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ty Chair

by 구찬우

불길 너머로 그 아이가 서있었다. 얼굴에 와닿는 화기에 나는 차마 다가갈 수 없었다. 며칠을 같은 꿈을 꿨는지 모르겠다. 꿈을 깨고 나서도 눈앞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불길에 매료되고 있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었다. 불길 너머로 다가갈 수 없었던 그 아이를 만나러 갔다. 언제나 적응할 수 없는 새 학기의 시작의 분주함이지만 나를 더욱 초조하게 하는 건 도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1학기때 각자 앉았던 자리를 찾아갔다. 내 옆자리는 도이의 자리였지만 선 선생님 오실 때까지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선생님께서는 고교 진학을 위해 중요한 시기니까 열심히 공부하기 바란다는 얘기를 하시며 자리를 떠났다.


모두 방학이 끝나자 돌아왔지만 내 옆자리 도이의 자리만 비워져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빈자리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개학 첫날이 끝날 때까지 나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3일째 되던 날도 도이의 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나는 교실 밖을 나서는 선생님을 따라나갔다.


“선생님. 도이가 오지 않는데 무슨 일 있나요?”


“아, 태오. 도이는 전학을 갔어. 오지 않을 거야. 자리로 돌아가렴.”


“네. 알겠습니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선생님의 두 눈은 흔들렸고 아주 잠깐이지만 미간이 찌푸려졌었다. 그건 분명 거짓말을 할 때의 신체변화였다. 하지만 더 이상 물을 수 없었기에 나는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유령의 자리처럼 나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한 달이 지나서야 뒷자리에 앉던 아이가 내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내 옆자리에 앉는 그 아이가 괘심해 견딜 수 없었다. 그 자리는 도이의 자리였다. 아무나 그렇게 앉아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 도이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중학교 시절이 끝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그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 날들이 잦아졌다. 그럴 때면 꿈속에서 그 아이는 불길 너머에 서있었다. 내가 만든 환영이 딱히 싫지는 않았다. 나는 모든 걸 그대로 두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그 아이는 꿈속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잘 지내. 나의 천사.>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나는 도이에게서 완전히 벗어났다. 나는 다시 도이를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 버렸다. 아이들은 모두 바빴고,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 가끔 1등의 자리를 놓치기도 했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1등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도이가 떠나간 내 옆자리, 빈 의자는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는 언제든 도이가 돌아와 앉을 의자를 비워두고 살았다. 나에겐 목표도 없었고 목적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나의 주변 모두가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목표와 목적지가 없더라도 어딘가로 흘러갈 것 같았다. 그러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또다시 생각이 그 아이에게 닿으려 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면 항상 눈앞에 불길이 아른거렸다. 파리에서 돌아와서도 붉은 광휘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또한 내버려 두어도 되는 걸까 생각했지만 방법을 알지 못했다.


친구는 없었지만 중학교 3학년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과는 종종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된 윤우, 노아, 지우와는 가끔씩 만나 식사를 하였다. 그들이 나를 왜 불러 주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그 아이들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언젠가 이 아이들과 만남을 유지하다 보면 도이의 소식을 듣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무척이나 깊은 잠에서 깨어난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이 깊은 잠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핸드폰의 연락처를 찾아보았다. 몇 명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지 않은 나의 핸드폰 속에는 그 아주머니의 연락처가 있었다. 평소 사용량이 없는 메신저 속에서 그 아주머니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서울 1 대학의 인문학부 교수였다. 어딘지 모를 파리의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샤를드골 공항까지 이동하며 잠들었던 그날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의 손을 잡아주었던 아주머니의 따뜻한 온기가 다시 느껴졌다. 나는 서울 1 대학의 인문학부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했다. 동기와 목표의 설정이 엉성하였지만 나는 그렇게 정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서울 1 대학 인문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아주머니라 부를 수 없는 심재연 교수의 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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