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len Angel

by 구찬우

나는 폭탄을 가지고 학교로 가고 있었다. 그 폭탄은 도이와 나와의 관계를 한 번에 파괴할 수 있는 폭탄이었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 아직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생기지 않았지만 영원히 관계가 생길 수 없도록 할 수 있는 폭탄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너를 좋아했었고 너의 일기장을 훔친 적이 있어. 너의 긴 속눈썹, 갈색 머리칼 그리고 하얀 뺨을 기억하고 있어’

이 정도라면 충분한 폭발력이 있지 않을까? 조금도 들켜서는 안 되는 이 폭탄의 뇌관을 제거할 수는 없을까? 그럴 수는 없었다. 이 폭탄은 내가 안고 살아야 할 나의 원죄였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건 꽤나 성가신 일이었다. 가끔 그 아이를 힐끗 쳐다보면 그 아이는 금세 나의 시선을 눈치채고 나를 바라보았다. 몇 번의 어색한 눈 맞음이 있은 후 나는 그 아이를 훔쳐보는 습관마저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그 아이의 옷에서 나는 섬유유연제의 향기가 났다. 마치 그 향기가 그 아이의 호흡처럼 느껴질 때면 나는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된 걸 축복이자 보상이라 착각했다.


내가 그나마 훔쳐볼 수 있는 겨우의 각도에서 보이는 건 그 아이의 책상 정도였다. 그 아이의 손, 그리고 그 아이의 노트를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아이의 일기장을 기억하고 있다. 꾹꾹 한 글자씩 눌러썼던 필체는 꽤나 어른스럽게 바뀌어 있었고 그런 것조차 기특했다. 수업시간에는 그 아이를 훔쳐볼 수 없으니 쉬는 시간이 되면 괜히 일어나 화장실을 갔다 오거나 하며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의 바로 옆자리가 내 자리니 이런 나의 행동이 전혀 어색할 리 없었다. 그렇게 그 아이를 훔쳐보는 날들이 길어지고 있었던 어느 날 나는 알아서는 안될 것을 알아버렸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쉬는 시간 실없이 일어나 돌아다니다 내 자리로 돌아오며 그 아이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핸드폰에서 재생되고 있는 음악의 앨범커버는 내가 분명히 본 것이었다. 분명 앞 쉬는 시간에 나의 바로 앞자리 윤우가 듣고 있던 음악의 앨범커버와 똑같았다. 겨우 이게 무슨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문제였다. 얼마 전에도 똑같은 장면을 목격했고, 나는 그 앨범 커버의 노래를 힘들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노래는 당최 유명한 노래가 될 수 있는 곡이 아니었고 윤우가 도이에게 노래를 추천한다거나 하는 걸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이런 우연은 윤우가 듣고 있는 노래를 도이가 뒤에서 지켜보다가 찾아서 같은 노래를 듣고 있는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우연이 반복되면 우연일 수 없었다. 나는 그 두 번의 우연을 봐 버렸고 그것은 우연일 자격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도이를 유심히 훔쳐보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나 슬프게도 윤우를 훔쳐보는 도이를 훔쳐보게 되었다.

결국 도이가 나의 옆자리에 앉게 된 이유는 내 앞에 윤우가 앉았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단지 윤우의 대각선 뒷자리에 앉았을 뿐 그 자리가 내 옆자리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둘은 관계를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둘은 그렇게 친하지 않았고 서로 대화를 하는 모습도 별로 없었다. 윤우는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노아와 주로 얘기했다는 걸 바로 뒤에 앉은 내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도이가 윤우를 좋아하는 게 아니길 간절하게 바랐지만, 나의 천사는 이미 타락했고 추락하고 있었다.




나의 관찰대상이 추가되었다. 도이가 관찰하고 있는 윤우를 나도 관찰하고 있었다. 내가 다니고 있던 수학학원의 반편성이 바뀌면서 같은 학원에 다니고 있던 윤우가 우리 반으로 들어왔다. 윤우는 나에게 간단한 인사만을 하고는 마치 나를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오히려 그게 편했다고 한다면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정말 그랬다. 윤우는 학교에서처럼 나의 앞에 앉았다. 유일하게 불편한 부분은 그것뿐이었다. 누군가를 관찰하기에 가장 불편한 위치, 그곳은 바로 나의 앞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의 등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관찰한 윤우는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사람을 설명하는 것에 익숙하진 않지만 이 아이는 마치 직육면체와 같았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모서리가 각지게 살아 있었지만 어디에 두어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문득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1등이라는 별명을 제거했을 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누군가에게 나는 과연 형체나 실체가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다시는 이런 생각을 하지 말자 생각했다. 아쉽지만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대신 도이에게 윤우는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 보았다. 윤우는 도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도이도 나처럼 일방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걸까? 조금의 질투도 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느낀 감정은 연민이었을 것 같다.


나는 윤우와 도이의 관계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짝사랑하는 사람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꼭 슬픈 플롯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은 먹이사슬과 같은 계층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윤우가 우리 관계의 최상위 포식자는 아니다. 일방적인 사랑을 관계라고 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냥 각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눈앞에 큰 스위치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쉽지만 그 스위치를 꺼버렸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스위치처럼 끄고 켤 수는 없지만 난 그렇게 해버렸다. 나는 그렇게 도이를 혼자 좋아했던 시간들을 끝내버렸다. 그건 내가 나약해서도 그래야 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겨우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위치를 꺼버렸지만 내 안에 불타오르고 있던 이 뜨거운 것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내 안에 불타오르고 있는 이 뜨거운 쇳물은 총알이 될 수도 있고 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숟가락 혹은 젓가락 같은 유용한 무언가로는 도저히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게 앞에서 마음에 드는 열쇠고리를 발견했다. 쇠로 만들어진 소총 모양의 열쇠고리였다. 내 안의 뜨거운 이 것을 이 열쇠고리 속에 봉인해 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 열쇠고리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방에 달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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