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d of Evil

by 구찬우

개학이라는 성가신 일정이 꽤나 즐거웠다. 방학 동안의 나만의 노력과 시간이 어쩌면 나에게 이전과는 다른 생활을 선물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했었다. 등교를 하고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여름방학 전 누구도 관심이 없는 아이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딱히 아쉽거나 서럽지는 않았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인정하지 못할 만큼 나는 미련한 사람은 아니었다. 결국 내 이름이 그 아이에게 닿을 수 있도록 내가 선택한 유일한 방법인 공부에 더 집착하게 되었다.


그 아이를 훔쳐보는 습관마저도 버리고 나는 공부를 했다. 중학교 모든 과정을 다 외워버리는데도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때 중학교 첫 시험이 있었다. 조금은 두려워졌다. 내가 1등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등수는 의미가 없었다. 오직 그 하나를 위해 나는 몇 달의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혹여나 내가 잊은 것들이 있을까 시험 전에 다시 몇 번을 외웠다. 그리고 결과는 조금도 내 생각과는 다르지 않았다. 내가 1등이었다. 이제는 그 아이가 나를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줄 거라는 기대보다 내가 처음으로 이루어낸 결과에 나는 더 크게 기뻤다. 아이들은 서로 몇 등인지 물어보는 것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에게 내가 몇 등인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나의 소질을 확인했고 앞으로도 1등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오늘의 무슨 일을 부모님께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갔을 때 처음으로 그 적막함이 싫었다. 오늘의 무슨 일을 나는 누구에게도 아직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적막함이 싫어 티브이를 켰지만 내가 집중할 수 없는 영상들만 나왔고, 결국 티브이를 꺼버렸다.


좀처럼 앉지 않는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 속상해서 울어버렸다. 하지민 울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울었던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내 기억 속에는 내가 울었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이 처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늘 있었고 있어야 할 내 방 책상으로 가서 책을 폈다. 편집증처럼 책을 외우는 게 마음이 편했다. 나는 결국 부모님이 오셨을 때도 오늘의 무슨 일을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의 무슨 일이 나에게 변화를 주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개인의 학업성취도를 비공개로 하였다. 하지만 다음 날 수학 시간에 수학 선생님은 반태오가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손을 들었다.

“네가 전교 1등 반태오구나. 축하한다. 기억해 둘게.”


그때서야 아이들은 우리 중학교의 전교 1등이 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간 이후로 아이들은 나에게 간간히 말을 걸어왔다. 말이라고 해 봤자 ‘네가 1등이었어? 대단하네.’ 정도였지만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게 딱히 싫지는 않았다. 나는 그날부터 예전처럼 틈틈이 그 아이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그 아이와 나와의 거리를 잴 수 있다면 그래도 1㎝는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투명인간이 아니게 되었으며, 나를 부를 때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 정도만 해도 내가 방학 동안 이루어낸 성과치고는 상당한 보상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아이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것 인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모든 아이들이 내가 전교 1등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 아이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 아이는 나에게 ‘방학 잘 보내라’라고 얘기해 줬고 나는 그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교실에서 겨우 몇 미터가 되지 않는 그 아이와의 거리는 달려서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가끔 조별과제가 있을 때 나는 주위의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17명의 우리 반은 보통 4명씩 조를 만들어 과제를 했었는데 그 아이는 항상 자기 주위의 아이들과 조를 만들었고, 딱히 내가 그 조에 들어갈 묘안은 없었다. 그렇게 답답한 날에는 집에서 더 공부에 집착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공부밖에 없었다. 기말고사에서도 전교 1등을 하게 된다면 그 아이에게 내 존재가 더 가까이 닿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효과를 생각한다면 올바른 선택은 아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고 나는 결국 또 전교 1등을 해냈다. 이번 기말고사의 전교 1등으로 아이들은 점점 나의 이름대신 ‘1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별명이 생긴다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아이와의 거리는 조금도 좁히지 못했다. 그렇게 겨울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여름방학 전날처럼 그 아이와 마주쳤다.


“태오. 방학 잘 보내라.”


