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전에 좌절해버린 나의 운동기...
캐나다 워홀에서의 불규칙한 생활습관과 식습관만이 체중 증가의 원인이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10여 년간 나를 괴롭혔던 통증은 결국 제대로 된 병명으로 되돌아왔다. 치료를 시작하니 체중은 기하급수로 증가해 한 달 만에 7킬로가 늘었다. 운동을 병행하고 있었음에도 체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이윽고 80 킬로그램까지 불어났다.
나이가 들면 나잇살이 찐다고는 하지만 무조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하기엔 역시 정도가 심했다. 운동을 더 하려고 해도 여름에 다친 발목이 말썽이었고, 쇳덩어리를 옮겨야 하는 업무 특성상(대체 사무직으로 들어왔는데 왜 혼자 물류센터 같은 업무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루종일 일을 하고 돌아오면 녹초가 되기 십상이었다. 자연스럽게 움직임은 더 줄어들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꾸준히 다니던 도수치료 덕에 통증은 줄어들었으니 이제는 신년 맞이 겸 운동을 시작하고 건강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
자신에게 딱 맞는 운동을 찾아본 경험이 있는가. 나에게 그 운동은 검도였다. 어릴 적 보던 만화책의 주인공에게 동경을 품고 검도를 하고 싶어 하던 어린 시절, 엄마는 호구를 쓰면 키가 안 자란다며 기각을 하였다. 하지만 운동이란 것에 전혀 흥미를 못 느끼는 딸내미를 보다 못해 결국 중학교 3학년 때 검도를 시켜주게 되었는데, 어린 오타쿠였던 나는 검도복을 입고 죽도를 휘두른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신이 나 아주 열심히 검도장에 들락날락거렸고 체육 수행평가로 물구나무서기를 하게 되었을 때 무려 남자 만점인 5초 이상을 버티는 기염을 토하게 되었다. 계속 운동을 하면서 단을 따고 싶었지만 비평준화 지역인 관계로 고입 시험을 치러야 해 아쉽게도 검도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내 인생에 유일하게 건강한 시절은 바로 검도를 하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 직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20년째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선택했다, 내 새로운 시작을 검도와 함께하기로.
다시는 숟가락질도 제대로 못 할 정도의 팔 통증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건강하던 시절을 되찾고 싶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란 생각에 오늘 밖에 나간 김에 도장에 들렀다. 20년 만에 찾아온 제자를 반기시는 관장님과 함께 내일부터 운동 삼매경에 빠지려고 했건만... 시작과 함께 좌절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우리 집엔 별의별 것들이 다 있는데, 20년 된 도복 또한 그중 하나였다. 붙박이장을 뒤적거리니 당연하게도 도복은 짠, 하고 내 눈앞에 나타나게 되었고, 엄마는 그게 20년 된 그 당시 도복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본인이 버리지 않고 이사를 다녔음에도 말이다. 자꾸 안 맞을지도 모르니 입어보라는 소리를 해 내 속을 긁어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퍼뜩 진짜 그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상의가 꽤 컸던 것 같은데... 하며 빳빳한 도복을 펼쳐 입어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묶어서 입는 옷이니 당연히 살이 쪘어도 맞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그 시절보다 30킬로 가까이 불었다는 걸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이걸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퍼뜩 생각이 나 하의를 입어보았다. 다행히 이건 그냥 묶기만 하면 되니 입을 수 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20년 된 도복 덕(?)에 현 상태를 점검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관장님 말씀대로 아픈 후에는 늦은 게 맞았다. 조금이라도 덜 아팠을 때 뭐라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나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내일부터 열심히 도장에 출석하는 것만이 답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