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스크바에서 또 한 번 열차를 환승하고 파리를 향해가고 있었다.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선 온통 창춘의 생각 밖에 없었다. 나의 첫 여행이라 그랬을까?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어떤 다양한 자극도 처음보다 강하진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 처음으로 떠난 여행 모두 다른 누군가나 어떤 곳도 대체할 수 없을지 모른다. 도망치듯 떠나려 했던 그 사람, 그리고 너무나 짧은 체류시간의 첫 여행은 어쩌면 슬프게도 닮아 있었다.
열차는 4인이 한 방을 이용했는데 나의 자리는 2층 침대자리였다. 맞은편은 프랑스인 연인의 자리였는데 1층 침대에 앉아 쉬지 않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 혼자 2층침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휴대폰을 켜서 음악 스트리밍 앱을 열었다. 도이가 듣고 있는 음악이 어떤 음악일까 궁금해서 들어보려고 가입했던 서비스였다. 정확하게는 도이가 듣던 음악이 아니라 윤우가 듣던 음악일 것이다. 앱을 열자 제일 처음으로 <Liam Gallagher의 All You’re Dreaming Of>가 재생되었다. 프랑스 연인들의 대화소리를 듣고 있을 바엔 이 노래를 듣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이라는 건 너무나 토테미즘 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행위이다. 인간은 음률을 만들고 거기에다가 노랫말을 붙여 노래하였다. 그것은 너무나 비실용적인 언어의 형태이다. 하지만 이 폐쇄된 공간과 강한 감압 장치의 영향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 언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노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고등의 대화 같이 느껴졌다. 손가락 끝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이 노래에 압도당했다. 이것이 사춘기인가 생각했다. 창춘에서의 몇 시간이 나를 성장시켰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분명 변해 있었다. 무척이나 비실용적으로 역진화 하는 이 과정이 나를 어떻게 변하게 할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단지 이 노래가 좋았다.
나는 반복해서 이 노래만 들었다. 도이의 섬유유연제 향기를 호흡처럼 마셨던 그런 행위보다는 적어도 더 고등의 대화를 나는 하고 있었다. 몇 번의 반복재생이 되고 있을 때 나는 잠에 들고 말았다.
꿈속의 그곳은 교실이었다. 나의 옆엔 도이가 있었다. 그리고 주변의 아이들은 얼굴의 형태가 없는 유령처럼 투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변하고 공간은 좌표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엔 도이와 나 둘만 책상에 앉은 채 남게 되었다. 이 공간에는 <All You’re Dreaming Of>만 재생되고 있었다.
“왜 넌 나를 좋아하니?”
도이는 아무것도 없는 앞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꿈속이라 그랬을까?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면 너는 왜 윤우를 좋아하니?”
도이는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말했다.
“윤우는 내가 어렸을 때 이 동네에 살았을 때 알게 되었어. 물론 윤우는 나를 기억하고 있진 않겠지만 말이야. 놀이터에서 혼자 있던 나에게 윤우는 새 자전거를 타고 나에게 나타났지. 그리고 윤우는 나에게 이 자전거를 타보겠냐고 물었어. 나는 자전거를 타는 법을 몰랐어. 윤우는 나에게 자전거를 태워주겠다고 했어. 왜 그랬을까?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윤우의 뒷자리에 탔어. 윤우는 나에게 자기를 꽉 잡으라고 했어. 겁이 났던 나는 윤우를 뒤에서 왈칵 안아버렸지. 윤우는 나를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주었지. 금세 나는 무섭지 않았어. 윤우의 등은 무척이나 따뜻했지. 나는 윤우의 등에 얼굴을 돌려 대고 뒤에서 그를 안고 있었어. 윤우가 페달을 돌리고 조향을 할 때마다 등의 근육들이 움직이며 나의 뺨을 간질였어.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어디로든 가고 싶었어. 그게 전부야. 그러면 이제 네가 말할 차례야.”
“글쎄...”
“아니, 글쎄라는 말은 안 돼. 좀 더 너에게 솔직해봐. 대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도이는 나를 나무라듯 말했다.
“네 살이었을 때 너를 처음 보았어.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으니까. 그날을 날씨가 좋았어. 햇살이 따뜻했어. 너는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어. 너의 머리칼은 햇살에 갈색으로 물들었고 바람에 흩날렸어. 너의 얼굴은 지나치게 하얗고 깨끗했어. 너는 나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예쁜 미소로 엄마를 바라보았어. 그리고 너의 엄마도 너를 사랑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어. 그때부터였을 거야.”
“겨우 그런 걸로?”
도이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에게는 네가 윤우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별다르지 않은 거 같은데?”
“그런가?”
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면 말이야, 태오 너는 왜 그날의 나에게 감정이 생긴 거지?”
“우선은 너의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였을지도 몰라. 그리고 너를 바라보는 너의 엄마가 짓던 미소가 부러웠는지도 모르겠어.”
“더 모르겠네. 너네 엄마는 너에게 웃어주지 않니?”
“응”
나의 짧은 한마디에 도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너는 너의 결핍에서 나를 좋아하게 된 건가?”
도이는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너도 왜 윤우를 처음 만날 날이 윤우를 좋아하게 된 시작인지 좀 더 솔직해져 봐.”
나는 이 대화를 끝낼 마음이 없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도이의 마음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도이가 말했다.
“나도 결핍이 아니었을까? 어릴 때 나는 아빠와 함께한 추억이 전혀 없어. 아빠는 매일 바쁘셨어. 내가 일어났을 땐 집에 없으셨고 자기 전까지 집에 들어오신 적이 없었어. 나는 항상 아픈 엄마와 함께 있어야 했어. 그런데 윤우가 나타난 거야. 나를 태우고 어디로든 가줄 수 있을 거 같았는지도 몰라.”
결핍이라는 단어로 사랑을 설명한다는 건 슬픈 일이었지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태오. 이제 날 좋아하는 건 그만둬.”
“왜, 왜 그래야 하는데?”
꿈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우리를 이해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이의 말은 너무 큰 배신감을 주었다.
“내가 윤우를 향해 쓴 시간과 거리는 이제 돌아올 수 없을 만큼이야. 난 이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어.”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았던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었다. 내가 겨우 도이를 훔쳐보고 있었을 때 어떤 아이는 도이에게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나의 소극적이고 음침한 행동이 나의 모든 것을 부정당할 만큼 큰 이유였다.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 둘 다 사랑이라면 나를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될까?”
도이는 답답한 마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너에게 모든 걸 다 말할 순 없어. 하지만 그만둬. 그게 너에게 좋아. 그리고 이제 넌 너를 더 사랑해야 해. 넌 너를 사랑하지 않아. 이제 너를 더 사랑하며 살아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너에게 난 어떤 의미야?”
나는 도이에게 어쩌면 마지막 질문을 하고 있었다.
“나의 비밀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 내 비밀을 담아두는 용기.”
나의 마음은 조금도 배려해주지 않고 도이는 웃으며 말했다.
“태오. 내 비밀 잘 지켜라.”
도이는 이 말을 남기고 하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도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도이의 책상과 의자만이 남아 있었다. 꿈에서 조차 나를 바라보지 않던 나의 천사는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