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t Neuf

by 구찬우

달력에는 날짜가 가득하지만, 그 아이와 나누었던 사소한 얘기들은 그 숫자만큼 의미로 가득했었다. 내가 조금 더 대화를 유려하게 했다면 우리는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겠지? 그랬다면 아마 그 아이에게 나는 조금 더 의미가 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만약 그랬다면 우린 어땠을까?





나는 매일 아침마다 퐁네프다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두 남자가 키스를 하던 그곳에 서서 에펠탑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안개가 짙어 에펠탑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매일 이곳에서 에펠탑을 보지 않았다면 그곳에 에펠탑이 있다는 걸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먼 에펠탑을 보고 있을 때 내 옆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걸 알았다. 이곳에선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그 아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와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시선이 길어지자 나도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흐린 날씨였지만 그 아이는 실제 하지 않는 사람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수은의 빛깔 같았다. 보는 방향과 빛의 흐름에 따라 제멋대로 색을 내고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고, 아이인지 어른인지 알 수 없는 특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통역앱으로 나에게 불어로 말했다. 알아들을 수 없었던 나는 이어폰을 끼고 통역앱을 열었다.


“뭘 보고 있는 거야?”


번역어는 불어, 감지어는 조지아어로 통역앱에 표기되어 있었다.


“에펠탑을 보고 있었어.”


“에펠탑이 어디 있어?”


나는 에펠탑이 있을 방향으로 손을 가리켰다.


“오늘은 보이지 않아.”


“그런데 왜 보고 있는 거야?”


수은의 빛깔 같았던 아이는 큰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걸 보고 있었어.”


아이는 석류 같은 웃음을 지었다.


“너 엄청 재미있어.”


처음 받아보는 재미있다는 평가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나의 말이 조지아어로 잘못 번역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랬다고 해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아이도 보이지 않는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가 계속 나의 옆에 서있어서 먼저 자리를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만큼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았다.


“좋은 하루가 되길 바래.”


길어지는 침묵의 시간이 한계에 다다르자 나는 헤어짐의 말을 해버렸다.


“나에게서 도망치는 건가? 잘 가, 친구.”


아이의 표정은 해맑았다. 아마도 ‘도망치다’라는 표현이 한국어의 뉘앙스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아이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우리는 가벼운 손인사를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그 자리를 떠난 건 나였으니 그 아이는 계속 그곳에 서있었을지도 몰랐다. 친구라 말이 조지아에서는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알지는 못했지만 한국에서와는 다를 것 같았다. 잠깐 만난 나에게 친구라고 해준 그 아이의 말이 좋았다. 진짜 친구는 아니겠지만 나에게 친구라고 처음 불러준 아이가 고마웠다. 나는 매일 점심을 먹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파리에 도착한 후 매일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첫날 메뉴판 제일 위에 있던 오리가슴살 스테이크가 입에 맞았다. 그래서 다음날은 그 아래 메뉴, 그다음 날은 그 아래 메뉴 이렇게 매일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오늘은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루브르박물관에 가려고 했다. 서류상의 나의 목적지, 논리적이지 못한 거부감이 코앞의 루브르박물관을 가야 할 일정을 하루하루 미루고 있었다. 센강을 따라 걷다 다시 뒤돌아 퐁네프다리로 갔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 자리에 그 아이가 그대로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앙리 4세 기마상을 지나 그 아이를 만났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쉬움이라는 감정으로 그 자리를 다시 찾아야 했다면 차라리 헤어지기 전에 그 아이와의 대화를 더 이어갔어야 했다. 다시 에펠탑을 보았다. 어느새 날씨는 다시 맑아져 에펠탑이 잘 보였다. 인기척에 옆을 보니 그 아이였다. 그 아이는 나에게 이어폰을 끼라는 제스처를 했다. 나는 서둘러 이어폰을 끼고 통역앱을 켰다.


“정말이네, 여기서도 에펠탑이 보이긴 하네.”


이 아이는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이곳에 다시 나타난 걸까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 다시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걸까? 설마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아무 말도 이어나가지 못하는 나에게 말했다.


“오늘 뭐 해?”


아이는 마치 친구와의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말했다.


“난 루브르박물관으로 가는 길이었어.”


“아, 그래? 난 벌써 갔는데. 오르세 미술관에 같이 가보는 건 어때?”


아이는 나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의 관계는 많은 단계가 생략되어 있었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 아이의 제의를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 그러자.”


“정말? 그래도 돼? 난 소피카라고해. 네 이름은 뭐야?”


“반태오. 근데 오르세 미술관은 어디 있어?”


아이는 손가락으로 멀리 보이는 어떤 건물을 가리키는 듯했지만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임에는 분명했다. 우리는 오르세 미술관으로 걸어가며 서로를 알아갔다. 소피카도 조지아에서 혼자 여행을 왔고 루브르가에 있는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소피카는 조지아에서 파리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파리에 올 수 있다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소피카는 내가 서울에서 출발하여 파리까지 기차를 타고 온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3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우리는 예약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워크인 대기줄에 섰다.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이었데.”


