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퇴사했으니까!
졸업의 계절 2월, 우리 아이들에게 빛나는 수료장을 수여 한 뒤 나는 장렬하게 퇴사했다.
원래도 바쁜 수료 준비에 코로나19라는 악재까지 겹쳐 마지막 날까지 정말 바빠도 너무 바빴다. 수료와 함께 바로 봄방학을 맞이하는 아이들이 무엇 하나 두고 귀가할까 봐, 체크리스트를 보고 또 보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수료 당일까지 정상 수업을 했던 터라 미리 계획해둔 시간표에 따라 수업하는 와중에 마지막이 주는 감동과 여운까지 아이들과 함께 느껴보려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모른다. 정말 모른다. 애들도 모르더라. 이별을 실감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저 해맑았다. 아이들을 위해 쓴 나의 마지막 편지를 낭독하며 나만 울었다. 그래, 이런 분위기의 수료식이 나는 익숙하다.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수료식이었다는 게 좀 아쉬울 뿐.
나는 이제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을 떠났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아 진짜? 그럼 이제 뭐 할 거야?"
사실 그건 나도 모르겠다. 다른 일이 간절히 하고 싶어서 퇴사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이 너무 힘들어서 퇴사하는 거라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너무 대책 없는 퇴사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더 버텨보려고 했지만 이게 버틴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버티는' 정도로는 도저히 이 일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버티고 있는 선생님'을 만나게 될 아이들의 1년은 무슨 죄란 말인가? (핑계가 맞다)
그리하여 나는 '이러다 내가 죽겠으니 일단 퇴사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구석구석 나의 손길이 닿았던 애증의 교실과 열과 성을 다해 키운 우리 아이들을 다음 선생님에게 맡기고 유치원을 떠나왔다.
12월 교사 거취 상담 이후 일각이 여삼추요, 더디고 더뎠던 시간이 지나, 퇴사를 맞이한 지 어느덧 5개월을 채워 간다. 이거 참! 내가 일할 때랑은 너무 다른 거 아닙니까? 그때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렀다고요!
후...... 정말이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퇴사 후의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구나! 백수 생활을 멋지게 실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내가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도 이유가 있는데(이것도 핑계) 퇴사 후 한 달쯤 지나가자 아주 지독한 무기력증이 나를 찾아왔다. 퇴사하면, 앞날이 걱정되기는 해도 마음이 가볍기만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찾아온 무기력증에 나도 많이 놀랐다. 그동안 내가 너무 힘들었나 보다 좀 쉬면 괜찮겠지 했는데, 쉽게 괜찮아지지 않더라.
잠도 안 자고, 좋아하던 tv, 영화, 책 다 귀찮고, 계속 누워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마저 재미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거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니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지내는 날이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어떤 날은 멍하니 누워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고 나서야 생각했다.
어? 나... 지금 좀 심각한 것 같은데?
일을 하며 이따금 찾아오고는 했던 무기력이나 그동안 내가 번아웃이라고 불렀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심각하다고 느끼기 전까지 인지를 못 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좀 귀찮고, 그동안 힘들어서 그랬나 보다, 쉬면 괜찮겠지 정도로 생각하며 내가 나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인지하고 나서 돌아보니 내가 바로 살아 있는 시체였구나 싶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무엇이라도 해서 이 무기력으로부터 나를 건져 올려야만 했다. 그러나 생각과 실천은 늘 함께하기 어려운걸?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라는데, 가벼운 산책도 짜증만 나고 너무 힘들어서 실패. 그럼 뭔가 덕질할 것이라도 찾아야겠다 해서 지나간 취향을 돌아보고 넷플릭스를 뒤져봐도 실패. 사람을 만나는 것도 피곤하고 힘들어서 실패. 이거 저거 실패하고 나니 마음만 무겁더라. 읽어보면 좋다던 에세이를 뒤져봐도 와닿지도 않더라.
내가 지금 그대들이 하는 말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나의 몸과 마음이 거부를 하네요... 망했네, 망했어. 나는 망했어!! 사람 구실도 못 하고 이렇게 살다 한심하게 죽을 거야.......
이게 다 너무 열심히 살았던 탓이다. 몇 년 동안 유치원과 아이들, 학부모에 내 기력을 모두 써버려서 나는 속이 빈 강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역시 출근과 야근은 백해무익한 일이라는 헛소리나 찍찍하며 누워있던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동안 일을 하며 힘들었던 것들, 하고 싶지만, 꾹꾹 삼켰던 말들을 다 쏟아내고 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참 좋은 생각 같았다. 그래서 난 바로 대나무 숲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 바로 여기, 이곳. 브런치다. 이 서랍장을 나의 대나무 숲으로 삼아야겠다.