튈를리 정원의 분수는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로 솟았다. 그래도 결국은 분수대로 떨어져야 했다. 시지프스의 가혹한 형벌처럼 포기를 모르고 하늘로 솟았다. 언젠가 하늘에 닿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물보라가 되어 사라졌다. 닿을 수 없는 곳에 닿고자 거스르며 보낸 시간들도 함께 물보라가 되며 사라졌다. 햇살이 눈부셔서 속상했다.
나는 소피카를 따라 정원 옆으로 보이는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모네의 수련의 방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소피카는 아무 말이 없었기에 수련의 방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그건 마치 나를 위한 배려 같았다. 나는 수련의 방에 앉아 여전히 닿을 수 없던 그 아이를 생각했다. 그 방은 마치 그 아이와의 기억을 더 단단하게 보관하기 위한 목적의 공간 같았다. 나는 그 아이와의 기억을 수련의 밑바닥 진흙아래로 묻어버렸다.
오랑주리 미술관을 끝으로 소피카와 함께한 시간이 끝이 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소피카의 연락처를 물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파리를 떠날 때 파리의 어떤 것을 가져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마 나는 파리에 무언가를 가지러 온 것이 아니라 파리에 소중한 것을 두고 오길 바랐다. 소피카와의 기억도 이곳에 두고 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헤어지기 전에 너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소피카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은 이미 오후 7시에 가까웠지만 파리의 여름은 눈치도 없이 당최 해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낮처럼 밝은 햇살아래서는 자연스럽게 헤어질 명분이 없었다.
“그래. 파리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야.”
우리는 다시 튈를리 정원을 지나 루브르 박물관을 통과하며 걸었다. 나의 서류상 파리방문 목적이었던 루브르 박물관은 들어가 보지 않아도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컸었다. 파리를 떠나기 전에는 꼭 다시 와야 할 곳이었다.
“넌 루브르에 언제 다시 올 거야?”
“음... 아마도 내일? 파리를 떠나기 전에는 꼭 가봐야 할 테니까.”
“왜 꼭 가봐야 하는 거지?”
나는 차마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루브르라는 이름은 왜라는 의문이 필요 없을 만큼 권위적인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소피카는 말했다.
“루브르에 가면 층을 이동하는 계단을 잘 봐.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야. 나는 그 계단에 ‘escaliers hamac’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어. 왜냐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루브르 박물관의 대리석 계단을 오르내려서 가운데 부분이 마치 해먹 모양처럼 닳아 버렸어. 상상이 되지 않지? 루브르 박물관은 그런 곳이야.”
계단이 닳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 그곳이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우리는 어느덧 센강을 따라 우리가 처음 만났던 퐁네프 다리로 돌아왔다. 소피카는 재밌다는 듯 우리가 처음 만난 그곳에 서서 저 멀리 에펠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돌아 나를 보았다. 나는 소피카를 바라보며 웃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다. 어디선가 계절에 맞지 않은 라일락 꽃향기가 코끝을 스쳐갔다. 마치 웃음이 개화하며 풍기는 향기처럼 느껴졌다. 소피카는 나를 퐁네프 다리 중간의 시테섬에 있는 베트남식당에 데려갔다. 소피아는 나를 보며 자기는 아시아 음식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쌀국수를 처음 먹어보았다. 하지만 더 얘기를 하지 않았다. 걸어오면서 소피카는 한국인은 한국어를 쓰는데 다른 아시아 사람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냐고 물었었다. 소피카는 아시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건 분명했다. 내가 소피카의 나라인 조지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뜨거운 쌀국수 국물이 나의 몸을 뜨겁게 만들었지만 코 끝에서 스치는 라일락 꽃향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꽃을 피울 수 있다면 그때가 지금이 아닐까 생각했다. 꽃은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 시작을 소피카와 함께하고 있어 즐거웠다. 그저 이 시간에 감사할 뿐이었다. 소피카는 나의 식사까지 계산하였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눈치챈 소피카는 해맑게 말했다.
“다음에 만나면 친구가 계산하면 되잖아. 어때? 마음이 편해?”
식당을 나왔을 때 정말 이별의 시간이 왔음을 알았다. 어떻게 헤어지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이별일까 생각에 닿기도 전에 코끝에서는 라일락 꽃향기가 아닌 무언가 불에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퐁네프 다리를 무서운 속도로 경찰과 소방관차량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노트르담 성당 쪽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뭔가 큰일이 생긴 것 같았다. 우리는 연기가 보이는 곳을 향해 함께 걸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에 타고 있었다.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으며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사람들은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붉은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슬픔과는 달랐다. 경외감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다 펑하는 몇 차례의 소리가 들렸다. 옆에 있던 소피카가 나의 손을 잡았다. 소피카의 손은 두려움의 온도만큼 차가웠다. 나는 소피카와 손을 잡은 채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다 정말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굉음이 들리며 엄청난 화기가 얼굴에 닿았다. 시테섬 쪽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우리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우리도 정신을 차렸다. 소피카가 손을 놓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를 떠나야 할 것 같아. 친구. 또 만나.”