소피카는 나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밖에서는 여기가 기차역이었다는 게 상상이 안 가네.”


우리는 오르세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니 여기가 한때는 기차역이었다는 걸 가늠할 수 있었다.


“미술관은 사실 처음이야.”


나는 소피카의 미술관 관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소피카는 오르세미술관에 두 번째 온 거라고 했고 어릴 적에 와서 기억에는 없다고 했다. 우리는 말없이 미술관을 걸었다. 내가 가는 길을 소피카가 따라오는 건지 내가 소피카를 따라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발길을 예민하게 맞춰가고 있었다. 인류가 남긴 성스러운 유산을 보고 있었다.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가끔 만날 때면 그때서야 캡션을 확인하였다. 1층의 그림들을 말없이 보고 있다가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이라는 작품 앞에 서게 되었다. 당황스러운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동요 없는 눈빛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나의 동선은 누가 봐도 소스라치며 피하는 동작이었다. 소피카는 나를 보며 깔깔 웃었다.


“다시 봐. 왜 저 그림이 이 미술관에 있어야 하는지.”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만 소스라치며 놀란 건가 싶어 부끄러웠다. 그들이 보고 있는 세상의 근원을 함께 바라보았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내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모르겠어. 왜 이 그림이 이 미술관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


나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나도 몰라. 언젠가 나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마. 그럴수록 오해가 생겨. 단지 기억해. 네가 이 그림을 봤던 오늘을 기억해. 언젠가 이해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면 돼.”


언젠가 내가 <생명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그림을 본 사람을 놀라게 할 의도가 있었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3층으로 올라갔다. 책에서 봐왔던 그림들이 많았다. 오르세 미술관 한 곳에서 서양미술사에 언급되는 상당수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너네 형 초상화를 보니 어때?”


소피카의 엉뚱한 말에 통역앱 오류가 아닌가 생각했다. 소피카는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 앞에서 나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소피카는 말했다.


“Vincent van Gogh의 동생이 Theo van Gogh잖아.”


“아, 그래? 동생도 유명한 사람이야?”


“글쎄. 화상이라고 알고 있는데 형과 주고받았던 편지나 아니, 빈센트의 동생이라 다들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화상이 뭐지?”


“Art Dealer.”


“아.”




3층 창가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창 밖으로 에펠탑이 보였다. 퐁네프에서 볼 때 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다. 너무 많이 걸어서였을까? 다리가 아파왔다. 적당한 곳에서 앉아 쉬고 싶었지만 소피카의 시선은 바빴다. 언젠가부터 그림에 시선을 두지 못하는 나를 알아챈 소피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이제 나갈래?”


“그래도 돼?”


“응, 충분히 본 거 같은데?”


“2층은 아직 안 갔지 않아?”


“다음에 오면 되지 뭐.”


“아, 오르세 미술관에 또 오려고?”


“모르지, 언젠가 다시 오게 되지 않을까?”


“아, 그렇구나. 그래도 왔으니까 다 보고 가는 게 좋지 않아?”


“다 본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어려운 질문이네...”


“아마 너도 앞으로 다시 오르세 미술관을 찾아올 날이 있을 거야. 그때를 위해 조금 남겨두고 가자.”


궤변 같은 말이었지만 많이 피곤했던 나도 바라던 바였다. 우리는 1층으로 내려가 오르세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무척 다리가 아파왔지만 소피카에서 먼저 쉬고 싶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딱히 앉을 곳을 찾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넌 이제 뭐 할 거야?”


“아마 호텔로 돌아가 쉬겠지?”


“너 피곤하구나?”


“응.”


“난 오늘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야. 내일 아침에 떠나야 해.”


“아, 그렇구나. 넌 뭘 할 건데?”


“난 너와 더 같이 있고 싶어.”


“아, 그래. 나도 괜찮아. 뭘 하고 싶은데?”


“우선은 좀 쉬고 싶은데 저기 가서 쉬는 게 어때?”


소피카는 센강 너머 나무가 우거진 곳을 향해 손을 가리켰다.


“그래. 가자.”


우리는 튈를리 정원까지 걸었다. 뜨거운 태양아래 분수대에서 물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분수대 주위의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빈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분수를 보고 있었다. 먼저 말을 시작한 건 소피카였다.


“넌 파리를 언제 떠나?”


“일주일 뒤에 떠나.”


“그렇구나. 남은 시간 동안 뭘 할 거야?”


“사실, 잘 모르겠어. 여행 자체가 목적이었지 파리에서 뭘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


“여행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지금의 시간도 괜찮은 걸까?”


“응. 괜찮아. 아니, 좋아. 나 혼자였다면 이곳을 찾아와 이렇게 분수를 바라보고 있진 못했을 테니까.”


“그래. 난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을 뭘 해야 할까 생각했지만 계획은 없었어. 그러다 널 만났어. 설명하긴 힘들지만 오늘을 너와 함께 보낼 것 같았어. 그냥... 느낌이 그랬어.”


“그래. 고마워.”


우리는 아무 말없이 멍하니 햇살을 맞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소피카는 수은처럼 빛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아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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