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년 이후의 시기를 사람들은 AIM, The Age in Mist라 불렀다. 입법과 개헌이 부지불식간에 처리되어 있었고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고 강요받게 되었다. 2030년대가 AI의 시대였다면 2040년대는 생명공학의 시대이다. AI의 시대를 지나며 미국은 견제가 불가능한 패권국가로 성장하였지만 생명공학의 시대가 시작하며 원천기술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던 유럽의 국가들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2020년대부터 급속도로 추락한 국가 경쟁력을 회복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드디어 7월 10일이 되었다. 금요일이었지만 아빠와 엄마는 나를 서울역까지 배웅해 주었다.
“잘 다녀올게요. 걱정 마세요.”
“그래.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해. 널 믿는다.”
처음 보는 엄마의 표정이었다. 엄마는 나의 손을 놓지 않으셨다. 내가 파리에 가겠다고 했던 날 나의 여행을 바로 준비했던 엄마의 표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표정을 해석할 수 없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번갈아 안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인사를 하고 서울역 국제선 출입국 절차를 위해 들어갔다. 뒤돌아보면 아빠와 엄마가 그 자리에 서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차마 뒤돌아보지 못했다. 까닭 모를 눈물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지켜보고 있을까 싶어 눈물을 닦지도 못했다. 왼쪽 눈에서 흐르기 시작한 눈물이 채 입가에 닿기도 전에 오른쪽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은 뜨겁지는 않았지만 따뜻하다는 표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가슴속에 덮어두고 숨겨두었던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두 눈을 통해 나와 흐르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보이지 않는 모퉁이를 돌아서서 나는 눈물을 닦았다.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미 꽤나 흘러버렸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중력을 이길 만큼은 아니었을까 눈물은 결국 멈췄다. 기압변화로 먹먹해진 고막이 제자리를 찾은 듯 갑자기 주변의 소리가 커졌다. 주변의 사람들의 대화 소리, 발걸음 소리, 캐리어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걸어가는 사람들의 옷 원단이 스치며 내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잠깐이지만 초능력을 가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어깨가 아파왔다. 내 몸이 커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웃는 표정으로 바꾸고 출입국을 위해 걸어갔다.
처음 타는 국제선 열차는 국내선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파리까지의 여정은 일단 중국 창춘에서 8시간 레이오버하고, 모스크바에서 또 한 번 환승 후 파리로 갈 수 있었다. 13호차 19C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출발 후 장춘에 도착까지 지상구간이 없이 달리는데 왜 기차에 창문이 필요한지 의문이었다. 자리에 앉아 출발시간을 기다리니 사람들이 들어와 좌석을 채웠다.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국적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다양했다. 나는 들어오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저 사람은 왜 이 기차를 타는 걸까 생각하고 있었다. 늘 도이를 훔쳐봤던 내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에 나도 놀라게 되었다. 나의 건너편 쪽에는 한국인 부부가 탔고 나의 옆자리에는 중국인 젊은 여성이 탔다. 누가 봐도 일행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건너편에 앉은 한국인 부부가 나에게 혼자 가는 것인지 물었다. 순간 다양한 범죄에 연루되거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높은 가능성이 감지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말해버렸다. 더 이상 질문을 이어 나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여성분은 그저 ‘씩씩한 학생이시네요’라고 짧게 말해주며 밝게 웃어주었다. 그러곤 두 사람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내가 이 기차에 탄 사람들을 관찰했듯 그 사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그 여성분의 밝은 미소와 칭찬에 긴장이 풀렸다.
드디어 기차가 출발하고 점점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국내선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가속감 감압장치 때문에 묘한 느낌이 있었다. 1시간 30분이 지나 겨우 감압장치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기차는 창춘에 도착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을 벗어나 해외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기차에서 분주하게 사람들과 함께 내리니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붉은 간자체로 장춘(长春)이라고 적혀 있어 이곳이 중국임을 알게 해 주었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 역사로 나갔다.
