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소망하는 것을 내 손으로 꺼버려서였을까. 나는 그 이후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도이가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주었던 그 이전으로 돌아가버렸다. 나는 공허해질 때마다 눈앞에 그 스위치를 떠올렸다. 하지만 다시 켤 용기가 없었다. 아마 그건 패배감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애초에 성취라는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는 애써 진짜 나의 속내를 감추고 있는 걸까? 누군가를 정말 좋아했던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중학교 3학년 1학기는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1등의 자리를 조금도 누군가에게 양보할 마음은 없었다. 그게 미련이라고 하는 감정이라고 해도 '1'이라는 숫자마저 바뀌어 버린다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집착에서 벗어나자 오히려 도이와 더 가까워졌다. 가까워졌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종종 실답지 않은 얘기를 나눴다.
“오줌싸개, 요즘은 화장실 안 가네?”
“어? 내가?”
“응, 너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 가지 않았냐?”
“아, 그러네...”
난 더 이상 도이를 훔쳐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스위치를 꺼버린 이후로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갔다 오는척하며 그 아이를 훔쳐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난 그 아이를 종종 지켜보았다. 그 아이의 하얀 손은 오늘도 한 손으로 다른 손의 손톱 안쪽 하얀 부분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이상한 버릇이라 생각했지만 도이가 뭔가에 집중할 때마다 하는 버릇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뭔가 초조할 때마다 하는 버릇이었고 그때마다 도이는 윤우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직도 넌 내 앞의 이 아이만 바라보고 있구나’
그게 어떤 감정일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한 번에 꺼버린 그 스위치가 도이에게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도이가 부러웠다.
그렇게 3학년 1학기 마지막 날이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 방학이 시작되는 마지막 날의 아이들은 뭔가 분주했다. 나에게 언제나 등을 보이고 있는 윤우는 옆자리 노아와 몇 명의 아이들과 약속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도이와 함께 하지는 않았다.
‘도이도 윤우와 함께 있으면 좋을 텐데...’
도이는 나에게 방학 전 인사를 해주었다.
“방학 동안 많이 커서 돌아와라.”
내가 한 학기 동안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그동안 우리가 종종 이야기를 나눠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슬픈 스위치를 꺼버려서였을까? 도이는 방학을 맞이하는 나에게 처음으로 다른 인사를 했다.
“너도 방학 동안 많이 커서 돌아와.”
나는 도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분명히 웃으며 말했다. 아마 그건 내가 그 말에 진심을 담아 말했기 때문이었을 거 같았다.
‘내가 웃었구나...’
도이는 방학을 맞이하는 나에게 또 선물을 주고 떠났다.
나는 의식적으로 도이를 생각하지 않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그것이 도이에게서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담배를 끊었다는 것과 담배를 참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아마 그때의 나는 도이를 참고 있는 시기였을 테다.
도이를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맞이한 방학의 나는 지난 방학들과는 달랐다. 나는 공부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건방진 평가이긴 하겠지만 더 이상 대입을 위해 공부할 것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나는 처음으로 오롯이 나를 위한 방학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흥분되었다. 그동안 왜 나는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었지만 어쩌면 나는 누구보다 더 타인을 신경 쓰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방학의 시간을 어떻게 보낸다면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 될지 생각해 보았다. 그 흥분도 잠시 나는 다시금 막막해져 버렸다. 난 무얼 해야 하는 거지?
- 제2외국어?
- 여행?
- 악기 배우기?
- 프로그래밍 언어?
짧은 고민에서 나온 아이템들은 모두 부질없어 보였다. 과연 이런 것들이 나를 위한 것일까? 내가 진짜 원하고 있는 건가? 이 또한 타인을 신경 쓰고 고르게 된 타인의 선택들은 아닐까? 우선 나에게 시급한 것은 내가 누구이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선회하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곳에는 도이가 서있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급하게 눈앞에 큰 스위치를 떠올렸다. 내가 꺼버린 큰 스위치를 떠올리며 그곳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나를 채근했다.
‘나를 위한’이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닫고자 했던 지난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시간들은 어쩌면 나를 위한 시간들이었다. 그 아이에게 더 닫고자 내가 공부를 선택하였던 게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잘못된 선택이 잘못된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닫지 않았지만 성적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지금의 고민을 이야기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여러 명이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충분할 것 같았다. 보통 그런 존재를 친구라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모든 친구 관계가 그렇진 않을지라도 보통은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친구라는 단어 앞에 좌절하고 있었다. 나에게 친구라는 말은 감당할 수 없는 벽과 같은 존재였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나에겐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은 친구라는 존재를 갖고 싶었다. 그게 가능할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방학이 시작된 첫날 책상에 앉아 결국 나의 거창한 방학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충분한 공부를 더 이상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공부에 집착하게 된다면 그 아이에게 집착하고 있는 내 모습을 다시 보게 될 것 같았다. 잠들려고 누운 침대에서도 도이에게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가능한 아주 멀리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 마음이 바뀌기 전에 잠들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