나를 바라보는 소피카의 눈에는 너무나 긴 문장들이 채 입을 통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뛰어나오는 사람들과 함께 달렸다. 소피카는 북쪽으로, 그리고 나는 남쪽으로 뛰었다. 각자의 숙소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2분도 지나지 않아 호텔에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가 얼마 되지 않는 짐을 부랴부랴 챙겨 다시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다시 퐁네프 다리로 돌아갔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광휘가 도시를 가득 채웠다. 다리 밖으로 뛰어나오는 사람과 다리에 서서 화재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시테섬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옆에서 한 남자가 알아듣지 못할 말로 불길을 바라보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퐁네프에 처음 도착했던 날 보았던 그 남자, 키스를 하고 있던 그 남자였다.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붉은 시테섬을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퐁네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수많은 소방차가 퐁네프 다리 위로 몰려들었고 사람들은 모두 퐁네프 다리에서 나가야 했다. 어리로 가야 할지 몰랐지만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핸드폰에서 비상 알림 메시지의 날카로운 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제히 울렸다. 그리고 외교부에서 테러발생으로 파리에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의 한국 귀국을 위한 비행 편을 긴급 증편하고 있으니 공항으로 오라고 알림이 왔다.
‘테러’, 화재가 아니라 테러였다. 불타는 시테섬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경찰들이 연행하는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보였다. 사이렌 소리는 더욱 커지고 장갑차들이 한 대씩 보이기 시작했다. 군인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진짜 총을 보았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다시 오르세미술관 쪽으로 뛰었다. 어떤 상황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사람들과 함께 뛰었다. 하지만 어느 곳이 안전한 곳인지 알 수 없었다. 저 멀리 오랑주리미술관 너머 콩코드 광장 쪽에서 붉은 불기둥이 쏟아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센강을 따라 뛰어가던 사람들은 일제히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도 그들을 따라갈 뿐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백화점과 상점이 가득한 번화가에 다다랐다. 핸드폰을 켜서 택시를 호출하려 했지만 접속이 되지 않았다. 택시 호출앱을 계속 새로 켜고 있는 나를 보던 나에게 한 부부가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그들은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고 조금 있으면 차가 올 거라고 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이라면 태워주겠다고 했다. 나는 한국인 부부와 함께 호텔에서 보내준 차량을 함께 타고 공항으로 갔다. 그리고 공항으로 가는 차에서 부부의 대화를 통해 테러에 대해 듣게 되었다. 시리아 난민 2세대 프랑스인들의 테러라고 했다. 그들이 어떤 불평등이나 불합리한 상황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핸드폰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파리 7구를 벗어나자 신호가 잡혔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한국인 부부와 함께 공항으로 가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놀랄 만큼 냉정하게 공항에 우선 가있으라고 말했다. 파리는 위험하니 빨리 돌아오라는 엄마의 말에서 나는 들어버렸다. 차분하게 말하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비음이 섞여 있었다. 엄마는 분명 울고 있었다. 눈물샘의 위치를 알 수 있을 만큼 갑작스럽게 눈물이 쏟아졌다. 입으로 겨우 호흡하며 나는 울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옆에 앉아있던 한국인 아주머니가 흐느낌을 가까스로 참아내고 있는 나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 것 같았다. 아주머니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 체온은 마치 휴대폰 너머 엄마의 손 같이 느껴졌다. 통화가 끝났지만 아주머니는 나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체온이 발끝까지 전해지며 나는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자동차는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차들이 공항으로 몰렸던 건지 차가 많이 밀렸던 건지 꽤나 오래 잠들었던 것 같다. 방금 전까지 테러의 현장에 있었다는 게 꿈같았다. 나는 너무나 달콤하고 포근한 잠을 잤다. 하지만 공항에 몰려든 너무 많은 사람들과 소음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한국인 부부는 내가 비행기 티켓을 발권하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부부의 비행 편은 몇 시간 후 출발하였고, 나의 비행 편은 내일 저녁 출발이었다. 아주머니는 혼자 공항에 잘 있을 수 있을지 걱정하였다. 공항 직원에게 어린 남자아이가 내일까지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여러 곳에 물어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샤를드골 공항은 아수라장이었다.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은 앉을 곳을 찾지도 못하고 바닥에 앉아 있거나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다리를 베고 바닥에 잠들어 있기도 했다. 아주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다녔다. 상점에서 뭔가 먹을 것을 사주려고 했지만 감당할 수 없이 몰려든 사람으로 공항의 모든 상점에서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다. 비행시간이 다가오자 아주머니는 캐리어에서 쿠키들을 꺼내어 나에게 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나의 백팩을 열어 너무 많은 쿠키들을 넣고 가방을 닫았다. 화장실에 갈 때는 가방을 앞으로 메고 갔다 오라는 것부터 해서 많은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결국 나와 같은 비행 편을 타는 한국인이 대기하고 있는 곳을 찾아가서 나를 부탁하였다. 아주머니는 마지막까지 나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핸드폰에 자기의 번호를 알려주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바로 전화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부는 급하게 탑승을 위해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