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대부분이 같은 초등학교에서 진학한 학우들이라 큰 변화를 느낄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겨우 초등학교와 붙어 있던 중학교로 진학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변해 있었다. 아이들은 잔뜩 화가 나 있었고 어떤 아이는 갑자기 키가 자랐었다. 높지 않은 담장으로 분리된 두 건물은 교문이 달랐다. 이렇게 아이들을 바꿔 놓은 게 학교의 위치 때문은 아닐 거 같고 교문의 위치 때문인가 생각했다. 우리는 그동안 대로변에 위치했던 초등학교를 좁은 도로를 따라 돌아서 막다른 골목 가장 끝에 위치한 중학교 교문으로 등교를 해야 했다. 그 길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중 몇몇은 갑자기 어른 흉내를 내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들이 철없고 하찮게 느껴졌다. 나는 어른 흉내를 내는 성가신 아이들 틈에서 친구도 없이 조용히 지냈다.
그렇게 이런 중학생 생활에 충분히 익숙해져 가던 이른 여름날이었다. 선생님은 우리 반의 전학생을 소개했다. 꽤나 짙어졌지만 갈색이 도는 머리칼, 긴 속눈썹과 반짝이는 눈, 하얀 뺨, 그 아이가 분명했다. 그동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몰라도 그때 그 아이가 자랐다면 분명 저런 모습이 되었다는 걸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자기 이름을 말했다.
‘심도이’
그때 그 아이가 맞았다. 그 아이는 교실의 제일 뒷자리 비어있는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힐끗 창가 제일 뒷자리에 앉은 그 아이를 훔쳐보았다.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 하나처럼 그 아이가 교실에 나타났다. 나는 그저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그 아이가 앉은 창가 쪽을 훔쳐보았다. 그건 내가 어렸을 때 그네에 앉아 그 아이를 훔쳐보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아이는 금세 여러 친구들과 대화하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내가 이 교실에서 몇 달간 하지 못했던 그런 장면이었다. 그런 모습에 묘한 질투를 느낄 때 나도 나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내가 이 교실의 아이들을 철없고 한심하다 생각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었던 건 아마도 그들과 어울릴 자신이 없었던 내가 선택한 방어기제 같은 것이었다. 냉정하게 내가 나를 평가하게 되니 차라리 편했다. 그저 나는 친구 한 명 없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그랬다. 나는 그런 아이였었다.
여름방학이 올 때까지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사실 어느 아이와도 이야기를 하고 지내지 않았던 내가 그 아이라고 해서 특별한 기회가 생길 가능성은 없었다. 그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그 아이를 틈틈이 훔쳐보는 것 밖에 없었다. 나는 그네에 앉아 그 아이를 훔쳐보았던 그때부터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
여름방학 전 마지막 등교일 수업은 빨리 마쳤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약속이 있어 보였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얼마나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지를 증명해 내는 것과 같았다. 오늘 같은 날의 약속은 그런 의미였다. 물론 나는 아무런 약속이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때 맞은편에서 도이가 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나에게 오는 게 아니란 건 나도 알고 있었다. 도이는 나를 지나치며 말했다.
“태오. 방학 잘 보내라.”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도이는 나를 지나쳐 다른 아이들에게로 갔다. 우리는 여태까지 단 한 번의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도이는 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네 살 때 그네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던 그날처럼 도이는 오늘도 나에게 먼저 말을 했다.
< 태오. 방학 잘 보내라 >
나는 이 말 한마디를 되뇌며 여름을 보냈다.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 버렸다. 네 살 때 나의 원죄였던 그 아이, 선악과도 같았던 그 아이의 일기장을 훔쳤던 그날. 그리고 불쑥 나타난 그 아이는 내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