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배부른 자들의 사치스럽고 배타적인 악취미 정도로 생각하는 주위 사람도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성은 크게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스포츠라는 문화를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왜 남이 운동하는 걸 아까운 내 시간과 돈을 써가며 지켜봐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운동선수들의 노력과 집념은 이해가 가지만 그 승리가 이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공감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미술이 그러할 것이다. 점하나 찍어 놓은 그림에 철학과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기도 하고, 칼로 찢은 캔버스를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이라고 강요해 봤자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악취미 정도로 생각해 주는 것도 상당한 예의일 수도 있다. 미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한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거, 다 사기 아냐?"
보통은 웃으며 아니라고, 적어도 네가 접했던 미술을 그러지 않다고 말한다. 너는 진짜 미술 사기에는 노출된 적 없을 테니까라고 생각했다.
왜 나는 미술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 시작을 되짚어 보았다. 어린 시절 미술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서예를 오랫동안 해왔다. 그리고 KBS에서 개최한 서예대회에서 초등학생 때 중등부로 출전하여 금상을 받을 만큼 꽤나 진지하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서양 미술에 눈을 뜨게 된 건 아마 백과사전 때문이었다. X세대는 마지막으로 백과사전과 함께 성장했던 세대이다. 나의 방에는 항상 백과사전이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나는 매일 30권이 넘는 대백과사전 중에서 아무 권이나 쑥 뽑아서 읽었다. 대백과사전에 소개된 수많은 거장들의 그림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앵그르의 그림을 보았던 날의 충격은 잊을 수 없다. 그랑드 오달리스크의 그녀는 어린 나에게 관능의 대상은 아니었다. 기괴하게 긴 허리와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뒤돌아 보는 그녀의 삼백안은 두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의 유명작품 샘은 미술을 경외하게 하였다. 어렸던 나는 신고전주의를 알지 못하지만 인간이 '미'라고 하는 관념에 얼마나 극한으로 다가가고 싶어하는지 알게해주었다. 그리고 개정판에 추가되어 있던 팝아트 파트에서 소개해줬던 앤디워홀, 바스키아, 키스헤링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 그리고 앵그르와는 반대로 충격을 주었던 리히텐슈타인까지... 그렇게 대백과사전은 좋은 미술작품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미술관에 자주 갔었다. 그리고 직장인이 되어 자가용이 생겼을 때부터는 내 주위 미술관의 모든 전시를 다 보았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미술선생님께서 나를 따로 불렀다. 그리고 나에게 미대에 보내줄 테니 자신에게 미술을 배워보겠냐고 하셨다. 그 당시 우리 학교의 미술은 50점 만점에 실기 30점, 필기 20점이었다. 나의 실기 점수는 33점이었다. 선생님 기준으로 매우 잘함의 점수가 11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 당시의 나는 평생 미술을 하며 살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 당시는 IMF) 그 선택에 조금의 후회도 없지만 살면서 '그때 내가 미술을 시작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선택하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걸까, 나는 많은 시간을 미술 전시와 함께 보내었다.
뮤지엄 전시 캡션에는 종종 누구의 소장품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누군가가 기증한 작품들의 전시도 있었다. 누군가는 미술품을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당연히 매체를 통해 미술품 경매와 소장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뭔가 다른 세계의 얘긴 줄만 알았다. 내 눈앞에 개인 소장품들을 보게 되면서 언젠가 나도 미술품을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다. 하지만 미술품을 어떻게 구매하게 되는지에 대한 정보는 조금도 알지 못했다. 나는 막연하게 언젠가 나도 미술품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였고 조금씩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 사회 초년생 때 내가 목표했던 동네의 아파트를 계약을 하고 이사를 왔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던 봄이었다. 나와 아내는 동네 공원에 산책을 하던 중 한 외국인이 다량의 실크스크린 작업을 벽에 붙이기 위해 풀칠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프랑스 국적의 유명하지 않은 스트리트 아티스트이다. 그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그의 임시 작업공간이 우리 동네에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 작업을 구매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런 질문에 익숙지 않았던 것일까?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만 원을 달라고 했다. 나는 만 원을 주고 실크스크린에 그의 서명을 받았다. 이것이 나의 첫 컬렉팅이다.
나의 첫 컬렉팅은 1만 원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정말 1백만 원, 아니 1천만 원 이상의 것이었다. 그의 실크스크린을 액자로 집에 걸어두었다. 첫 나의 미술 소장품을 매일매일 보며 그렇게 기뻤었다.
나도 드디어 미술품을 소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