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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가 있어도 떠나지 못 하는 나.

by 김아솔

이건 좀 웃픈 이야기다. 토론토에 도착한 나는 감사하게도 예전 학교를 같이 다녔던 Dennis라는 친구 집에서 잠시 지냈다. 그리고 내가 지낼 집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야 혼자 살고 싶지만 토론토라는 대도시에서 작은 방 하나가 월세가 100만 원이 넘기에 혼자 살 마음은 처음부터 내려놓았다. 다만 위치는 학교 근처로, 영어를 쓰는 외국인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하고 싶었다.

눈이 엄청 내리는 겨울 거리를 걷고 걸어서 찾은 곳은 토론토 중심가에 있는 재래시장과 토론토대학교라는 큰 대학교 근처의 20년도 더 되어 보이는 주택이었다. 룸메이트는 토론토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 광고배우였다. 뭔가 같이 해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냅다 살겠다고 했다.

내가 지내는 방은 총 3층(지하 포함 4층) 크기에 좁은 계단을 오르면 2층 한쪽 구석에 세 평 정도 되는 고시원 크기에 창문은 세 개나 있는 방이었다. 하지만 오래되어서 바람이 정말 많이 들어왔다. 겨울에 라디에이터가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오고 싶었던 곳이었고 학교도 자전거를 타면 15분 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룸메이트는 배우를 하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였기 때문에 서로 잘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집이 오래되긴 했지만 집안 분위기는 좋았다. 그렇게 나는 2월부터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 어느 날 일이 일어났다. 토론토가 뉴욕과 가까워 벼르고 벼르다 짧은 학교 방학이 오자 뉴욕을 다녀왔었다. 그리고 방에서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눈을 떠 보니 내 눈앞에 작은 벌레가 하나 있었다. 모기처럼 손으로 잡기에는 조금 약해 보였다. 그래서 냅킨을 찾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냅킨을 잡고 고개를 돌리니 벌레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근처에 음식을 파는 재래시장이 있고, 오래된 주택가들이 많았다. 처음엔 놀랐지만 종종 길거리에서 쥐를 보기도 했다. 독특하게도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주택 주변에 큰 나무들도 많고 대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꽤 큰 동물들도 함께 살고 있었다. 길 가다가 다람쥐와 라쿤이 나무 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서 나는 그럴 때마다 내가 외국에 있다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침대 시트 위에서 본 벌레도 바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벌레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이를 닦으려고 하는데 거울에 뭔가 보였다.

'이게 뭐지?'

살짝 간지러워 아무 생각 없이 나도 모르게 긁었던 오른쪽 어깨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순간 불안함이 급습했다. 나는 바로 방으로 뛰어가 그 벌레를 찾아보았다. 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노트북을 켜서 바로 확인해보았다. 'Bug on the bed'라고 검색하니 첫 화면에 바로 그 벌레 이미지가 나왔다. 그것은 영어로는 Bed bug라고 불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빈대라고 불리는 벌레였다. 처음에는 얼른 검색해서 벌레를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검색을 할수록 이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밤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빈대가 나와서 뉴스의 보도가 되기도 하지만 토론토에는 이런 경우가 빈번하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 빈대가 출몰하면 그 빈대를 박멸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한다. 집 관리는 룸메이트에게 불편한 말을 해야 했고 소독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나 스스로 방을 수습해야 했다. 모든 물건을 비닐에 싸고 모든 옷을 빨고 그것을 건조기에 돌렸다. 많은 옷들이 상했다. 그리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말을 못 했다. 왜냐하면 빈대는 전염성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옷이나 물품에 쉽게 들러붙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벌레들이 똑똑한 게 바로 출몰하는 게 아니고 번식을 충분히 할 때까지 본인을 숨길 줄 아는 벌레이다. 그리고 토론토에 많은 곳에 빈대가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빈대에 대해서 편안하게 말하지 않았다. 모두 다 혐오하고 피하려고 하는 벌레였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갈 때마다 내 몸에 어떤 흔적이 있지 않은지 2번 3번 살펴보고 학교에 갔다. 친한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와서 영화를 보자고 할 때도 나는 집안 청소해야 해서 바쁘다고만 하고 거절해야만 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말하고 싶다. 나도 같이 놀고 싶었는데 빈대가 너희들한테 옮기길 원치 않았다고. 어떤 친구들은 빈대가 있으면 다른 곳에 가면 되지 않냐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조건의 방을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고 이미 출혈이 심한 렌트비에서 더 올려가면서 방을 옮길 여력이 되지 않았다.

빈대를 찾고 박멸하기까지는 약 한 달 정도 걸렸다. 그 과정에서 가구를 옮기고, 옷을 빨래하고 건조하고, 물건들을 비닐에 밀봉하는 등 많은 불편한 일들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견디지 못했던 내 옆방 여자 룸메이트는 더 높은 렌트비를 물어가면서까지 그 집을 떠났다.

문뜩 그때 한국에서 살았던 내 집이 생각났다. 벌레 하나 없는 넓은 거실, 방. 그렇게 좋은 거처를 놔두고 나는 여기에 왜 있는 것일까? 우린 무엇가를 희생해야 할 때 하고자 하는 일 혹은 하는 일에 대한 이유가 명확해 지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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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이 세개나 있었지만 아주아주 조그마 했던 내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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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전 모든 짐들을 까만 비닐봉투에 넣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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