공모했고, 내가 응모했고, 교수진 검토 후 내가 선정되었다. 내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하되, 자칫 과잉 감정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썼다. 그리고 나와 같은 국제학생들이 겪을 일들을 숨기지 않고, 과감히 표현했다.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캐나다는 캐나다였고, 토론토는 토론토였다. 역시 다양성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내 스피치는 한번에 통과되었고, 내 개인적인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들에 울림을 줄 수 있었다. 이런 날이 나에게 오다니 참 신기하고, 내 인생이 고마웠다. 인생의 쓴 날들은 내가 그것을 다시 제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면 나에게 힘이 되기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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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도에 단편영화 'One Shot'촬영하는 도중 촬영감독 'Sam'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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