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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은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게 좋고, 시간이 걸린다.

by 김아솔


한국에서 인정을 받는 과정을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딱히 인정을 받아야 할 상황이 없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을 돌이켜본다면 학급 내 선한 행동으로 교사에게 받거나, 아니면 시험성적을 잘 받아서 가족, 친구, 교사에게 받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캐나다에서는 인정을 받는 부분을 생각해야 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도 내 배경과 출신에 크게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영화제작과 연결되는 부분은 크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꽤 단순하고 순진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2017년도에 학교를 다녔고 그 후로도 영상 작업을 했으니 나름의 포트폴리오가 있어서 어린 영화학교 학생들 현장에는 쉽게 주요 역할을 맡아서 참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만나는 영화 학교 학생마다 혹은 학교 밖 영화, 영상 제작진들에게 내가 한국에서 했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다녔다. 그런데 생각보다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내 포트폴리오가 여기서 안 먹히는 건가? 내 의사소통능력이 부족한가? 내가 있던 도시에서 내가 만든 정도의 포트폴리오면 다 좋아했는데... 아 교사들 사이에서, 다시 말하면 동호회 수준에서 내 영상들을 좋아했던 건가? 나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그렇게 질문을 하면서도 계속 만나는 영화학교 학생들마다 내 포트폴리오를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의 주요 역할에 대한 제안은 어느 누구에게도 오지 않았다. 유학생들이 좀 뭔가 하려다가 안 되면 느끼는 느낌적인 느낌. 이거 인종 차별인가, 아니면 문화 차이인가, 내가 많이 부족한가 하는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요소가 진짜 이유라 한들 내게 힘을 주는 요소는 없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학교에 일찍 가고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주변 학생들 중에서 도움이 필요로 하는 친구들이 있는지 모색했다. 나를 잘 모르는 학교 학생들에게는 연락이 거의 오지 않았지만 내 주변의 학급 친구들에게서는 조금씩 연락이 오길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Production Assistant(줄여서 PA)라고 불리는 거의 모든 기본적인 일을 하는 프로덕션 막내 역할을 시작했다. 그리고 짬짬이 촬영현장을 영상으로 담아서 스케치 영상을 만들었다. 특히 나는 스케치 영상을 당일 촬영해서 다음날 보여줬다. 이건 예전 한국에서 작업을 많이 해서 그런지 손에 익은 작업이었다. 영화학교 학생들은 거의 모두 영화현장을 좋아한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피로한 작업이라 몸이 지치는 시간이 오는데 그때 스케치 영상을 보여주면 다들 그렇게 재밌어했다. 자신의 열정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재밌고 뿌듯한 게 또 있을까. 나는 내 작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어느 친구로부터 소개를 받아, 그 후에 다른 촬영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촬영 장면을 찍는 Behind The Scene Photographer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 작업에 관심 있는 친구들에게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그걸 좋아하는 친구들의 소개를 받아 조명을 담당하게 되고 그게 이어져서 촬영감독을 하게 되고 일들은 그렇게 이어졌다.

촬영현장은 항상 긴장이 많이 되었다. 영화학교 학생들의 촬영현장은 각 개개인의 실력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열정이 하늘을 찌르는 곳이다. 또한 북미의 긍정적이고 격려하는 문화는 이제 시작하는 학생들이라도 마음가짐만은 전문 프로 못지않은 학생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촬영 전날은 항상 설렘의 소풍이라기보다는 다음 날 공개 실기시험을 치르는 마음으로 참여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촬영현장을 무사히 치르면서 서로 안면을 트고 합을 맞춰갔다. 그렇게 주변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 느꼈던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감동시키려고 노력하고 그 사람들이 나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시간이 조금 걸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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