그 말만 남기고 그 아이는 친구들에게로 가버렸다. 이건 너무나 섭섭한 말이었다. 나는 겨우 그 말 한마디를 동력으로 여름방학을 치열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동안의 나의 노력과 바람에도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그 말을 다시 들어야 했다. 그동안의 나의 노력이 얼마나 무용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겨울방학이 끝나면서 우리는 2학년이 되었다. 그 아이와 다른 반이 되면서 나는 그 아이의 옆모습을 훔쳐볼 기회도 사라졌다. 쉬는 시간이면 가끔 그 아이의 반을 일부러 지나가면서 그 아이를 바라보곤 했었다. 그럴수록 내 안의 그 아이는 점점 더 커져갔다. 내 안에서 그 아이가 자랄수록 내 몸도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그렇게 자라난 나의 몸은 그저 그 아이의 존재를 키우고 보관하는 용기 없는 용기일 뿐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3학년이 되어 들어간 교실에서 그 아이를 제일 먼저 찾아보았다. 아직 몇 명 오지 않은 이 교실에 그 아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억누르고 교실 한가운데 앉았다. 딱히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어색한 시간이 딱히 힘들지는 않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재빨리 같은 반이 된 아이들을 탐색하고 삼삼오오 무리를 짓는 능력은 나에게 없었다.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을 적당한 곳에 시선을 두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조차 어색하게 느껴져 나는 결국 책을 읽기로 했다. 태블릿을 켜서 그동안 읽고 있었던 ‘나의 투쟁’을 마저 읽으려 했지만 혹시나 호기심 많은 치들이 뭘 보고 있냐 물었을 때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나마 아이들이 알만한 ‘체 게바라 평전’을 클릭하고 읽기 시작했다. 어색한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나에게 빠른 과몰입을 요구했고 바로 책 속에 빠져들 수 있었다. 어느새 교실은 새로운 아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제는 나도 조금은 어색한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나는 금세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다시 태블릿을 보아야 했다. 내 옆에 심도이 그 아이가 앉아 있었다. 나의 오른쪽에 앉은 그 아이는 내 앞의 아이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둘의 대화는 나에게 너무 잘 들렸지만 듣지 않고 있는 척하기 힘든 위치였다. 그래도 나는 집중할 수 없는 태블릿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업시간이 다가오자 분주하던 교실이 조용해져 갔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아이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건다는 건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적이 있었던가? 처음은 아니겠지만 딱히 언제가 처음이었는지 기억을 할 수는 없었다.


“오랜만이네.”


나는 어떤 말을 할지 고민도 하지 않고 말했다. 같은 반이 되어 처음 하는 인사치고는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 나는 널 알고 있어

- 한동안은 우리가 만난 적이 없었어

라는 의미를 전달하기에 충분한 말이었던 거 같았다. 다시 고민한다고 해도 더 적당한 인사말을 나는 선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난 너 자주 봤어.”


도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 그랬구나.”


나도 반사적으로 대답을 하고 다시 태블릿을 바라보았다. 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고개가 향해 있지 않은 사람을 계속 쳐다보고 있다는 건 충분히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에 나는 어쩔 수 없었다.

- 자주 보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 내가 자기를 훔쳐보고 있다는 걸 안다는 의미일까

- 나를 어디서 보았다는 걸까


남들에게는 큰 의미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옆 자리 아이와의 짧은 대화가 나에게는 유독 힘들고 처음이라고 해서 특별한 보상을 기대한다면 내가 어리석은 게 분명했다. 나는 테블릿을 보며 언제나 그랬든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습관적으로 짓고 있는 거짓 미소에서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어쩌면 이것은 남들이 짓는 진짜 미소의 맛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도이에게 말을 걸어볼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기자 나의 거짓 미소는 누가 보아도 진짜 미소로 보일 만큼 변해 버렸다.


그렇게 나에게 기대라는 씨앗이 심어졌다. 이 기대가 악마의 씨앗이라 내 영혼을 잠식할 만큼 자라나게 될지는 몰라도 나는 그 기대를 두려워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그 아이가 내 옆 자리에 앉은 일이 그동안의 무용한 노력의 성과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랜 간절함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중학교 3학년 첫날 수업은 금방 끝이 났다. 도이는 수업 전부터 얘기를 하던 내 앞에 앉아 있는 아이와 약속이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이런 날 삼삼오오 모여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상관 없었다. 내일 학교에 가면 또 도이의 옆에 앉게 될 거라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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