공기의 맛이 달랐다. 그건 아마 내가 처음으로 외국에 도착하여 흥분한 감각들의 오류는 아닐 거라 생각되었다. 분명히 익숙하지 않은 냄새와 습도였다. 긴 봄이라는 낭만적인 도시의 이름과는 다르게 공기는 무겁고 달큰했다. 어느덧 따라 나왔던 사람들은 각자의 갈 곳으로 사라지고 수많은 인파 속에 나만 남겨졌다. 창춘에서의 체류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에 나도 서둘러 이동했다. 그리고 무겁고 달큰한 냄새의 출처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마시고 있는 뜨거운 두유와 미엔빠오의 냄새였다. 나에게도 이런 호기심과 적극적인 성향이 있었는지 놀랄 정도였다. 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가게에서 두유와 미엔빠오를 하나씩 샀다. 기름기 가득한 미엔빠오에서는 고소한 맛과 익숙하지 않은 맛이 함께 느껴졌다. 뜨거운 두유를 한 모금 마시자 미엔빠오의 익숙하지 않은 맛이 가려지며 달큰함을 채워 주웠다. 콩의 비린 맛이 전혀 없는 두유는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나는 허겁지겁 미엔빠오와 두유를 먹고 창춘역 밖으로 나가 자율주행 택시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창춘 위황궁이었다.
역사 밖으로 나와서 본 창춘은 여기가 중국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창문을 내렸더니 창춘의 여름 바람이 들어왔다. 창춘의 공기는 달큰했다. 어쩌면 첫 해외여행의 시작으로 흥분한 내 감정의 맛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택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위황궁에 도착하였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몇몇의 사람들을 따라 위황궁에 들어갔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지냈던 궁으로 황제가 새장에 갇혀 살았다고 알려진 곳으로 알고 있었다. 새장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컸다. 물론 성인이 되어 베이징 고궁을 보기 전까지는 왜 이곳을 새장으로 표현했는지 알지 못했다.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을 이곳저곳을 보았다. 위황궁을 나와서도 6시간 정도가 남았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나는 무작정 걸어 다녔다.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세상을 훔쳐보고 있었다. 윗옷을 입지도 않고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아저씨가 이상했다. 그러다 길거리에서 윗옷을 입지 않고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있던 곳에서는 너무나 이상한,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이 이곳에서는 일상적이었다.
목적지도 없이 한참을 걷고 또 걷던 나는 한국어 간판의 식당을 보게 되었다. 어차피 모스크바행 기차를 타기 전에 식사를 해야 했던 터라 망설이다 식당에 들어갔다. 혼자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은 처음이라 망설여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식사 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에 주방에서 아주머니가 고개를 밖으로 내어 처다 보았다. 식사할 거냐고 묻는 아주머니의 억양이 생경했다. 나를 보고 한국어로 말을 하는 건 내가 한국인처럼 보여서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식당에 오는 손님 대부분이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돌솥비빔밥은 평소에 즐겨 먹지는 않았지만 메뉴판 제일 위에 있는 메뉴였다. 아주머니에게 주문하려고 했지만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다. 나는 멀뚱멀뚱 주방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꽤나 지나서야 아주머니는 주방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겨우 나는 돌솥비빔밥을 주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꽤나 지나서야 아주머니는 돌솥비빔밥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뜨거우니께 조심하오.”
어색한 말투였다. 하지만 돌솥비빔밥은 어색한 말투와는 다르게 화려했다. 쌀알이 한 알 한 알 살아있고 다양한 채소와 고추장의 맛이 다각형을 이루었다. 온몸으로 온기가 퍼지며 정수리께 땀이 흘렀지만 흐르는 땀을 닦지도 않고 허겁지겁 먹었다.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나의 낯선 모습이 첫 여행 중이라 그랬을까 어색하진 않았다. 티셔츠가 젖을 만큼 땀이 흐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수리께 막혀있던 뚜껑이 열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흐느끼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내 몸속에 무리하게 숨겨둔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갑자기 이명이 들리며 찾아온 현기증은 내가 다른 평행세계로 옮겨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어째 그리 급하게 먹소. 며칠 굶었소?”
주방에서 나를 보고 있던 아주머니는 표정 없는 얼굴로 물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나는 꽤나 그럴싸하게 웃어 보였다. 분명히 그랬다. 나는 꽤나 그럴싸하게 웃었던 것 같았다. 내 의식이 내 안면 근육을 사용한 게 아니라 안면 근육이 의식 이전에 반응하였기 때문이었다.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분명 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창춘’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긴 봄이라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이곳에서 사춘기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